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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Jul 18. 2024

터미널 문이 잠겨 있다

< 미국 방문기 6 >

     

시애틀 타코마 공항에 내리면 남편이 마중을 나와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고는 꼬박 3시간을 달리면 그가 일하고 있는 작은 도시 Moses lake에 도착할 수 있다. 


요즈음 남편은 회사 일로 매우 힘들고 바쁜 일정들을 소화하고 있는 모양이다. 바쁜 사람에게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아 우리끼리 시외버스 타고 가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만만치 않은 여정이다.   

   

도심 공항철도를 이용하기 위해 집에서 탑승 시간 4시간 30분 전에 나왔다. 비행시간이 최소 9시간이고, 타코마 공항에서 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한 후 거의 2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 후 버스로 3시간을 달려야 남편한테 도착한다. 스무 시간이 넘는 일정이다. 


보통은 비행기에서 내려 남편의 차로 집까지 갈 때 차 안에서 떡실신이 되곤 한다. 이번에는 그럴 수 없어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했다. 

     

아들은 검색하고 온라인으로 표를 예매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해두었다. 한국의 시외버스 터미널을 알기에 미국의 터미널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저 선진국의 터미널은 어떤 모습일까에 대한 기대뿐이었다. 새로운 경험을 좋아하는 나는 이참에 미국의 시외버스도 타볼 수 있겠다는 장점을 내세워 남편을 안심시켰다. 

  

공항철도를 타고 Moses lake로 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남편에게 줄 어머니표 반찬 몇 가지와 양념류가 든 아이스박스를 큰 보자기에 한번, 노끈으로 두 번 동여맸다. 시골 할머니가 도시에 있는 자식을 위해 보따리보따리 싸서 버스에 오르는 장면과 흡사했다. 폼이나 멋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먼 타국에서 홀로 밥 해 먹고사는 남편을 위해서라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었다. 셋이 각각 캐리어 하나씩을 밀고 정류장 역에 내렸다.  

    

아이스박스는 끌 수가 없어 커다란 캐리어 위에 올렸다. 허리를 굽혀 한 손은 아이스박스 위에 한 손은 캐리어를 운전하며 끌었다. 철도에서 내리자마자 근처에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 생각도 잠시 선진국의 버스정류장은 믿기 힘든 상황을 연출했다. 정류장이 크지는 않았지만, 안에는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즐비해 있고, 공중화장실도 있었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역무원이 잠깐 자리를 비운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아들은 그제서야 자신이 검색한 정보에 관해 이야기했다.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슬럼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대합실을 거의 개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합실은 무늬뿐이었다. 승객이 들어가는 입구라는 문구만 있을 뿐이었고, 굳게 닫힌 유리문에는 ‘공중화장실 폐쇄’라고 을씨년스럽게 붙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선진국이라는 미국의 대합실 폐쇄는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아들이 본 정보는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2시간 남짓 동안 벤치 하나 없는 밖에서 서서 기다릴 수는 없었다. 방법이 있을 거라며 지속해서 아들에게 찾아보자고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합실 안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급기야는 이곳에서 버스가 출발할 수 있을까라는 사실까지 의심되었다. 정차된 버스도 기다리는 사람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기 소지가 가능하고 마약이 난무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아들은 극도의 경각심을 가졌다.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사람 사는 세상이 이럴 수는 없다며 나는 계속 감정적으로 호소했다. 그러는 사이 정말로 노숙자가 다가와 대합실 문을 흔들어보고 어기적거렸다. 무서웠다. 겁에 질려 애써 시선을 외면하며 해코지를 당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정보에 민감하고 특정 생활 방식에 대해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요즘 아이들은 달랐다. 심각성을 금방 받아들이고 많은 사람이 추천하는 방식대로 따르려는 태도를 지녔다. 되돌아 생각해 보면 막무가내였던 엄마가 아들은 얼마나 답답했을지 짐작이 된다. 부끄러움은 언제나 지난 후의 나의 몫이다.   

   

노숙자 때문에 대합실 문을 열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미국을 선진국이라 칭할 만 한가에 대해서 용납되지 않는 부분들이 여럿 있다. 이 나라만의 문화라고 퉁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지난번에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해 말한 적도 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빛과 어둠이 극명한 나라인 것 같다.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노숙자들에게 도움만 줘도 범법자로 몰린다. 주차된 차의 창문을 깨고서 절도가 흔하게 이뤄진다. 노숙자와 범죄자를 막지 못하고 몇몇 도시가 몰락해 가고 있다. 노숙자들을 포용하는 정책보다는 배척을 일삼는 이런 시스템이야말로 미국의 어둠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도 서울역사 주위에 가면 노숙자를 볼 수 있다. 노숙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고, 그곳에서 도움을 원하는 사람 중에는 동자동 쪽방촌으로 거처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최현숙 작가(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처럼 노숙자를 돕는 일에 두 팔을 걷어붙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의 근처 훌륭하신 몇몇 지인분들은 그분들을 위한 후원을 하고 있다. 

     

버스 출발 40분 전쯤 되니 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 시간에 맞추어 승객이 서너 명 와서 차에 올라탔다. 미국 사람들은 이런 시스템을 익히 알고 있었던지 좀 더 안전한 곳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가 정류장으로 온 듯했다. 승객은 기사와 부기사 포함해서 모두 9명이 고작이었지만, 버스가 제시간에 출발할 수 있게 된 데에 감사한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외국을 다니다 보면 누구든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내게 익숙한 곳이 가장 편하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나왔을 수 있다. 하지만 안전이 보장된 나라, 이용자들의 편의를 최고로 고려하는 나라로 우리나라는 으뜸이다. 적어도 미국과 비교하면 그렇다.

     

인간의 기본 욕구인 안전에 대한 욕구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나라를 선진국이라 칭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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