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신도시, 1기 네이티브, 아직도 산다

신도시신도시하길래, 나도신도시다

by 김호정

중학교 1학년이던 94년에 엄마는 우리가 이사 가야한다고 하셨다. 아빠 직장이 너무 멀어서 그 근처로 이사를 가야한다고. 아빠의 회사는 용인, 그래서 우리 가족은 분당으로 이사간다고 했다. 겨울이면 연탄난로 떼던 주택에 살다가 빌딩 안에 엘레베이터가 있고 집 안에서는 난로를 안 떼도 따뜻한 아파트라는 곳은 엄청 문화 충격이었다. 알고보니 여기가 분당신도시 라는 곳이라고 했다.


분양당첨자들의 입주는 거의 92년에 이루어졌지만 우리가 이사온 건 94년이니까 우리가 분양에 당첨되어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내가 결혼을 하고 내집마련과 분양, 재테크와 부동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런저런 얘기 중 엄마께 들은 바로는..


신도시 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마침 아빠회사도 용인으로 이사간다고 하고, 옳거니, 이참에 이사가자 싶어 분당에 청약을 두 번 넣었는데 두 번 다 떨어져서 결국 초p에 사서 들어오신 거라고 했다. 두 번 떨어진 건 떨어진 것도 아니었나보다. 내 친구 부모님은 네 번 떨어지고 다섯 번째에 당첨되어 들어오셨단다.


당시 부동산에서는 같은 매매가로 야탑동의 ㅇ대 아파트와 이매동의 ㅇ성아파트를 추천해 주셨는데 이매동 ㅇ성아파트는 그 근처에 지하철이 들어서지 않는다고 했고, 게다가 22층이라 너무 낯설고 무서운(?) 느낌이라 당시로서는 저층이긴 했지만 지하철역이 확정되어 나름 역세권의 입지를 가진 ㅇ대아파트를 선택하셨다고 했다. (총선시즌마다 이매역 건설이 주요공약이었고, 덕분에 몇년 후 이매역이 들어섰고 ㅇ성아파트와 매매가 차이가 벌어졌다. 많이....ㅠㅠ)

당시 분양가는 32평(84형)이 5500만원인가 6천만원인가 그랬단다. 초p1억을 얹어서 1억 5500인가, 1억 6천인가에 사신 것 같다고. 1억 6500에서 500을 깎아서 1억6천에 산건지, 1억6천에서 깎아서 1억5500에 산 건지 기억이 안 나신단다. 입주 1년만에 1억이 말이 되나 생각하셨지만 신도시, 새아파트, 성공, 출세.. 그런 느낌이 있으셨다고 했다.


분당네이티브의 느낌은 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있긴 했다. 엄밀히 네이티브는 아니지만^^



그때 분당이 어땠냐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야탑동 우리집에서 이매동 아파트단지가 보일 정도로(지하철 1정거장 거리) 허허벌판이었다. 당시 유일하다시피한 유흥시설이었던 노래방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이매동근처로 가야했다. 나는 굳이 노래 좀 하겠다고 버스타고 가고 그랬다.


그 당시 강남인가 시청인가로 가는 버스노선이 45-2 하나 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차간격이 30분이라서 같이 살던 막내삼촌이 고생을 좀 하셨다.


한 번은 엄마따라 서울에 나갔다가 일이 늦어져 택시를 타고 들어온 적이 있다.

"분당구 야탑동이요."

"네?"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이요."

"분당요....?"

"네...."

"거기 논밭아니유? 이 시간에 거길 왜 가?"

"집이 거기라서...."


기사님과 엄마의 멋쩍은 대화를 들으며 집에 왔던 기억이 있다. 분당이 논밭이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네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이라 이정표와 기사님의 느낌으로 집에 왔던 기억인데, 분당쪽으로 진입하자

"여가 분당이여? 여 논밭아니었소?"

"그랬나요? 저흰 아파트 지어지고 들어와서.."

"아따, 깜짝 놀라부렀네요. 한 5년됐나. 그새 이리 변하나. 아따... 이게 다 아파트여? 논밭 다 어디갔데유?"


이게 논밭사진은 아니지만...^^

.... 그러게, 그 논밭 다 어디갔을까.

보상은 후하게 받으시고 다른데 가셨나.

좋은 아파트로 보상받으셨나.

보상담당하는 직원이 땅 사서 나무심었다던데 그때도 그랬으려나.


분당으로 이사가고 이듬해에 지하철이 개통했다. 지금도 분명히 기억한다. 도덕시간이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땅이 울리는 느낌 나지 않니?"

"........"

"오늘 지하철 개통했다더니, 땅밑으로 지하철 다니나보다 얘."

"?????"

선생님은 참 세심하시구나.


지하철이 뚫려 좋긴 했지만 그때 지하철타고 강남역에 가려면 야탑역에서 분당선을 타고 당시 종점이었던 수서역에서 내려서 3호선으로 갈아타 교대역으로 간 다음 2호선으로 갈아타서 강남역에서 내려야 했다. 그러면 1시간 반은 걸렸다. 버스노선이 생기긴 했지만 야탑에서는 서울가는 노선은 별로 없었다.


신도시 입주가 끝난 다음 해에 이사간거라 학교가 그리 낯설진 않았다. 전에 다니던 학교와 학급당 인원수며 학교외관도 다 비슷했다. 아파트 단지 속에 박혀 있는 것 빼고는.


