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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Jan 06. 2023

독자의 권리, 독자에게 그리움을 허하라

 미우라아야코탄생100주년기념


아직 따스했던 봄에 내 폰으로 날아든 카톡공지는 상당히 설레는 내용이었다.

미우라아야코탄생 100주년을 맞아 12월에 홋카이도로 문학기행을 간다는, 내가 다니던 인문학교실의 공지사항이었다.


어머, 12월이면 아직 아이들 학기중이고 적당히 남편과 엄마에게 부탁드리면 주말포함 5박6일정도의 나의 부재는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남편에게 의견을 묻기도 전에 이미 나는 가겠다고 신청을 했고, 여행인원이 채워져 확정이 되었을 때 남편에게 말했다.


 "결혼 10주년이잖아. 우리 각자 기념하자. 나는 홋카이도에서 기념할께."


 "그래!! 자기는 자기 좋아하는 거 하고, 나는 나 좋아하는 거 하고!!"


 민주주의는 좋은 거시다.




 연말이라 주중 4일을 다 휴가내는 것은 좀 어려워서 친정엄마께 부탁을 드려야 하는데, 엄마한테 얘기하는게 좀 어려웠다. 늘 엄마의 잔소리(잔말씀?)


 "김서방이 뭔 죄냐.."


그럼 난 뭔 죄유? 나는 내 취미생활 하믄 안되는가? 10년 열심히 살았잖아.


어찌저찌 남편과 엄마의 윤허가 떨어졌고, 아이들은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엄마 출장가? 몇 밤 자고와? 5밤만 자면 엄마 와?


정도를 그렇게 처량하거나 애틋하게 묻지 않고 그냥 엄마 커피좋아해? 정도의 느낌으로 물었다.



오전 6시30분에 공항에 도착하기 위해 5시10분 공항행리무진을 탔고, 공항에 내렸을 때는 눈이 휘날려 비행기가 잘 뜨려나 싶었고, 3년만에 들어가본 인천공항은 인산인해, 한 눈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담아보긴 처음이었다.


 홋카이도는 추울거라고 해서 내복+티+니트+후드+코트+목도리 까지 과잉장착한 나 같은 사람과 동남아로 가시는지 얄프리한 원피스에 얇은 가디건 정도를 걸친 사람들이 한대 뭉쳐 적절한 온도를 못찾겠더라...



오겡키데스까 언덕에 오르는 중



삿포로는 생각보다 멀었다. 보통 후쿠오카가 1시간 좀 넘고, 오사카가 2시간 정도 아니었나. 가까운 나라 일본을 3시간 넘게 간다니, 그 자체가 낯설었다. 그래서 설렜고 기대가 더더욱 뻗쳐올랐다.


삿포로 공항에 내렸는데 눈이 없어....

여기 삿포로 맞나? 좀 아쉬울 뻔 했는데 슬슬 시내로 들어가니 눈이 쌓인게 정말, 무릎정도는 예사이고 허리까지도 차 있었는데 옛날 티코만한 차들이 그 눈길을 힘차게 달려가는게 눈으로 보면서도 신기했다. 차들이 계속 달리는데도 눈길이 하얗게, 계속 하얀채로 하얀 길을 만들어주고 있는 것도.


자연의 아름다움은 봐도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멋지고 아름답고 황홀한 모습은 정말 리즈를 갱신갱신개개개개갱신해가며 나의 눈과 마음과 머리와 영혼까지 꽈아아악 채워주었다.


오타루와 비에이, 천구산 등 유명한 영화의 촬영지, 무라카미하루키소설에 등장한 지역, 북해도도립문학관, 와타나베준이치 문학과 등을 거쳐 미우라아야코기념관에 가는 것은 5박6일중 4일째 일정.




