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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변 Nov 02. 2016

지구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젠더의 경계는 누가 만드는가?


이 책은 요약하자면 한 남자가 1년 동안 여장을 하고 생활한 기록이다. 대박 흥미롭지. 책의 서두 가운데 꽤 많은 부분은 저자가 이러한 '실험'이 성 도착이나 성 정체성 혼란과는 관련이 없다는 것을 주위 사람들과 독자에게 설득시키는데 할애된다. 실험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저자는 (비록 약간의 순진함과 고정관념에서 나왔을지 모른다고 고백하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우리 사회의 남자와 여자의 역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남자 역할이 더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훨씬 인위적이다. 남자 역할에는 능력과 인정 욕구가 주입되어있다. 거의 강압에 가까웠다. 반면 여자들은 그런 내적인 강압에서 자유로워 보였다. 여자의 삶이 더 의미 있고 여유로워 보였다. 여자의 세계는 생기 넘치는 신비한 천국 같았다.


저자가 많은 지면을 설명과 설득에 할애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여성성을 추구하는 남성에 대한 사회의 태도는 분명 남성성을 추구하는 여성에 대한 태도와는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가 아까울 정도로 판이하게 다르다.


오래전부터 여자들은 원래 남자들만의 영역이었던 곳으로 들어가 보란 듯이 살고, 바지를 입고, 심지어 회사 임직원의 여성할당제까지 주장하고 있다. 반면 우리 남자들은 내면의 여성성을 거의 잃어버리고 산다.


아래는 남성 뷰티 크리에이터 레오 제이가 자신을 향한 인신공격과 성차별적 댓글에 대해 답변하는 영상이다.

https://goo.gl/JvTOfv

위 영상 속의 댓글과 같은 반응은 소위 여성성과 남성성이 섞일 리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젠더의 경계라는 것은 어떻게 발생하고 존속해 왔는지, 꼭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http://www.kenanmalik.com/essays/catalyst_racial_science.html

* 참고: 위 글은 케난 말리크가 인종 구별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 글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생물학적 차이 이상의 구별이 필요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을 때 일독을 권한다.


그렇다면, 젠더라는 성역의 양극화가 사라진다면 그 간의 갈등도, 성역할도 의미를 잃을까?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은 얼마 전 영화 이퀄스(EQUALS)를 보면서도 한 바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여성들에게 '의무 임신'이라는 제도를 운영하는 것 외에 모든 것에서(심지어 뷰티, 패션까지) 무구별, 무차별한 사회로 표현되었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 의무 임신 제도는 인권 침해의 소지가 다분하다고 지적될 것이지만, 영화에서는 특별히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있었다)


그리하여 저자는 모든 고정관념과 억압에 맞서겠다는 일념으로 #그게바로 #여자의길 을 걷게 된다.


모든 남자들의 내면에는 여성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학문적으로 증명되었다 ... 물론 덜 극적인 방법으로 나의 여성성을 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여자로 사는 것이 어떤지, 그리고 어떤 걸림돌이 있는지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 명상하듯 호흡에 맞춰 걸으며 여성성을 더 많이 느낀다고 세뇌시키는 방법은 싫었다.


놀라웠다. 이 책이 센세이셔널했던 이유는 어쩌면 당연하다. 내가 주로 보아 온 여자에 대해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은 학문의 영역을 벗어나면 '여자의 언어'와 같은 콘텐츠로 만들어져 '와, 정말 이해 못하겠어!'라는 반응으로 소비되거나,

http://naver.me/xA4ukiV9

이 기사 정도로 외부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량화하거나 하는 시도 정도였고, 이마저도 흔히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니 내부 세계로부터 자신의 여성성을 끌어내어 자신이 가진 고정관념과 맞서겠다는 이 사람이 놀라울 수밖에 없지.


아래는 The thing all women do that you don't know about이라는 미국 허핑턴포스트 게재글이다. 이를 보아도 아마도 이러한 점을 나만 느껴왔던 것은 아닌 것 같다.


http://www.huffingtonpost.com/gretchen-kelly/the-thing-all-women-do-you-dont-know-about_b_8630416.html?ncid=engmodushpmg00000004


저자 크리스티안은 이렇게 마주하게 된 자신의 극화된 여성성에 크리스티아네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 극화의 정도는 꽤 깊어서 크리스티아네는 찰랑이는 긴 금발에 큰 가슴을 가진, 피부톤에 맞는 메이크업과 원피스를 골라내는 사람으로 점차 성장하는데, 그 과정의 묘사도 매우 재미있다.


솔직히 말하면, 크리스티안은 열린 사람이라기보다는 열린 사람인 척했던 것이다. 반면 크리스티아네는 마음의 문을 열고 그동안 노크소리를 듣고도 밖에 그냥 세워두었던 경험들을 들어오게 한다.

"여자들은 어떻게 그 불편한 하이힐을 신고 다니는 거야? 정말 존경해."라고 내게 말했던 남자를 손가락에 차고 넘치게 꼽을 수 있다. 가끔은 이 말에서 순연한 신기함 대신 예뻐 보이자고 그렇게까지 하냐는 허영을 지적하고 싶어 하는 듯한 뉘앙스를 느끼기도 하는데, 크리스티아네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러자 신발 가게 아가씨가 말하기를 "직접 알아보세요!" 란다.

그리고 크리스티아네는 정말 직접 알아보았다. 이런 나날이 계속될수록 저자는 점점 세계관의 흔들림을 느낀다.


내 안에 자리 잡은 학습된 남성성은 남자들이 자축하는 우월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 남성성에는 어떤 불가침성이 내포되어있다 ... 소위 강한 남자! 사나이의 맹세와 끈기! 모든 걸 손에 쥐고 이루고 모든 걸 해결하고  언제나 이겨야 한다. 이것은 내게 오만을 넘어 사이비 종교의 광신처럼 느껴졌다 ... 이것은 같은 패거리 안에서만 인정받는 소위 '자폐 집단'이 되었다.

남자들의 똑같은 복장에서 벌써 그들의 내적 삶이 반영된다 ... 이때 강조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다. 능력! 군대와 교도소에 뿌리를 둔 남성 복장이 참 많다 ... 반면 어떤 남자가 능력을 연상시키지 않는 화려한 옷을 입으면 그는 금세 존중을 잃게 될 것이다.  

책은 그다지 길지 않고, 너무 많은 부분을 여기서 그대로 써 내려가기에는 저자의 이 흔치 않고 놀라운 체험을 지나치게 값싸게 떠벌리고 마는 것 같다. 저자는 이후 자신을 여자로서 바라보는 시선과 성폭력 등을 겪으며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길에서 폭력 또는 죽음의 위협과 마주하게 되는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도 하고, 저자가 거주하는 독일 내 성차별의 현주소와 이것이 정당화되는 현실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확실한 것은, 이 책에 담긴 체험기는 누구에게나 반응은 다소 갈릴지언정 흥미로울 것이라는 점이다.

체험을 하면서 든 생각인데, 우리가 그렇게 다르진 않은 것 같아요. 모든 게 고정관념이라는 거대한 쓰나미 때문이에요.

크리스티아네의 시작은 스타킹이었다. 아내에게 들킬까, 판매 직원에게 들킬까, 마음 졸이며 신었던 스타킹.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 이전까지는 남자들도 스타킹을 신었다. 그 경계는 누가 만들고, 누가 그에 구속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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