외부자가 그리는 파동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왔다. 언론 영화길래 관람 전에는 2014년 개봉했던 나이트 크롤러를 떠올리며 조금 겁을 먹었다. 그러나 가쁜 호흡으로 나를 향해 달려오는 짐승 같았던 나이트 크롤러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는 차분한 심호흡으로 고상하게 분노할 수 있었던 영화였다.
영화의 주된 플롯은 2002년 미 유력 일간지 보스턴 글로브의 가톨릭 사제 아동 성추행 사건 보도에서 나타나는 언론의 순기능을 다룬다. 그 기자들의 직업윤리 의식을 스포트라이트는 과하게 찬양하지 않으면서도 관객들로 하여금 충분히 이에 감동받고 또 폭로된 내용에 충분히 분노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스포트라이트가 가지는 이 힘은 최근 높은 인기를 누린 국내 영화 내부자들, 베테랑, 그리고 드라마 리멤버 등에서 등장하는 잔인하고 부패한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방식과도 다르다. 이러한 문제에 접근하는 많은 콘텐츠들은 직접적인 가해, 혹은 피해 상황의 자극적이고 감정적인 연출에 공을 들인다. 이를테면 스포트라이트의 경우 게오한 신부가 미성년자를 추행하고 강간하는 모습, 그 범행 현장을 극도로 클로즈업했을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즉각적으로 관객을 끓어오르게 하고, '이 영화 꼭 봐야 합니다!'와 같은 반응을 이끌어 내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은 한편으로 (위에서 언급한 가상의 스포트라이트의 경우) 눈 앞에 드러난 피해자 개인에 이입하고 가해자 게오한 신부 개인에 분노를 쏟아내는 것으로 끝나기도 쉽다. 그리고 극 중의 기자들이 가장 경계한 것 또한 바로 이 부분이다. 리브 슈라이버, 그리고 마이클 키튼은 특종이라는 이름으로 빠른 시간 내에 충격적인 기사를 내는 대신, 로 추기경, 혹은 게오한 신부 등과 같은 실명의 개인에게로 관심이 제한되는 것을 막고 더욱 거대한 조직의 뿌리를 우직하게 추적해 나간다. 영화의 연출 방식도 이러한 실제 기자들의 태도와 닮아 있다. 즉각적으로 사람들을 분노시키는 대신, 솔직하고 가감 없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명확하게 전달했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러한 태도가 너무나 드물기에 역설적으로 이 영화가 더욱 가슴 깊이 와 닿았다.
그러니까, 우직하다. 영화에서 드러난 취재의 과정은 놀라울 만큼 드라마 타이즈 되지 않았다. 러닝 타임의 정말 많은 부분이 법적인 절차를 밟고, 수 백 통의 전화를 걸고, 또 받고,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엄청난 양의 문서를 뒤지는 데 쓰인다. 문서 하나를 보는 데에도 마크 러팔로와 변호사가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현실을 바탕으로 했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허구의 자극적인 범행 현장을 보면서 어렴풋이 '아, 우리 사회가 이렇게 썩었구나'라고 느꼈던 경험은 많았다. 그러나 이것은 놀랍도록 기본에만 충실하며, 어느 것 하나 극화하지도, 우리가 이렇게 잘 해냈노라고 자랑하지도 않는(심지어 퓰리처 상 받은 이야기는 언급도 없다)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스크린에 띄워지는, 이것이 보스턴 교구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시스테믹 한 문제였음을 알려 주는 문제 교구 리스트, 그 텍스트만으로도 극장의 관객들은 깊은 충격의 탄성을 질렀다. 묵직한 울림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내막을 밝혀낼 수 있었던 출발점이 '외부자'에 있었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극 중 대사에 나오듯,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지만,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에도 온 마을이 필요했다. 보스턴에서 나고 자라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 팀의 편집장이 된 마이클 키튼 조차도, 처음에는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 필요했던 그 마을의 한 구성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마을의 흑막을 폭로할 수 있게 된 시발점은, 마을 외부에서 온 마티 배런 역의 리브 슈라이버, 그리고 아르메니아 출신의 미첼 개러비디언 역의 스탠리 투치였다. 폐쇄되어있던 내부를 외부인이 되어 바라보는 것은 이처럼 효과적인 파동이 되곤 한다. 이를테면 비즈니스나 조직을 이끎에 있어서도 '내가 쫓겨나고 새로운 리더가 온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이 효과를 보는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한편 법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영화에서 나타나는 법조계의 반응 또한 흥미롭게 다가왔다. 법을 이용하여 종교인들이 빠져나가도록 도움을 주는 법조인이 있는가 하면 법을 이용하여 스포트라이트 팀이 진실을 밝히도록 도움을 주는 법조인도 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직업윤리를 준수한 사람들이었다. 영화 빅 쇼트에 이어 전문성이 주는 면죄부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해 보게 한 영화였다.
사건에 대한 접근 방식만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영화이지만 배우들의 연기 또한 훌륭했고 합이 정말 잘 맞았다. 특히 버드맨에 이어 마이클 키튼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내일 오스카 상 시상식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