시오카리고개기념관, 미우라아야코의 소설 <시오카리고개>의 배경지에 건립된 기념관으로 미우라아야코가 머물던 잡화점이자 집이 최대한 원형대로 복원되어 있다. 관람은 4월~11월만 가능



미우라아야코는 내가 중학생시절부터 좋아하던 작가였다. 엄마가 재밌게 즐겨보던 드라마의 제목이 <빙점>이라니 좀 낯선 제목에 시선이 쏠렸고 당시 드라마에 나왔던 이미연의 미모가, 지금도 그렇지만, 어린 내가 보기에도 너무 예뻐서 사실 내용보다는 이미연 보다가 끝났던 것 같다.


 원작이 되게 유명한 일본 소설이라는 엄마의 설명으로 <빙점>과 <속빙점>을 읽었는데,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 정서로는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뭔가 되게 긴박하고 재미있게 내용이 전개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20대가 되고 30대가 되며, 사노요코도 알고 마스다미리도 알게 되면서, 새로운 일본작가들을 알게될 때마다 첫 정이었던 미우라 아야코도 같이 떠올랐고, 그가 떠올라 오래 머릿속에 머물때면 그의 작품을 찾아 읽곤 했다. <길은 여기에>, <이 질그릇에도>, <빛이 있는 동안에>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10년주기로 <빙점>도 다시 읽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종교색이 짙은 내용으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너무 종교쪽으로만 분류되고 해석되어 그가 가지고 있는 상당히 날카롭고 객관적인 사의식이 저평가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시오카리고개>, <총구>등을 읽어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 그를 항상 만나보고 싶었다. 그의 기념관은 아사히가와 라는 다소 생소한 곳에 있다던데, 삿포로행 비행기만 타면 갈 수 있는건가. 어떻게 가는거지, 나는 일본어를 모르니 간다고 뭐 대단한 감흥을 얻겠나, 그래도 가고 싶은데, 이런데 가는 패키지는 없나,....


그를 흠모하는 30년가까운 세월동안,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어 해외의 장소들도 충분히 편하게 검색할 수 있게 된 20년전부터 나는 문득문득 이곳이 궁금했고 검색했고 가고싶어했다.


그랬던 곳에 간다니.

불현듯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을 느낄 때면 나는 순간순간 울컥울컥해지기도 했다.




우리가 머물던 숙소에서 20분 정도 달렸나, 숲이 울창한 곳에 버스가 들어섰다. 도착했다고 했다. 내렸다.






미우라아야코기념문학관




문학관건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미우라아야코탄생100주년이라 100주년기념 사진집을 판매하고 있었다.


1층은 전문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관람할 수 있는데, 우리 일행 중 미우라아야코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 계셔서 학예사의 설명을 바로 통역해주셔서 편하게 들을 수 있었다.


 미우라아야코의 생애와 그의 대표작인 <빙점>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연대기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미우라아야코에게 관심이 많아 그의 책을 꽤 읽었거나 검색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은 사진들일 것이다(나는 그랬다).





2층은 이렇게도 멋진 공간이 한 켠에 마련되어 있었다.




 사실 문학관에 도착하기 전부터 막 두근두근했다. 공황장애도 없는데 왜 이러나 싶을 만큼 마음이 울컥울컥하기도 했고, 뭐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자꾸 올라와서 나도 내가 낯설었다.


 인생을 통틀어 (패키지이긴 하지만)혼자 여행이 처음이고 결혼10주년 여행을 혼자하다니 너무 감격적이기도 하고, 행복하기로 들면 행복의 최상급을 누리고 있는 중이라 이런가보다 했다.



결국 나는





오열했다.




30년을 쌓아올린, 쌓이는 줄도 모르고 쌓아올린 그리움의 크기가 생각보다 많이 컸던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인데, 좋아하니까 궁금하고 궁금하니까 검색하고 추적하고 파헤치는데, 지역의 한계가 있으니 가보기가 어렵고, 언어의 장벽이 있으니 표현과 이해의 한계가 너무 뚜렷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날, 그 모든 한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상황과 공간이 주어지니 그동안 그리움뒤로도 쌓여있던 궁금함과 답답함, 약간의 원망과 짝사랑의 괴로움이 한번에 터졌던 것 같다.




