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체험단이 최고시다
신장암으로 투병하시던 아빠가 발병 6달만에 돌아가셨다.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생각했다. 말기암환자도 2~3년은 살던데 말기도 아닌 아빠가 왜, 라고 따지고 들어봤자 힘든 건 나 자신이다. 자연스러우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아 꾸역꾸역 아빠의 부재를 인정하고 현실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마지막 명절이 되고만 재작년 추석때, 엄마아빠에게 제주도에 가서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풍경 보고 오자고 했지만 아빠는 유난떨지 말라며 항암일정을 핑계로 나의 제안을 거절하셨다. 그러면 항암 잘 받으시다가 애들 겨울방학인 2월쯤에 가보자고 얘기했었다. 하지만 아빠는 해를 넘기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아빠를 보내고 첫 명절이던 설날. 엄마에게 집에 있어봤자 뭐하겠나, 같이 제주도에 가있자고 했다.
"무슨 제주도같은 소릴 하고 있어! 난 집에 있을거야."
"집에서 뭐하게? 엄마 설날 여기 있다고 하면 고모들이랑 작은아빠들이 오시려고 하겠지? 그럼 또 식사대접하고 뭐 그러고 있을거야? 딸램이 제주도로 끌고 갔다고 하면 잘했네 잘 놀다와, 효년났네 할거아냐."
"야, 남편 보내고 아주 노느라 신났단 얘기해~"
"(세계관 충격)......뭐??? 어떻게 그런 생각이 가능해? 어이없네."
"내가 그냥 살던대로 사는게 애도야."
"명절엔 놀러가는게 일반이야."
모처럼 효도하려고 했다가 다소간 언쟁이 되어버렸다. 엄마는 본인이 상당히 개화된 요즘 할머니라고 생각하지만 문득문득 세차게 들이대는 옛날 사람스러운 말에는 내 기가 탁탁 막힌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땅을 밟는 안정감을 느껴보자, 일찍 오는 봄을 맞아보자, 지금의 제주도는 엄마가 알던 제주도가 아니라고 엄마를 얼르고 달래다시피해서 겨우겨우 날짜를 맞췄다.
엄마는 우리 애 둘에 이어 동생네 애들도 봐주고 계셨기 때문에 동생네랑도 일정을 조율해야했고 김서방(내 남편)한테 미안해서 어떡하냐는 말도 안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김서방은 꿀연휴를 혼자서 꿀처럼 보낼거라 좋아 날아다닐텐데 뭐가 미안하다는건지. 어찌저찌 잘 조율하여 숙소와 비행기를 확정했다.
명절 당일은 지키고 싶어하는 옛사람인 엄마를 배려해서 당일 오전에 동생네와 간단히 설날 행사를 마무리하고 오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다. 백년 손님인 엄마의 사위는 집에 두고 나와 엄마, 애들 둘의 제주여행이 시작되었다.
전업주부가 된 후 첫 여행이었다. 남편이 눈치를 주는 건 아니지만 전업주부생활에 채 익숙해지지 않은 나로서는 남편도 안가는 여행에 이런저런 지출을 만드는 것이 민망했다. 지금 생각하면 왜그랬나 싶지만 그땐 좀 그랬다. 여행을 준비하며 체험단앱을 열어 제주도의 식당과 해볼만한 체험이 있는 것들을 검색해보았다. 우리가 머물 숙소 가까운 곳이나 우리의 이동동선에 들를 만한 고깃집, 국밥집, 도자기체험 등이 꽤 있었다.
어차피 식사때가 되면 밥은 먹을거니까 식당에도 신청을 하고, 제주하면 흑돼지니까 고깃집도, 아이들은 이런저런 체험 좋아하니까 체험도 신청했고, 다행히 내가 계획한 동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곳들이 선정되었다. 횟집과 승마체험이 선정되면 좋겠다고 내심 바랐는데 좋은 것에 대한 사람들의 열정은 다 비슷한 법. 선정되지 않았다.
식당에 가면 먹기 전에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야 하는게 엄마 보시기에 유난이다 싶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사진만 찍어서 보내면 밥이 공짜냐'며 젓가락들고 들이대는 아이들을 오히려 엄마가 제어해주시고 이렇게 해야 더 잘 나오지 않냐며 반찬위치와 뚝배기등의 자리를 잘 만들어 주셨다.
엄밀히 말해 공짜는 아니다.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들 중에 괜찮은 것을 고르고 음식의 맛과 식당의 분위기, 서비스등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글로 펼치는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드는 일이다. 다행히 그것이 나한테는 힘든 노동은 아니기에 '공짜'에 방점을 찍고 음식을 즐길 수 있었다.
제주에는 해장국집이 특히 많은데 우리가 체험단으로 갔던 곳에는 '선지해장국'도 팔고 있었다. 한동안 아빠의 간병을 하느라 늘 순한 것만 드셔야 했던 엄마였는데 메뉴에 선지해장국을 보는 순간 엄마는 너어어무우우 좋아하셨다. 내가 7~8살이던 시절에도 '선지국'이란 말을 알았을 정도로 엄마는 선지를 좋아하셔서 식당에 가서 먹기도 하고 선지를 사와서 집에서 만들어 먹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 선지를 1년여만에 조우한 엄마는
"나는 선지선지선지!!"
