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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Aug 10. 2022

혼캉스란 무엇인가

조용히 있고 싶어 택한 혼캉스였습니다만

육아에 관련해서는 스트레스를 쉽게 받고 많이 받는 편이다. 사람마다 적성과 특기가 다르듯, 육아도 묵묵히 잘 하는 친구들이 있고, 묵묵하지 않아도 잘 해내는 친구들이 있는데 나는 아직도 나의 육아인생에 적응이 되지 않는다. 첫째가 10살이 되었으니 이제 좀 수월해질만도 한데 수월해질만도 한건 평균이 그렇다는 거지 나는 아닌 것 같다.


 6월 말쯤 아이들 수발드는게 너무 힘든 나머지 폭발을 해버려서 남편에게 나만의 분리시간을 요청했다. 당시는 학기중이라 사실 내가 나가는 게 그다지 메리트가 없어서 조금 더 참다가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여름 방학이 시작되면 바로 나가는 걸로 합의를 했다.  기다림끝에!


 7월말, 드디어 나의 혼캉스!

*혼캉스 : 자 호텔(혹은 집이 아닌 공간에서) 바캉스을 즐긴다는 신조어



혼캉스는 노보텔엠베서더동대문, 입구부터 플레이모빌이 있고 난리! 내가 플모 얼마나 좋아하는데ㅠㅠ 13층 내방뷰는 나름 굿



 2박3일이었는데 대체 무슨 계획을 세워야할지 모르겠더라.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지킬 의지가 없으니 지켜질 가능성도 없고, 막상 2박3일이라고 하니까 너무 길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던 절정의 시기는 조금 비낀 다음이라 어차피 남편도 휴가를 낸 상황이니 가족여행으로 돌릴까 잠시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러지 않기로.....떼끼! 그런 생각은 하지말자!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자규!



 계획은 없이, 그러나 돈과 카드는 챙겨서, 수영은 겁나 할거니까 수영복은 여러개 챙겨서 예약해놓은 호텔로 출발했다. 체크인 후 잠시 적막.... 막막..... 해서 텔레비전을 켰는데.... 텔레비전 없던 집에 살다가 텔레비전에 스타들 나오니깐 막.. 폰이나 컴 화면으로 보다가 큰 화면으로 보니 실물 같고 신기하더라고!



 


 이렇게 늘어지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호텔주변을 돌았다. 호텔은 동대문에 위치한 노보텔이었는데 DDP때문인지 우주미래도시 같기도 하면서 왕년에 우리를 끌어들였던 옷시장, 그 맞은편엔 다복한 식당들이 늘어져있어 신나고 신기했다!





 내가 사실 혼자 커피도 마시고 영화도 보지만 혼밥을 해본 적이 없어서 좀 두려웠다. 카페에서 케잌같은거는 먹지만 식당들어가서 혼자 밥 시켜먹는다는게, 좀 청승같기도 하고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공복에 장사가 없어 당당히 식당으로 들어갔다!

 어서와, 혼밥은 처음이지!

 새로운 시도를 싫어하는 편이라 도시락을 사서 객실에서 먹을까 했지만, 가고싶은 카페도 있었기 때문에 굳이 호텔에 왔다갔다 하기도 번거롭고, 계절은 여름이라 공복에 굴복하고 혼밥시작! 혼자니까 괜히 뻘쭘해서 소금구이정식을 후루룩후루룩 먹었더니 만원짜리 밥이었는데도 배가 반 밖에 안찼다.



정그리다 라는 카페


 


 검색해놓은 카페도 갔는데, 힙할수록 여럿이 가는 게 맛있것 같다. 복잡하고도 즐거운 곳에서 혼자 있으니 그 좋은 공기를 오로지 다 내가 집중해서 가질 수 있어 좋기도 했지만 적적했던 것도 사실. 적적하다, 조금은 외롭다 하면서도 시간은 잘도 흘러 예약해놓은 수영시간이 다가와서 호텔로 고고! 무려 루프탑이라고!


 역시 젊음의 기운은 힙 to the 힙!!

 나 자신에게 좀 웃겼다. 혼밥은 두려워하면서 혼루프탑은 할 생각이었다는게..


 



 심장을 어택하는 빠운쓰가 강렬한 가운데 친구끼리 몸을 흔들고, 서로가 서로의 기자가 되어 사진을 찍어주거나 둘이 한 몸되어 부둥켜 안고 있는 젊은이들 사이로 40대아줌마 혼자 당당히 루프탑에 입장했당게.


