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삼 일 정도 동굴에 간 걸로 기억한다.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동건의 아버지는 대장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동건은 문자에 답이 늦은 편이 아니었는데 어느 저녁에 보낸 문자에 밤이 되어도 답이 없어 좀 답답했던 날, 새벽 2시경이었나 아버지가 갑자기 쓰려지셔서 응급실에 다녀왔노라고 했었다.
하루이틀을 견뎠던 것은 그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싶은 걱정이었다가 삼 일 째에는 약간 뚜껑이 열렸다.
나는 재석오빠한테 연락해서 동건과 연락이 안된다. 무슨 일 있는거냐며 물어보았다.
"목사님은 별 일 없으신데? 동건이는.. 글쎄 뭐, 주일 날 퇴근하고는 만날 일이 없었지. 오늘 수요예배가 있긴 한데 걘 안 나올 떄도 있어. 별로 연락할 일이 없는데.. 그냥 전화나 한 번 해볼께."
몇 분 후 재석오빠는 바로 연락을 주었다.
"전화하니까 바로 받는데? 이따 뵐게요. 이랬어."
헐, 이 새끼 뭐지.
나도 그냥 직진으로 나갔다. 내 폰으로 하는 전화도 안받고, 우리 집 전화도 안 받았다. 집 전화는 그에게 노출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그날 저녁 8시쯤 재석오빠에게 문자가 왔다.
-동건이 수요예배 안왔어
헐, 진짜 이 새끼 뭐지.
비겁한 놈, 이렇게 사가지없이 끝을 보는구나.
'우리의 지금 모습이 어떻든'에서 그 '어떻든'은 이런 식으로 깨지는 '어떻든'이 아니었는데.
밤 9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자가 왔다.
-호정씨, 호정씨 집앞이에요. 나올 수 있어요?
이 문자를 받은 순간 웃음부터 났다. 너무 기뻤다. 화가 났어야 맞는거다.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먹었다. 화를 내기로.
-네, 10분 후 나갈게요.
이게 화난 사람의 답장이다.
멀리서 나를 기다리는 그를 보자 웃음이 났다. 하지만 또 정신을 차렸다. 화 내기로.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냥 그것이 그를 대하는 내 마음이었다.
"왔어요?"
그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라이딩복장으로 나타났다.
"네."
동네 초등학교 벤치에 가서 앉았다.
"미안해요."
"미안하겠지."
"아무래도.."
"알았어요."
"내 상황이 좀 그렇더라고, 답답하고. 연애의 감정 뒤에 숨을 수가 없는 거더라고."
"알았다고."
"무섭네, 진짜. 호정씨."
"몰랐나요, 그걸?"
"저녁으로 회덮밥 사먹었거든요. 원래 회덮밥 좋아하는데, 회덮밥이 잘 안섞이더라고요. 맛도 없고. 내가 그런 것 같더라고요. 잘 섞이지 못하고 세상이랑 겉돌고."
"알았어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자전거 탈 줄 알아요?"
"옛날에 타봤는데, 아마 못 탈거에요."
"타볼래요? 가르쳐줄께."
빡쳤다. 내가 지금 자전거배울때니? 게다가 너한테? 남자는 원래 분위기파악 못하나요?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이런 건가? 나는 대답대신 가운데 손가락을 들며 말했다.
"정신차려요. 지금 내가 자전거배울 기분이겠어요?"
"하하하하하하"
"웃어?"
"아 미안해요. 힘들거에요, 호정씨가. 내 기질이 좀 우울질이기도 하고요. 나도 내가 힘들어요."
"알았어요."
또 침묵
"오늘 하루가 부를 이름이 없는 외로움이었어요. 나도 내 인생을 살아야 하니까, 알았어요. 가요, 이제."
난 내 마음과 달리 쿨하게 대화하고 쿨하게 마무리했다. 다년간의 연애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질질 끌고 최선을 다해 매달리는 것 보다는 짧게 끝내버리는게 오히려 덜 지저분해지고, 당시엔 힘들지만 그나마 좋게 기억되는 것 같았다.
미련이 남는 연애의 경우 '의사소통은 적극적으로 하자'는 기조로, 나는 나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매달리고 붙잡았다. 그래야 미련이 없고 쪽팔려서라도 기억을 안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하지만 더 초라하고 우스워지는 건 나였다. 이성관계의 특성상(?) 51;49여도 남자의 마음이 더 커야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것 같다. 이론적으로 여기서 끝내는게 맞다. 나의 마음은 아니었지만.
친절한 나는 그를 차로 태워줬다. 걔네 집까지. 국민 첫사랑은 썅년이라더니. 내 첫사랑은 썅...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슬펐고 눈 앞이 뿌예졌고,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내 죽음의 소식이 그에게 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다. 나의 마음과 나의 시간이.
이렇게 끝났다면 나는 이 이야기를 시작도 안 했을 것이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내 미니홈피에 그가 비밀방명록을 남겼다.
-잘 지내고 있나요. 생각할수록 너무 미안해요. 친구로라도 남고 싶었는데.. 무리겠죠? 찌질해서 미안해요. 늘 기도하고 있어요. 잘 지내고 잘 자길요.
웃음이 났다. 그래, 지금의 모습이 어떻든 우리는 결혼한다니까, 그럴거라니까...
