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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Sep 10. 2021

나는 내 젊은 날의 꿈을 스무 번도 넘게 배반했다

이옥섭, 구교환 <플라이 투 더 스카이 (FLY TO THE SKY)>

저는 이옥섭, 구교환 감독님들의 작품을 너무 좋아합니다.

제가 그들을 처음 만난 날은 제 생의 두 번째 독립영화 <메기>를 본 날이었습니다.

그때 그 신선함에 대한 충격을 아직 잊을 수 없어요. 그냥 단순히 생각 한 번쯤 해봤을 '의심'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놓는 멋진 영화는 난생처음이었습니다. 그 후로 '이옥섭, 구교환'이라는 이름은 저에게 일종의 보증수표가 되었어요. 적어도 저 둘 중 한 분의 이름이 들어있는 작품은 나에게 그저 그런 작품이 되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유튜브에 [2X9 HD] 구교환 X이옥섭이라는 유튜브 채널이 있습니다. 두 분이 함께 만든 단편 영화나 누구도 상상 못 했을 두 분의 브이로그들이 올려져 있어요. 이 글을 쓰고있는 지금은 'New York Fashion Week-Concept Korea'가 올라와 있네요. 이제까지 런웨이를 통해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감상했다면, 이번에는 단편 영화 속에서 여러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총 세 편이 올라와 있는데, 각각의 영화들이 브랜드의 특징과 분위기를 영상으로 잘 구현해 내어, 영화 속에서  옷이 잘 돋보일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전달하려는 고유의 메시지도 묻히지 않고 선명하게 잘 전달되기도 합니다. 정말 이런 멋진 유일무이한 패션쇼를 보게 되다니. 새삼 이 시대에 살아있어 이런 작품을 보게 되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본격적으로 플라이 투 더 스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최대한 스포를 피하면서 적어보겠습니다.

근데 이 영화 18분 정도로 아주 짧고 굵직한 영화이니

먼저 보시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듯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오늘은 글이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으니까요.


https://youtu.be/7y-eps3O-Ko

유튜브 채널 '[2X9HD]구교환X이옥섭' 플라이 투 더 스카이 (FLY TO THE SKY, 2015)'

영상은 '성환이 형 한국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피켓을 들고 있는 구교환과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성환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성환. 성환은 가죽 공예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꿈을 이루기 위해 이탈리아로 갔었죠. 하지만 유학생활 끝에서 마주한 것은 꿈에 대한 좌절과 꿈을 이루기엔 턱없이 부족한 것 같은 자신의 재능이라는 한계였나 봅니다. 성환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친한 동생 교환과 같이 취업을 위한 중장비 조종 자격증 준비를 하게 됩니다. 먼저 '건설기계조종사면허증'을 딴 교환이 그런 형에게 운전을 가르쳐 줍니다. 장롱면허인 성환에게 운전은 한없이 어렵기만 합니다. 아니, 어쩌면 긴 시간동안 자신의 꿈을 위해 달려오다, 막상 다른 것을 하려니 그것들이 모두 성환에게 어려운 일들로 다가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성환은 굴삭기, 기중기 중 어떤 자격증을 딸지 고민합니다. 옆에서 교환은 '마음 가는 대로 해요.'라고 대답해주죠.

성환은 과연 어려운 운전을 해내고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중장비 자격증을 잘 따고 취업을 할 수 있을까요?

성환은 정말로 자신의 마음이 가는 대로 할 수 있을까요?


이 영화는 꿈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듯합니다. 자신의 꿈을 좇아  열심히 노력도 해보고, 그러다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여 좌절을 맛보기도 하고, 결국 내 꿈은 '평생의 취미'로 남겨놔야겠다고 꿈과 타협도 해보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성환은 가죽공예를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혼자 이탈리아라는 곳에 가서 유학생활을 하거나, 자신의 친한 동생의 생일날 자신이 만든 가죽지갑을 선물하기도 하죠. 꿈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교환이가 가지고 있는 자신이 만든 지갑, 교환이가 가져온 차의 차키에 씌워져 있는 가죽 케이스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사물을 담는 카메라의 시선과 뒤이어 보이는 성환의 시선이 퍽 슬퍼 보입니다. 그 순간, 카메라의 시선이 곧 성환의 시선이되고, 그 시선이 담고 있는 감정은 순간 이 영화를 보고 있는 저의 감정으로 변화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잠깐 성환의 꿈에 대한 미련의 감정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뒤이어 제가 꿈과 타협하던 순간도 함께 지나갔습니다. 잠시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제가 대학 입학을 목전에 앞두었을 시절,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호기심과 흥미를 바탕으로 전공을 선택하고자 하는 욕심이 컸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여러 대학과 학과를 찾아보고 제 성적과 현실에 맞춰 제가 원하던 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저는 제가 흥미를 가지는 분야에 대해서는 온갖 성실과 노력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저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은 돈도 아니고 명예도 아닌, 흥미와 재미, 호기심, 신념입니다. 제가 얼마나 어떤 대상에 빠져있느냐에 따라, 며칠씩 밤을 세우는 일이라도 가뿐하게 해내는 정도이지요. 그런 저의 열의가 통했나 봅니다. 제가 조금 더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게 해주는 기회가 다가오기도 하고, 제 꿈과 관련된 나름의 큰 성취도 하게 되지요. 하지만, 곧 크나큰 시련과 좌절을 맛보았습니다. 제 흥미와 호기심 만으로는 이 일의 강도와 재능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꿈을 포기하고 말았어요. 꿈을 포기하는 순간 저는 아무 길도 없는 야산에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목표도 없이 둥둥 띄워진 망망대해 가운데의 배와 같았습니다.

그러다 최근 글을 쓰면서 글쓰기에 대한 목표와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느꼈던 비슷한 감각의 흥미와 열성이라 처음 만났을 땐 매우 반갑고 기뻤어요. 활력을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현실과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온전히 글쓰기를 제 직업으로 삼기엔, 제가 가진 거라곤 저의 턱없이 부족한 재능만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현실에서 적당히 아무 일이나 하면서 글쓰기를 그저 취미로 할 것인지, 아니면, 글쓰기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직업을 찾아 악착같이 매달려볼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구교환은 성환에게 중장비 일을 하면서 가죽공예를 취미처럼 해보라는 조언을 합니다. 자신도 영화를 취미로 삼고 중장비 일을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요. 그때 성환이 교환에게 물어봅니다.

"야, 넌 진짜 좋아하는 거를 취미로 주말에 하냐?"

교환은 거기서 정확한 대답을 못한 채 대답을 얼버무립니다. 저 또한 이 대사가 나왔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교환이 그러다 이야기합니다.

"형, 마음 가는 대로 해요."

과연 성환은 교환의 말 뒤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요? 정말 마음 가는 대로 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이 대사를 듣고 있는 저는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마음 가는 대로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어떻게 할지 궁금합니다.


꿈이 바뀐 것은 부끄러운 게 아니다.
부끄러운 건 꿈이 없어진 것이고
더 부끄러운 것은 꿈을 가진 채로 삶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대사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여러분들도 혹시 이 영화처럼 꿈을 접어본 적 있다면, 아마 이 영화를 본 후, 많은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는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수많은 교차 후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아직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생각과 감정들이 끊임없이 얽혀 혼란스러운 중입니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움이 퍽 싫지만은 않습니다. 어쩌면 이런 혼란과 수많은 흔들림이 있어야 그 꿈이 어떻게든 더욱 견고하게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이상 이옥섭, 구교환 감독의 <플라이 투 더 스카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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