엄마의 열정에 당황하여 선지해장국을 주문했다.
"어머, 얼마만의 선지국이니, 어머 웬일이야.. 오늘 아침부터 너무 힐링이다야.."
초등 고학년에 이른 우리 아이들을 아직도 베이비처럼 챙겨주시던 엄마는 갑자기 태세전환을 하시며
"얘들아, 니네 뜨거운 것도 잘 먹을 수 있지? 할머니는 이거 먹어야 되니까 니네 알아서 먹어. 할머니껀 매워서 니네 못 먹어."
하면서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텐션과 열정으로 선지해장국을 드셨다. 평소에 그렇게 열심히 음식을 드시지 않는 엄마였는데 열심히 드시는 모습이 신기하고도 뿌듯했다. 내가 계획했다면 포함하지 않았을 메뉴다.
"할머니 그거 맛있어요? 저도 고기 주세요!"
아들은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인데 엄마가 숟가락으로 뜨는 선지가 고기인 줄 알았나보다.
"이거 고기 아니야. 핏덩어리야, 핏덩이. 먹을 수 있겠어? 넌 못 먹어."
선지 한조각도 뺏길 수 없는 엄마의 집념이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나는 7살때부터 먹었는데 뭘 못 먹어?"
했지만 아들은 핏덩어리라는 말에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며 자기의 순대국을 열심히 먹었다.
엄마는 얼마만에 얼큰한 걸 먹은건지 모르겠다며 너무 맛있고 감동적이라고 했다. 식당 사장님께도 이렇게 맛있는 선지는 어디서 구하시는거냐며 스몰톡을 하셨다. 식당에서 창으로 선물가게가 보였는데 거길 보자마자 애들이 식사 나오기 전까지 저기 좀 다녀오면 안되냐고 노래노래를 불렀다. 길을 건너야 하기도 하고 같이 움직여주기가 귀찮아서 밥 안남기고 다 먹으면 같이 가주겠다고 하며 붙들어놨었다.
"할머니는 맛있는거 먹어서 기분이 너무너무 좋아! 니네 저기 가서 갖고 싶은 거 골라! 할머니가 다 사줄게!" 하시더니 선물가게로 가서 아이들이 고르는 감귤모자, 감귤귀마개 등을 다 사주시고 감귤젤리에 아이스크림까지... 식당에서 제공받은 음식값보다 더 많은 돈을 긁어 버리셨다. 맛있는 음식이 엄마의 카드를 춤추게 했다. 선지국먹은 식당은 특별히 더 신경써서 쓰라며 그날 하루종일 엄마는 너무 기분좋아했고, 지금도 가끔 그때 먹은 선지해장국 잊을 수가 없다며 말씀을 하실 땐 좀 뭉클하기도 안타깝기도 하다.
도자기에 채색을 하는 체험이 들어있는 카페를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신청했는데 그 카페에서는 롤러스케이트도 탈 수 있었고 방방이도 있고 오락실도 있었다! 아이들뿐 아니라 나도 완전 신나게 놀았고, 엄마는 요즘 젊은이들이 오픈하는 카페엔 이런 것도 있느냐며 신기해하셨다. 식당 주변이 바다, 카페뷰가 귤밭, 볼거리 많은 시장통에 있던 고깃집 등 제주에 오면 올레길만 걸었던 엄마에게 새로운 제주를 만끽하기에 좋은 곳들이 주변을 이루고 있어서 체험단이 여행을 예상치 못하게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사실 계획대로 해야 마음이 편안한 풀파워J이지만 이정도의 변수는 차라리 아름다운 것이었다. 차를 렌트하긴 했지만 좋은 몫에 자리하고 있던 체험단 식당과 카페 덕분에 크게크게 이동하지 않아도 제주의 많은 것들을 즐길 수 있었다.
제주여행을 마치고 집에 오니 남편은 아주 얼굴이 폈고, 다음에는 한달살기 다녀오라며 농담기 절대 없는 진담을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에 먹을 걸 다 싸갔어? 뭐 결제된 게 없던데?"
"체험단"
"체험단? 제주도에서도?"
"응!"
"에이~ 그래도 어머님이랑 가는데 좀 비싸고 맛있는 것 좀 먹지! 회는 먹었어?"
"아! 회를 안먹었네!"
"에이~ 어머님까지 모시고 체험단하는 식당을 가면 어떡해? 사위가 위신이 안서네."
"뭘 위신이 안서?"
"장사 잘 되고 맛있는데면 체험단을 왜 하겠어?"
사실 나도 체험단하기 전엔 남편과 같은 생각을 했다. 근데 직접 가봤을 땐 손님도 많고 평점도 좋은 곳들이 상당히 많았다. 다행히 좋은 곳들에만 잘 선정된 행운일 수도 있겠고. 생각해보니 회를 못 먹고 온 것은 내심 아쉬웠다. 체험단으로 갔던 식당들이라 좀 옹색해 보였으려나. 음식맛들은 다 좋았는데...
회를 못먹어서 아쉬운 건 사실이니 제주도에 또 갈 이유가 생긴거다! 연휴가 긴 올해 추석이나, 연휴가 길어 비싸다면 다른 기회를 빌어서라도 여유있고 즐겁게 다음 여행을 또 즐겨보고 싶다. 체험단과 함께, 아니 남편의 위신을 위해서 남편의 카드도 더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