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초, 나는 오랜만에 산부인과에 갔다. 피임을 위한 미레나시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정확히 말해 피임이 아니라 생리중단을 위한 목적이 더 컸다. 인터넷검색을 해보니 생리직후에 가는 것이 좋다고 해서 생리끝나길 기다려서 갔던건데, 막상 상담을 해보니 생리시작 후 3-4일 후에 오란다. 아우, 생리 또 해야 돼? 징글징글하다.
6학년이던 13살에 시작된 생리는 따분하고 지겹고 징그러웠다. 가임여성을 '생명의 잉태'와 관련지어 참 아름답게도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지만 사실 폭력과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주기가 규칙적이면 규칙적이어서 피곤했고 불규칙하면 불규칙해서 괴로웠다.
'신경성 OOO' 같은 질환을 달고 살던 입시철을 지나 20대에는 참 건강했고, 30대에 들어서는 생리량이 확 줄었다. 괜히 섭섭하더라. 별게 다 섭섭하네 싶을 만큼 3-4일이면 생리가 끝났다. 일주일을 차고 넘치게 했던 20대에 비하면 참 간단하고 편했다.
결혼 후 두 아이를 연년생급으로 낳고 둘째가 백일 되었을 즈음에 생리가 시작되었다. 분명모유수유를 하고 있는데 생리가 시작된 것이다. 모유수유는 모유수유대로 하고 생리는 생리대로 했다. 지겹고 힘들었다.
정말 놀라운 건 생리량이었는데.... 건강했던 20대에도 경험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하루에 6-7번 이상은 교체해야했을 만큼. 양이 어마어마하니까 생리통도 심했고, 무엇보다 면생리대를 사용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뒤로 갈수록 양이 줄어야 하는데 줄어드는 폭이 미미해서, 사실 체감상 생리를 하는 기간은 일주일 이상인 것 같았다.
아기들은 두돌이면 기저귀를 떼고 쓰레기를 더 이상 배출하지 않는데, 여자어른인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피를 토하고 쓰레기도 토하고, 엄마도 외할머니도 50넘어까지 하셨다 했으니 이변이 없는 한 나도 50넘어... 아직 10년이나 남은 세월을 매달 이러고 살아야 하나. 끔찍했다.
여자 나이가 서른만 넘어도 노산이네 고위험군이네 하면서 겁을 주면서 왜 가임기간은 50살까지 벌려 놓은 거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신의 섭리에 반기를 들어봤자 변하는 것은 없다.
그래서 오랜 검색끝에 미레나시술을 하기로 했다.
네이버에 나온 설명
사실 피임만이 목적이면 남편에게 묶으라고 하면 되는데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 피임이 보다도 생리량을 줄이거나 생리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고, 한치앞을 모르는 인생사를 가정했을 때 나는 더 이상 남편의 아이를 갖고 싶지 않지만 사별이나 이혼으로 우리가 남이 된다면? 남편의 새 여자는 남편의 아이를 원할 수도 있잖아.
"전처랑 살 때 묶어서......"
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면 내가 이혼해서도 죽어서도 좀 미안할 것 같았다. 남편이 아니라 새 여자에게.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은 놀라운 사랑의 신비라고 생각한다. 나도 남편에 대한 극단의 사랑표현이 바로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 였다. 하지만 지금의 사랑표현은 '더 이상 너의 아이를 낳지 않을게'이다. 셋째를 원하지 않는 수준은 나도 최대치이지만 남편은 더 하다.
고대했던(?) 2020년 1월의 생리가 시작되었다. 양이 워낙 많다고 했더니 4일째에 오라고 해서 1월4일에 병원에 갔다. 막상 시술은 5분도 안되어 끝났는데 좀 묵직하고 재수없는 느낌이 좀 있었다.
주차가 어려운 병원이라 버스를 타고 갔었는데, 오는 길에 버스안에서 나도 모르게 "아 ㅆㅂ, ㅈㄴ아퍼, C ." 라고 속삭였다. (버스가 공공장소인 것은 알고 있다)
"너 죽인다 내가"라고 남편 카톡창에 썼다가 지웠다. 이 시술을 결정한 건 나였지 남편이 종용한 것은 아니니었으니까! 피임도 되고 생리량도 줄일 수 있다면 내가 하는 것이 효율적인 일이었다.
3-6개월정도의 적응기 혹은 부작용기가 있을 수 있다고 했다. 통증이나 부정출혈 같은 것. 1차적 목표는 피임이지 무월경은 아니므로 당장 생리량이 줄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다. 한달 후 점검을 해보자고.
1월 말에 그 해 두번째 생리가 시작되었는데 열흘이 지나도 끝나지 않았다. 생리량은 줄긴 했지만 길어지다보니 뭐 양은 똑같은거 아닌가 싶었다. 점검 날 병원가서 여쭤보니 몸에 이물질이 들어가있는데 이 정도야 뭘.. 하시는 수준. 미레나는 잘 있다고. 정기적인 생리가 시작되거나 다른 통증이 너무 심해지면 오라고 하셨다.
결론적으로 그 이후로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부작용이라고 일컬어지는 대부분의 것들이 일단 나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다. 피부트러블, 살찜, 통증, 정기적 생리 등은 일단 내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행.
워낙 건강한 체질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라 적응기도 정말 3달정도면 충분한 줄 알았는데 시술 3달 이후로 3주가량의 생리(거의 황토색~갈색 정도의 크레파스를 지익 그어놓은 수준, 1년간의 생리량을 다 모아도 소형생리대 하나가 다 차지 않을 것이다)가 끝난 날로 부터 30일 뒤에 그 다음 생리가 시작되는 정도의 주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다가 10개월 이후로는 그마저도 흐지부지 되었고, 딱 1년이 되던 올해 1월부로 나는 전격적 무월경의 신세계에 진입하였다.
여자의 인생이란게 의존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혼이 아닌 경우 싱글일 땐 내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커서는 배우자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아이를 낳고 나서는 내 자식이 어떤 사람이냐가 나의 이력서를 대신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상대와 나의 즐거움과 친밀함을 위한 일에 콘돔을 사용해도 조금은 불안하고, 매달 피를 토하며 내가 임신이 아닌 것에 감사해하고, 임신이 아닌 건 감사하지만 생리통으로 아픈 건 내 몫이고, 섹스와 임신의 결정권이 내가 아닌 상대방에게 있는 것 같은, '생리'를 둘러싼 모든 감정과 행위들은 내가 독립적인 인간이 아닌 것 처럼 생각하게 했다.
상대가 매너있고,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별개로 내가 느끼는 나만의 감정은 사실 이런 것들이었다.
비록 5년이긴 하지만 나는 드디어 '자기결정권'을 가진 기분이다. 피를 보지 않을 것이고, 썩지 않는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는다. 임신 걱정 없이 자유롭게 섹스할 수 있고(백퍼 피임은 없다고는 하지만) 매달 나를 긴장시키고 짜증나게 했던 생리 전의 몸의 신호를 당분간은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거부했다.
때로는 여유롭지만 대게는 힘든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잠시, 아니 찰나적으로 느끼는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임신하면 어떡하지'하는 깊은 두려움에서 비로소 해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