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지 못했던 물건들

by 삼분카레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


결혼 후 두 아이가 생기면서 집안의 짐은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살림살이도 해가 거듭하면서 주부의 경력이 쌓이는 만큼 늘었다. 일 년에 몇 번 쓰이지 않는 물건들도 그 필요한 한 번을 위해서 생겼고, 그 다음은 또 언제 쓰일지 모르는 날을 위해 버려지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물건이 있었나 할 정도로 까마득해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쌓아두기는 반복되어졌다.


국제이사 경험을 하면서 크게 깨달은 점이 있었다. 이삿짐이 선박으로 이송되기 때문에 짐이 도착하는 데는 거의 한 달이 걸렸다. 짐이 도착하기 전 우리 식구는 옷가지들과 밥국그릇 냄비 후라이팬 정도의 초극미니멀한 세간살이로 살았다. 신기하게도 그것만으로도 몇 가지 불편함만 제외하고는 잘 살아졌다.그 몇 가지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딱 그것만큼의 물건들만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물건들에 치일만큼 쟁여두고 살고 있다는 점이 싫었다. 그 후로는 살림살이를 늘이는 것에 대해 극도의 경계태세를 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짐은 늘면 늘었지 줄어들기는 힘들었다.

미니멀리즘에서 지켜야 할 몇 가지 조언이 생각난다. 일 년 중에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물건은 당장 내다 버리기. 옷 한 벌을 새로 구입하면 기존의 두 벌은 없애기. 이러한 규칙을 철저하게 따르다 보면 짐은 늘어나진 않겠지만 버린다는 행위가 말만큼 쉽지만은 않았다.


여덟 번의 이사를 다니면서도 제대로 버리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갖고 있어도 전혀 안 쓰이던 것이 버리고 나면 꼭 그때 필요하게 되는 몇 번의 경험을 통해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 그 필요성이라는 것이 절절했던 것이 아닌 순간의 짧은 후회에 불과했을 뿐인데도 그랬다. 또 하나는 버리기엔 아까워 값어치를 따지는 유혹에 당할 재간이 없었다. 지금 당장 필요하진 않더라도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며 나중에 다시 사야함은 오히려 낭비를 초래하는 일이라고 갖가지 버리지 못할 핑계를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버리지 못한 물건들에는 그릇과 이불베개, 방석 등도 속한다.

몇 년 사이에 삶의 방식이 많이 바뀌었다. 동네친구나 학부모들과 집에서 다과를 즐기던 방식이 이제는 카페로 옮겨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가족친지들이 방문해서 자고 가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집에서 여러 사람이 모일 기회는 점점 없어지고 있었다. 바뀌어 가는 생활방식에 동반적 변화를 주지 못하고 나는 여전히 예전 습성에 사로잡혀 최근 몇 년 사이에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수많은 물건들을 안고 살았다. 힘들게 싸 짊어지고 다니면서 꾸역꾸역 구석구석 쟁여두고 살았다.


다음 주 있을 이사를 앞두고 과감해 지기로 했다.

잘 쓰지 않는 무거운 사기그릇도 끄떡없이 버티며 달고 다녔는데 오늘 모조리 가져다버렸다. 수거장 자루 속에 집어넣고 이별을 고하고 돌아서는데 경비원아저씨가 무자비하게 깨부수는 소리가 버림받은 그릇들의 서러운 외침으로 들렸다. 그래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매정하게 돌아왔다.

이불과 베개가 없어도 도시에서는 얼마든지 손님을 재울 수 있는 시스템은 잘 구비되어 있다. 부피가 큰 이불과 베개를 좀 더 일찍 버리지 못한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아무 개념 없이 달고 살았던 짐들을 정리하고 나니 불필요한 지방이 빠지고 한결 가벼워진 몸이 된 듯하다.

가볍게 비우면서 살기로 하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