보통 헤어지면 나는 살이 빠졌다. 전 남친과 헤어졌을 때는 일주일에 4킬로가 빠졌었다. 한 번 경력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엔 4킬로까진 아니고 2킬로 정도가 빠졌다. 빠진 김에 예쁘게 동생과 유럽 여행에 다녀왔고, 다녀왔더니 문자가 와 있었다. 확실히는 기억이 안나고 그냥 안부문자였던 것 같다.
그래, 지금의 모습이 어떻든 우리는 결혼한다니까, 그럴거라니까...
그해 여름이 지나면서 나는 여전히 대학원생이긴 했지만 일을 병행하며 내 용돈을 쓰고 저축도 할 수 있을 만큼 돈을 더 벌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내가 버니까. 괜찮을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인 질문에 어느 정도 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는 신대원시험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걸쳐 들었다. 그렇다면 진짜 괜찮은 것이 아닐까.
그때는 아마 내가 먼저 연락을 했을 것이다. 축하한다. 밥 한번 먹자. 뭐 이렇게.
그리고 만났다. 너무너무 보고싶고 만나고 싶었던 그를.
기억처럼 꿈처럼 그를 만났었다.
그를 자주 만났던 익숙했던 길에서 만나고 밥을 먹으며 대화를 했다.
그때 그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 느낌도 없던 느낌을 기억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싶었지만 정말 그럴수가 있더라. 뛰어라, 심장아. 나대라, 심장아. 얼마나 기다렸니 했지만 심장박동도 맥박도 똑같았다. 안정적이었다.
그냥 이렇게 생긴 사람이 내 앞에 있구나. 맛있게 먹는구나. 말을 하는구나.
그리고
그냥 우린 끝이구나.
잘 살아요, 잘 지내요.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많이 울었던 기억이다. 처음에 헤어졌을때는 그냥 그랬는데, 이 날은 참 많이 울었다. 아무 감정도 아무 생각도 없는 내 뇌와 마음이 원망스러웠다. 왜 그랬을까.
그와 나는 지금 생각해도 성격이 좀 비슷했다. 우울질이 있고, 문제중심적. 좀 분석적이랄까. 그래서 어떤 현상에 대해 한번 파고들면 좀 문제적이고 부정적으로 결론이 날 때가 있었다. 좀 기운이 빠지는 스타일. 그래도 좋아하니까 덮고 넘어가는 부분이 있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늘 지금같을 수는 없을텐데, 이 좋아하는 감정이 조금이라도 걷히면 나는 힘들어질까 우린 어떻게 될까 싶은 아련한 공포감이 있었던 것도 같고.
"건강을 위해 먹는 음식이랑 맛있어서 먹는 음식이 달라."
그와의 관계에 대해 고민할 때 친구가 말했다. 이 말이 나의 좌우명, 분수령이 되었다. 헤어져도 괜찮겠다. 괜찮을거야.
그래도 슬픈 마음은 제어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어떻게 되어 그와 결혼하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의 결혼소식이라도 전해져야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정도 있었다.
순정은 개뿔.
좌우명을 준 친구가 해준 소개팅으로 나는 지금의 남편이 된 남자를 만났고, 그와 9개월만에 결혼했다.
그 사이 우리모두의 휴대폰은 2G에서 스마트폰이 되었는데, 폰번호는 저장되어 있던 터라 카톡리스트에는 그가 있었다. 걔도 폰번호 안바꾸고 사나보다.
간난이 육아에 지쳤던 날, 나는 아이가 자는 동안 무심히 폰을 들고 카톡친구들을 주욱주욱 내려가며 보다가 그의 프사에서 멈췄다. 결혼식 사진이었다. 결혼했구나. 너도 결혼했구나. 결혼할 줄 아는 애구나.
지금도 카톡에 있다. 아들 둘이 있는 애아빠가 되었다.
어느 날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알수도 있는 친구"에 그가 나왔다. 헐. 놀랍기도 하고 반가운 마음에 그의 피드로 들어가 보았다. 제일 처음 보이는 사진이 유골함 사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나보다. 우리 아빠랑 비슷한 연세라고 하면 아직은 젊은 연세이신데. 자주 우셨다는 그의 어머니도 떠올랐다.
그립고, 궁금하다. 답답하고 아련하고 슬프고.
모든 이별이 다 그럴만 한 이별이었는데, 그와의 이별은 아직도 왜 헤어진걸까 싶다. 지금이 행복하고 좋지만 이런 미스테리한 일은, 나한테만 있는게 아니죠. 가끔 이런 그리움과 답답함이 글감을 주기도 한다. 고오맙다. 굳이 안줘도 되는데 내 인생에 큰 획 그어주고 꺼진 너. 너. 너.
잘 살아봐라.
얼마나 잘 살까 싶지만.
쿨하지 못하겠고 미안하지도 않다.
28살 초에 만나 봄이 오던 겨울부터 다시 겨울이 오기까지 꼬박 1년, 그리고 그 후로 몇 개월. 행복하고 힘들었던 1년여를 보냈다. 내 인생에 강력한 흔적으로, 강력한 썸으로. 사십이 되어도 그때 생각에 잠시는 말랑말랑해지는 따뜻함으로, 그랬던 1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