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치 탈출을 위해]
‘기계치’라는 단어를 녹색창에 검색해보면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접근하거나 만지기만 하면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키고 파손되는 사람을 가리키고, 또 하나는 기계에 익숙하지 아니하여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나는 첫 번째도 해당되고 두 번째도 해당되니 완벽한 기계치에 속한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만지기만 하면 오작동이 발생할 때는 기계가 나에게 원한이 있어 한풀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은 이런 나와는 정반대로 짝궁은 미다스의 손을 가졌다. 모든 기기들을 잘 다루고 모든 기계의 원리들을 섭렵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연유가 나를 기계치로 만드는데 큰 일조를 했다는 생각도 떨쳐버릴 순 없다. 조금만 애쓰다가 안 되면 쉽게 포기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만 하면 해결되기 때문에 끙끙거리며 진땀 뺄 일도 없고, 안 된다며 열을 올릴 필요도 없었다.
근데 언제부터인가 짝궁은 나의 독립심을 구실로 삼아 스스로 해결하도록 자꾸만 내가 원하지도 않은 기회를 떠맡긴다.
프린트기의 재활용 카트리지를 교환구매한 후 교체하기, 컴퓨터를 옮겨 주렁주렁 달린 수(십)개의 잭들을 뽑고 제자리 꽂아 무사히 작동 하게 하기, 선풍기 해체 후 조립하기, 공기청정기 필터 교체하기 등 이런 일들로 그는 나의 기계치를 경험칙으로 바꿔주기 위해 나를 훈련시킨다.
정수기와 식기세척기 이전 설치 역시 이번 이사 때는 설치 기사 옆에 서서 유심히 관찰해 두었다. 잘 돌아가던 에어컨 실외기에 냉매 가스가 새는 부문을 검사해 부품을 교체 할 때도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기계치 탈출을 위해 관심을 가지면서 보다보니 기계들의 원리들이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기계치의 두 번째 의미인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것에 관한 결함을 여러 번 경험했다.
올 여름이 워낙 더웠던지라 밤에 잘 때도 에어컨을 켜고 자야하는 날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밤새 켜 둘 수가 없어 중간에 일어나 에어컨으로 열기를 식히고 또다시 끄고 자기를 반복하다보니 숙면을 취할 수가 없어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었다. 리모컨에 버젓이 예약이라는 두 글자가 적힌 버튼이 있었음에도 나는 그 존재를 가볍게 여겼다. 두어 번의 터치로 몇 시간 후 켜졌다가 몇 시간 후 꺼지게 하는 주문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그런 후 약간의 희열을 맛본 후다.
몇 년 동안 내 눈에 한 번도 띄지 않던 인덕션 위의 예약버튼이 눈에 들어왔다. 에어컨보다 백배 더 간편했다. 달걀을 삶을 때, 단호박을 찔 때 최적의 시간으로 최상의 맛을 내기에 예약 기능은 더 없이 유용했다.
기계사용의 가장 큰 효용성인 편리함을 무시하며 여전히 온오프 기능 정도로만 사용하고 있었으니 나의 이 아날로그식 버전에 한심함을 느꼈다. 알려고 하지 않았던 점, 기계 기능들의 편리함을 무시했던 점, 작은 차이가 삶의 질을 크게 높여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살아온 어리석음에 분기탱천해야 할 판이다.
백치(미)는 아름다움이라도 따른다지만 기계치는 불편함만 따를 뿐이다.
내 손에서 오작동을 일으키는 기계치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하더라도, 조작법에 미숙한 기계치는 설명서를 잘 숙지하고 체득하면서 얼마든지 오명을 벗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계치로부터의 탈출을 위해 나는 이제부터 설명서 탐독러가 돼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