 "1인이신가요?"

 "네!"

 목소리도 참 자신만만하지.

 

 너어어무 좋던데요?

 내적댄스를 과격하게 추고 외적 발땐쓰도 춰가면서 이 시간을 충만하게 누렸다. 한 여름이라 그런지 보통 수영장에서 나오면 추웠는데 수영장 안이나 밖이나 온도차가 없어서 드나들며 즐겁게 놀았다.


 실내 수영장으로도 자유롭게 이동하며 놀 수 있었는데(루프탑은 노키즈) 실내 수영장은 중고급레인이 따로 있어서 폭풍수영할 사람들은 분리된 레일에서 수영할 수 있었다.


 루프탑에서 점잖게(?) 즐긴 나는 실내 수영장에 가서 폭풍수영을 했다. 결혼하기 전에 2년간 초급에서 시작해 접영까지 마치며 혼전 다이어트를 완수한 때를 떠올리며(무려 10년전) 시도했는데, 첫 날엔 자유형 편도도 숨찼지만 마지막 날 아침에는 왕복2회반까지 성공했다.

혼캉스의 큰 소득이다.



더 현대서울, 올댓커피/ 용리단길, 인커피서울


 블로그에서 내적친밀감 오지게 있던 분들과 여의도에서 오프라인 만남도 가졌고, 오랫만에 연락했더니 카페를 열었다는 친구를 찾아 용산에도 갔다. 사통발달에 있으니 용산도 여의도도 20분컷이다. 경기도인 우리집에서는 1시간 반씩 잡아도 간당간당인데.

 밤엔 근처가 회사인 친구를 불러들여 외박을 도모했다. 집에 옷이 쌓여있지만 입을 만한 옷은 항상 없기에 야시장에 가서 옷쇼핑을 하고, 12시에 루프탑가서 칵테일도 마셔불고, 수다떨다 잠을 잤고, 나는 휴가였지만 출근해야하는 친구와 조식을 먹으려고 했지만 조식이 4만원이 넘더라고?ㅋㅋ그냥 밖에서 사먹었다.


 


 낮의 동대문, 밤의 동대문, 야밤의 동대문, 아침의 동대문, 서울어디든 30분컷으로 갈 수 있는 아름다운 입지! 아, 서울에 살고 싶다.



 체크아웃을 하고 2시간정도 기다리자 아이들과 남편이 데리러왔다. 서울구경하러 온거다. 반가웠지만 노크도 없이 시작된 현실판 현실. 쌩리얼 현실판 내 인생. 2박3일동안 가족생각 전혀... 안 난건 아니지만 거의 안났던 이유가 있었어. 현실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쓰나미로 닥쳐와.


 2박3일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나.


 무슨 생각을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그냥 생각을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뭐랄까, 나에게로의 침잠이랄까, 뭐 그런 걸 하고 싶었다. 뭘 써야할 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쓰고 싶었고, 남기고 싶었다. 결혼 10주년을 기념한 이벤트니까 뭔가 철학적이고 좀 멋지게. 알고 보니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 하는 그런 증거를 갖고 싶었달까.


 

 쾌적한 공간, 나 혼자, 뛰어난 교통, 아름다운 낮과 밤을 오로지 내가 다 누릴 수 있는 상황에서는 사색이고 침잠이고 뭐고 일단 됐고! 일단은 이 모든 것을 누리고 볼 일이었다.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은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에 가 있는 시간이면 충분했던 것 같다. 그 시간들은 내가 꼭 사수해야하기 때문에 더 소중하게 아끼니까.

 

 이번처럼 혼자의 시간이 떼로 몰려왔을 때는 멈췄던 인연을 다시 이어 시간을 나누고 어려웠던 시도를 해보는 것이 어쩌면 나에게 더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시간을 쓰고나니 너무 신났고 좋았다. 사람마다 시간을 쓰는 방법이 다르지만 나는 시간과 함께 쌓아올린 관계를 중요시하는 것 같다. 태어난지 40년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도 나를 알아가고 있다. 알아가고 있는 단계. 사랑을 담아 알아가자, 내 자신.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잘 크고 남편과의 관계에 별 일이 없으면 기회가 또 오겠지. 내가 누린만큼 남편에게도 베풀어야겠고. 잊을 수 없을거다. 2박3일의 꽉찬 즐거움과 나름의 성취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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