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석의 무심함에 오늘도 나는 동글동글해진다 멍하니 한참 동안 녀석을 만지다 보면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방바닥에 한 움큼의 털들로 남는다 그것들을 가지런히 모아보면 내가 쫓던 것들과 닮아있다 코가 간질간질해진다 손가락으로 코끝을 살짝 쓰다듬는다 나는 내가 잃어버린 젊음에 대한 자부심으로 내일을 모레와 산다 떨어 트린 것들은 어딘가 주인을 닮아있다 잃어버린 녀석들이 나의 무릎 위에서 그르렁거린다 나를 굴러가게 하는 건 나의 손을 잡고 있는 나의 젊음 너의 흔적 나의 기억 너의 사랑
오후 다섯시의 바다는 나를 이 세상에서 완벽한 타인으로 만든다 바다의 숨결에 나는 취한다 바다 너머에는 비가 모여있으므로 나는 바다를 보며 너를 생각한다 비가 오던 사월의 바다 한구석에서 또 흘렸던 눈물과 또 흐느낀 울음을 생각한다 나는 이제 지나가는 바람에도 나를 바라보는 너의 맑은 눈을 느낀다 나는 비를 맞지 않았음에도 비를 다 맞았다 여름이 왔다 스치듯 지나간 모든 사람은 나에게 이방인이었으나 누구는 나에게 광합성이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자 내려간 장막이 올라가고 2막이 시작된다
절벽 끝에서 흔들리는 돌이 결국 떨어져도 그것은 돌이다 그것이 쪼개지고 산산이 부서져도 우리는 그것을 돌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돌은 나중에 바다를 만난다 모래사장은 하나의 거대한 돌이다 이 돌은 손쉽게 성이 되기도 도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돌은 부서지는 것에 아무런 걱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