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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호정 Feb 15. 2023

결혼10주년은 각자 기념하자

10년이나 같이 살았으면 됐지, 굳이 여행까지..

산후우울을 떨치려 고군분투하던 시절, 텔레비전도 없는 집에서 나의 괴로움을 이해해주는 것은 책, 책읽기 뿐이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입소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개월수가 되자 나는 던지듯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점찍어두었던 인문학교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냥 읽는 것에서 알고 읽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싶기도 했고

내 존재의 이유가 똥기저귀갈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이 연사, 당당히 외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인문학교실에서 2022년 4월쯤에 공지가 날아들었다.

12월에 미우라아야코탄생100주년기념 홋카이도문학기행 을 갈거니까 갈 사람 신청하라고.


미우라아야코라니

문학기행이라니

너무 있어보이는거 아닌가

얼마나 바라왔던 미우라아야코인가.



미우라아야코문학기념관(기념문학관?)




중학교때부터 흠모해왔던 미우라아야코.

그의 기념관이 아사히가와에 있다는 것을 알게된 후로 얼마나 많이 검색하고 가고싶어 했던가!


언어의 장벽과 지리적 장벽, 이 두 가지를 다 초월해줄 수 있을 줄 알았던 남편은 책읽기는 커녕 글씨읽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사람이라 인간적 장벽까지 안고 내 사는동안 갈 순 있는건가 했는데 근 30년이라는 시간의 장벽을 초월하여 결혼 10주년에야 비로소 아사히가와, 미우라아야코기념문학관에 갈 수 있었다.




근 30년의 그리움이 폭발한 나머지 거의 입장한지 얼마 안되서 꺼이꺼이 울었답니다ㅠㅜ


그 외에도 홋카이도대학교, 와타나베준이치문학관, 북해도립문학관 등을 둘러보며 홋카이도출산 작가들의 흔적과 홋카이도의 역사까지도 피상적으로나마 알게 되었고



미우라아야코가 운영하던 잡화점은 <시오카리고개기념관>으로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11~4월엔 내부관람불가ㅠㅠ


일본 최북단 와카나이까지 가면서 칼(KAL)기 격추사건이 있었던 자리, 영화 <러브레터>의 오겡키데스카 언덕, 무라카미하루키 원작 <드라이브마이카>의 촬영지 등을 돌며 영화와 슬펐던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칼기 격추사건 위령비
와카나이스테이션
드라이브마이카 촬영지
홋카이도대학교 크라크흉상







같은 취미, 혹은 취미이상의 것이 비슷하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어떤 작가에 대해, 어떤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든 다 알고 다 통하고 의견은 다를지언정 책과 작가에 관련된 어떤 이야기라도 대화가 이어진다는 것이


사실 내 주변에서는 선택적으로 이루어졌던 일이기 때문에 신선하고 신기하고 즐거웠다.


보고 듣고 읽고, 그것들을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말을,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행동이 나의 내면에 주는 깊은 안정감은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추위와 눈을 이기고 맺힌 열매.

이 친구도 버텨온 세월의 질곡이 있었겠지.

멀리서, 타국에서, 오랫동안 키워온 나의 그리움도 비로소 열매맺었다.


불혹,

여전히 흔들리지만 흔들리지 않는 척이라도 할 수 있는 적당한 나이에.

조금이나마 미우라아야코의 인생에 더 많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나이에.







이 여행은 결혼10주년기념선물로 받은 여행.


너는 너대로 기념해라

나는 나대로 기념할께.


나에겐 지금 이 여행을 보내주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인데

너는 이런 여행에 가고싶지 않을테니 너는 너대로 가.




그래서 문학기행 첫 날,

자기소개를 하던 시간에 나는 말했다.


"사실 이 여행은 저의 결혼 10주년 기념여행이에요. 제 10주년여행에 함께 와주셔서 감사해요."


허허^^


출산 후 우울감이 심했는데 집착적으로 책을 읽으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여러 위기의 끝에 지금이 있다,

감사하고 기대되는 여행이다, 라고도 말했던 것 같다.


단언컨데,

어느 누구의 10주년여행보다도 아름다운 여행이지 않았나 싶다. 아니다, 굳이 비교할 생각은 없다.


그냥 최고다. 최고였다.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들, 특히 기쁨과 감격에 관련된 감정들을 5박6일동안 충실하게 느꼈고 그 느낌을 충만히 누렸다.


모르는 분들과 가는 여행이라 룸메이트에 대한 염려도 있었는데, 다행히 나보다 1살 많은 언니가 내 룸메가 되었고 그 언니는 내향형이라 내가 먼저 말걸지 않으면 말이 없었다.


먼저 말을 하는 경우는

"저 화장실 쓸건데...." 정도.....


화장실이나 화장대와 드라이기를 점유하는 것, 대화도 말도 없는 적막의 시간을 보내는 것에 그 어떤 충돌도 어색함도 없었던, 방 안에서까지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곱씹어봐도 감사했던 시간.


그 순간을 살아가면서도 이건 내 현실인가, 나는 이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나,




누구의 불편함을 담보로 나는 편함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걸까, 하는 우려아닌 우려도 했었다.


긴 독서와 깊은 애정의 진가를 누렸던 시간.

감사했다.


딱 10년이었을 때, 우리는 지난 10년의 소회를

"우리 진짜 개X랄로 버틴 10년이었어."

라고 말했었는데, 그 개X랄의 열매가 이 정도의 여행이라면-


충분히 버틸만 했던걸로. 그랬던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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