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째는 작년 11월부터 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남편도 조금 겁이 나서 집에서 뽑아주지 못하고 치과에 가서 뽑았다. 그렇게 아랫니에 이어 윗니까지 빼자 아이가 부쩍 자란 것 같은 느낌도 들어서 나나 우리 부모님,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정말 학교 갈 때 다 됐구나. 다 컸네.”
하며 한마디씩 해주셨다. 스스로도 뭔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지 이모라고 부르는 내 친구들을 언제 만날거냐며 이모들한테 이 빠진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는데 며칠을 계속 이모들 만날 약속 정했냐고 물어대는 통에 작년 연말에 딸의 생일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친구들 만날 약속을 잡아 친구들에게 이 빠진 딸을 보여주며 칭찬(?)을 강요하는 이벤트까지 했다. 무려 특별한 날 아니면 잘 가지 않는 키즈카페에서 말이다.
앞니가 없으니 먹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아이에겐 재밌는 경험인지, 밥을 먹다 이 빠진 사이로 밥이 흐른다며 웃고, 우동을 먹다가 이 빠진 사이로 우동면이 빠져나온다며 그 모습을 직접 보여주어 우리 가족의 대폭소를 유발했다.
아가아가였던 우리 첫째 언제 이렇게 컸니. 정말 튼튼하고 예쁜니가 나올거야. 학교다니는 누나답구나 하며, 딸의 이빨쇼(?)가 있을 때마다 건네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며칠 전부터 둘째인 아들이 윗니가 아프다고 했다.
아이들이 이가 아프다고 하면 일단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딸아이가 6살 때 구강검진을 갔었는데 어금니가 많이 썩었다고 하여 충치 6개를 치료하는 일이 있었다. 충치 하나당 육만 팔천원씩, 사십만원 정도 드는, 우리를 충격과 슬픔에 빠뜨린 사건이었다.
남편이 워낙 충치에 민감한 사람이라 태어나서 지금껏 양치 한번 소홀히 한 적이 없었는데 이럴수가. 딸은 치과베드에 꽁꽁 묶여 두 주에 걸쳐 치료를 받은 후로 사탕이나 젤리, 초코는 냄새도 맡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그 덕에 집엔 달콤한 간식거리는 거의 두지 않는 편이고, 양치는 그때나 지금이나 확실하게 시키고 있는데 둘째의 이가 아프다니.
아무리 속속들이 들여다봐도 이가 썩지도 않았고, 가뜩이나 둘째의 유치는 치아마다 약간 간격이 있어 음식물이 잘 끼지도 않는다. 그런데 하루에도 두 세 번씩 아프다고 하고, 어디가 아프냐고 하면 항상 같은 이를 가리키며 아프다고 해서 진지하게 물어보았다.
“어디 부딪친 적 있어?”
“아니”
“썩은 것 같지도 않은데. 근데도 아파?”
“응”
“어디가 아프다고?”
“여기”
“자꾸 아프면 치과가야돼. 치과가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지? 그래도 치과갈거야?”
“응”
“지금은 치과 문 닫았으니까 내일까지 과자먹지말고 있어봐. 뽀로로비타민도 먹을 수 없어”
“응”
오. 진짜 아픈게 맞나보다. 뽀로로비타민도 못 먹는걸 받아들일 정도라면 진짜 아픈거구나.
다음 날 아침, 별 얘기가 없길래 그냥 지나가나 싶었는데 밥 먹다 말고 또 이가 아프다는거다. 아파서 밥을 못 먹겠다고. 꼭 치과에 가야겠다고 했다.
사실 치과는 나에게도 두려운 곳이다. 치이이이~하며 뿜는 석션소리나 물분사기(?)같은 건 그 소리만으로도 이를 시리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고 치과 특유의 냄새도 너무 무섭다. 아이 때문에 왔지만 무서운 건 나도 마찬가지인데, 이 아이 너무 여유있게 누워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다.
마침내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아들의 치아를 들여다보셨다. 치이익~하는 석션소리에도 의젓하게 누워 입을 벌리고 있는걸 보니 정말 아픈가 싶어 잠시나마 마음이 쓰였다.
“이상이 없는데...”
“제가 보기에도 그렇거든요. 부딪히거나 충격이 있었던 걸까요?”
“그럴 경우는 치아 색이 어둡게 변해요. 근데 딱히 어두워진 것 같지도 않고, 이 정도 수준이면 사진찍어도 뭐라고 안나오거든요. 좀 지켜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다행이다)네”
아무데도 이상은 없었지만 기본진료비는 지불했다. 나와서 아이가 물었다.
“나 아픈데 왜 치료 안해줘?”
“의사선생님이 살펴보셨는데 아무 이상이 없데.”
“이상하다고?”
“아니, 아픈 데가 없다고.”
“나는 아픈데.”
“이가 썩어야 아픈거고, 썩으면 이가 까만색으로 변하거든. 근데 지금 네 이는 흰색이야. 아프지 않을거 라는데. 한달정도 단거 먹지 말고 있어보자. 그래도 아프면 치과가서 니가 말씀드려.”
“한 달은 몇 밤이야?"
“30밤”
“힝. 나 아픈데.”
“(아 진짜 아픈건가 고민..)아파서 어떡하냐..”
“아픈데 왜 이빨 안 빼줘!”
앗! 그 때 깨달았다.
아들의 목표는 치료가 아니라 발치라는 것을!
누나를 보니 앞니를 빼면 음식을 먹을 때 조금 불편해 보이니까 옆니가 아프다고 했나보다. 흔들리지 않아도 아프다고 하면 뽑을 수 있겠지, 이를 뽑으면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들까지 모두 함께 축복의 말을 해주겠지, 그 덕분에 키즈카페도 가고 또 학교도 갈 수 있겠지! 학교 간다고 하면 가방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고, 그러는 사이에 나는 다 컸고! 등등을 상상한 게 아니었을까.
둘째는 발치와 입학이라는 새로운 세계가 열린 누나에게 질투를 느꼈나보다. 늘 가슴졸이며 이게 맞나 저게 맞나 노심초사 좌충우돌하며 키웠던 첫째에 비해 둘째는 발로 키우고 가끔은 발도 안썼다.
그래도 자동탑재된 듯한 눈치와 애교로 사랑과 관심은 첫째에 못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둘째의 입장에서는 아쉬운게 많았는지 며칠 간 이가 아프다는 대형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었다. 치과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온 후로 이 아프단 얘기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항상 귀여운 둘째였지만 더 귀여워졌다. 막내라서 그런지 늘 아기같고, 실제로도 놀고 먹기만 하니 정말 아기인 줄 알았는데 이런 관심끌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만큼 머리도 쓰고 연기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었구나. 첫째 6살 때를 생각해보니 충분히 이만큼 머리쓰고도 남을 나이가 맞다. 그렇지.
6살이지.
6살이면 한창 머리쓰고 질투할 나이지.
질투가 둘째에게 사랑을 부르는 힘이길 바란다. 비교하고 미워하고 열등감을 느끼거나 우울해지기보다는 더 큰 사랑과 관심을 부르는, 그 와중에 웃음과 재미도 주는 힘이 질투이길 바란다.
그러기 쉽지 않은 세상이지만, 지금 같은 아이의 마음이 유지될 수 있도록 아이의 생각을 받아주고 때로는 속아주기도 하면서 충만한 하루하루를 채워가야지.
피식 웃음이 삐져나온다.
배에 손을 올리고 치과베드에 누워 여유있게 의사선생님을 기다리는, 마치 회장님같았던 아들의 어린이 치고는 근엄했던 표정이 떠올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