아, 여중에 다니다가 남녀공학으로 갔던 거라 내심 기대가 없었던 건 아니나 남녀각반이었고 어느 해에는 층수도 달랐기 때문에 그냥 여중감성이었다. 근데 4회 졸업, 5회 졸업..뭐 이런 식었다. 동문회있는 학교들 부러웠다우.


야탑동은 분당에서도 외져서 학원이나 유흥시설은 분당 안쪽으로 들어가야 했다. 학원은 당시만 해도 학원셔틀이 다니던 시절이라 미금역이나 서현역쪽으로 다녔고, 분당에서 놀 곳은 서현역이었다.


95년인가 서현역에 삼성플라자(현재 AK플라자)가 생기면서 베드타운에서 소비타운으로 한 걸음 나아갔고, 그 전후로 초림역(현재 수내역)에 블루힐백화점(현재 롯데백화점)도 개점하면서 굳이 서울로 나가지 않아도 분당에서 놀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신도시가 놀만한 동네, 다른 말로 인프라가 좀 갖춰진 동네가 되려면 5년 정도는 몸테크를 해야할 것 같다. 5년 정도 지난 후에야 이제 좀 살만하네, 싶었다. 교통도 놀 곳도 학원도 마트도 식당도 별로 없는 곳에 적응하고 발전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좀 살만해졌다 했던 시점에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말도 잠시 돌았다.


90년대의 분당은 비평준화였기 때문에 고등학교도 입시였다. 나름의 상처가 깊어 내 고등학교 이야긴 하지 않겠다. 흑.


지금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나 중학교때는 o송중학교가 뛰어난 편이라서 선생님들이 시험 칠 때 마다 그 학교랑 비교하며 우리보고 공부좀 하라고 하셨었다(지금은 ㅇ매중학교라고 하데요).


그 학교에서는 민사고도 몇 명씩 갔었다. 내가 다녔던 o탑중학교에서는 거창고에 간 친구가 한 명 있었고, 옆 동네 다른 o탑중학교엔 양민아(현재 신민아)가 다녔고, ㅇ매 고등학교엔 왕빛나, ㅇ내 고등학교엔 조윤희가 다녔다. 누가 입어도 못 생겨보일 수 밖에 없는 교복과 체육복이 그녀들이 입으면 확실히 달랐다. 연예인은 평범해 보여도 연예인이고, 평민은 예뻐봤자 평민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다.


2000년대 중반 판교신도시가 들어섰다. 길 건너 허허벌판에 신도시가 생긴다고? 전 국민의 관심속에 신도시가 위용을 드러냈다. 이미 인프라가 풀로 세팅된 곳의 옆 동네라서 그런지 되게 쉽고 빠르게 도시가 완성되어 가는 것 같고, 한참 구축에 들어선 분당 아파트들에 비해 구조도 외관도 조금은 진화된 판교아파트들을 보고 있자니 부러움이 몰려왔지만 처음부터 전세로도 덤빌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게다가 판교테크노밸리가 형성되면서 소비타운, 직장타운, 교통의 요지(요즘 모든 노선은 판교로 통하는 듯?)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도 코로나때문인지 한때 핫했던 라스트리트의 대다수 상점들이 문을 닫아서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이젠 신도시라고 하면 광교나 판교가 신도시지 분당이나 일산을 신도시라고 하긴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 시간이 흘렀고 시대가 달라졌다 해야하나 바뀌었다 해야하나. 그래도 분당이 쥐고 있는 것은 학원가라고 해야할까 교육열이라고 해야할까. 비평준화로 시작했기 때문에 학부모들의 교육열과 학원가 형성에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고 입지상 강남이랑 가까운 영향도 있을 것이다.


신도시가 많이 들어서도 사실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인 것 같다. 강남에 가까운 분당이, 분당에 가까운 수지가 교육열과 학원가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광교나 위례에 분양받아서 살다가 아이가 초등고학년이 되면 학원인프라가 갖춰진 곳으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낙후되어도 집값이 버텨주는(사실 올라가는) 이유에는 서울과의 접근성 다음으론 '교육'의 이슈가 아닌가 싶다.


학원가를 가지고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이 좀 웃기긴 하지만.




1기 신도시 30년이 가까워지며 재건축 이야기가 나오려나. 주공아파트 중엔 리모델링이 확정된 곳도 있고, 저층 아파트들은 가격이 완전 상승하기도 했다. 지금이야 워낙 집값이 시버머니(cyber money)같아서 그러려니 싶긴 하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하다.

개나리아파트나 개포시영아파트 허물고 올라간 브랜드아파트들 같을지.

내 살아있는 동안 그 광경을 볼 수는 있을지.


그나저나 이런저런 세금 내면서 이 동네에서 사는 걸 버틸 수 있을지.

나도 버텨야 하지만 우리 부모님도 버티셔야 하는데.


버텨서 이제 좀 사람사는 동네가 된 것 같아, 했는데 이제는 살기 위해 버텨야 하는 시기다.


신선한 충격도, 교육열의 압박도, 집값상승의 부담과 환희도, 살아갈 날들에 대한 걱정도 준 이 동네를 ㅅ...사.....그냥....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