내가 당신을 마음에 품어온 지 근 3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왔네요. 이제야 만났네요.



근 30년을 켜켜이 쌓아둔 내 그리움의 크기가 보이나요.

알고 싶지만 더 알 수 없어 답답했던

내 궁금함의 크기가 보이나요.

한국에서 온 당신의 애독자입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10대시절부터

나이들어 무던해졌어도 예민한 40대까지 당신의 작품은 내 인생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모르겠지만 당신의 작품은 나를 알고 나는 당신의 작품을 알고 있어요.

이렇게나 끌어당기는 힘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요.

당신의 글은 나를 끌어당깁니다.





반갑습니다.
보고싶었어요.


내 엄마와 내가 당신과 당신의 글을 참 좋아했습니다.
궁금했어요. 당신의 글 밖에 있는 것들도요.



많은 것이 궁금했고 많이 그리웠는데

막상 이곳에 오니 뭘 궁금해했고 뭐가 그리웠는지 모르겠는 막막함도 있었다.



함께 계셨던 박사님들의 연구를 우리와 나누셨기에 지식도 감정도 상당히 채워져 궁금함이 해소되기도, 오히려 그리움이 증폭되기도 했다.





문학관 만큼이나 궁금했던 시범림(혹은 견본림으로 번역되었다). 소설속에 나오는 쓰치구시 병원장의 딸 루리코가 시범림을 거쳐 비에이강으로 달려가 울다가 살해당했고, 그후에 입양된 요코가 자살시도를 한 곳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요코와 도오루 등 소설속 젊은이들의 고민과 아픔을 감싸주던 곳이 시범림이다.


어떤 모습일까 상상만 했는데 생각보다 나무들이 엄청 크고 높고 울창하고, 하늘을 보려고 애를 써 고개를 들어야 하늘이 보일 정도라 낮은 땅과 높은 하늘을 체감할 수 있을 만한 곳이기도 했다.





시범림을 따라 주욱 걸어가면 언덕이 나오고 언덕을 올라오면 졸졸 흐르는 비에이강이 나온다. 사진에서 오른쪽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다녀온지 2주쯤 지났는데도 사진을 고르고,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떠올라 순간순간 벅차오르고 눈물이 고이고 했다.


 예기치못한 기쁨은 결혼10주년 선물로 너무나 완벽했고 아름다웠다. 아직도 내 정신줄은 삿포로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는 중.




홋카이도 아이스크림 못참지만 특별한 맛은 아니었던 걸로..


 박완서작가님이 떠올랐다. 돌아가신지 20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아직 기념관도 문학관도 없다(구리시 인창도서관 내에 "박완서자료실"이라는 공간이 있다). 독자의 권리는 작가의 책을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있지만 또 작가의 삶과 세계를 궁금해하고 그리워할 권리도 있는게 아닐까.


순간순간 박완서님이 떠올라 그리움이 차오를 때면 어디에 가서 그리움을 토로할 수 있는지, 그의 삶의 흔적은 어떻게 더 파헤칠 수 있는지 답답하고 막막할 때가 있다. 남겨진 사람이 감당해야 할 그리움의 크기, 그리울수록 차오르는 궁금함과 외로움 같은 감정은 우리는 물리적인 몸을 가졌기에 시간속에 허락된 공간에서야 비로소 해소되는 일들이 있는 것 같다.



책을 좋아해서 책을 읽지만 다가오는 것은 책 내용만이 아니었다. 책 속 인물들, 인물들의 인생, 인물을 만들어낸 작가와 그의 삶까지도 나에게 다가온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아직도 처음 느껴보는 감정과 처음하는 경험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그의 남은 글들은 여전히 살아 내 삶과 생각을 움직이고 새로운 감정을 맛보게 하고 없었던 일을 내 인생속에 만들어 줄 것이다.


만나고 왔지만 여전히 그리운 미우라아야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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