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책만 읽어주시나요?

소소한 부모역할2

by 삼분카레

“책만 읽어줘도 그게 어디에요?”

“맞아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엄청나게 잘 하시는 것 맞아요.

그런데 혹 여유가 되시거나 마음이 동하시면 이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도 추천 드려요.“

최근 교육개정안을 보면 더는 학생들을 문·이과로 구분하여 교육하지 않고 통합하여 창의· 융합형 인재로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 분야에 대해 지식위주의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 과학의 창의성, 인성 등을 겸비한 융합형 인재를 육성하자는 말이다. 공돌이라고 해서 인문학에는 문외한이어도 되고, 인문학자라고 해서 전등 하나 갈아 끼우지 못해도 되는 너그러움이 허용되진 않는다. 물론 개인적 차원에서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범지구적 차원으로 보면 인류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교육목표인 건 맞다. 생명 원리를 파헤치다 오로지 자신의 과학적 호기심을 충족하는데만 몰두하다가 끔찍한 파괴자를 창조해 낸 프랑켄슈타인이 현실판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남편은 너무 바빠 나는 거의 독방육아를 했다. 주말이면 여행을 가거나 아이들 체험을 위해 떠나는 대신 남편은 출근을 하고 우리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간접 체험장으로는 도서관만큼 넓고 다채로운 곳은 없으니 최고의 체험을 떠난 셈이긴 하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지하 식당에서 라면을 먹는 일을 아이들은 가장 좋아했다. 도서관은 그야말로 최고의 놀이터였다. 책으로 체험을 떠났나가 도서관 야외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다가 토요일마다 상영하는 무료 영화를 관람하고 그러다보면 아빠가 도서관으로 퇴근할 시간이 되었다. 주말은 그렇게 책을 보고 주중에는 가족 도서 대출증으로 20권씩의 책을 대출해 왔다. 어린이집을 다녀오거나 하교 후 돌아오면 제일 먼저 자신을 기다리는 책을 향해 달려갔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나는 뿌듯했고 아이는 신이 났다.

첫째는 말을 하기 시작할 때쯤부터 공룡에 흠뻑 빠졌다. 두 돌에서 30개월 전부터 시작에서 많은 아이들이 자동차 아니면 공룡 혹은 특정한 대상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자동차 바퀴만 봐도 몇 년도 산, 어느 브랜드의 모델명인지 알아맞히는 아이들을 종종 봐왔다. 첫째는 공룡을 무척 좋아했는데 그 덕에 공룡 책은 너덜너덜해지고, 스티븐 스필버그의 공룡영화들은 화질이 나빠질 정도가 되었다. 공룡의 이름과 특징과 습성까지 모조리 꾀게 되었고 언제나 티라노사우르스 흉내를 내며 걸어 다녔다. 첫째가 공룡을 그렇게 좋아하는 데에는 가족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지지가 한 몫 한 것 같다. 손자가 공룡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시골 할아버지의 친구분들도 다 아실 정도였다. 관광지 놀러 가면 이웃어르신이 우리 아이의 공룡 모형을 사다 줄 정도였으니까. 아빠가 시간이 많이 없었지만 전국의 공룡대전은 그나마 많이 찾아 다녔다. 대전자연사박물관, 고성 공룡축제, 서울 공룡대전들, 보성의 공룡탐험, 사천의 공룡발자국, 부산벡스코 공룡대전 그 외도 여러 축제장까지.

몇 년 동안의 공룡사랑은 변함이 없었지만, 조금 더 크면서 관심이 확대되었다. 이번에는 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말이 달리는 모습에서의 박진감이랄까 달리면서 휘날리는 꼬리와 갈기, 네 개의 다리가 정신없이 움직이는 모습에 매료된 듯 했다. 그 쯤 나는 도서관에서 말에 관련한 책들을 검색해 보았지만 의외로 말에 관한 책은 많지 않았다. 스토리 북으로 <스피릿>이라는 동화책 한권과 말 사진들이 나와 있는 자연 과학책 몇 권이 고작이었다. 아이와 말의 우정을 다룬 한국영화 <각설탕>이 비디오로 나와 있었다. 이런 자료들로 아이는 말에 관한 전반적인 것을 알아가고 말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나타내기도 했다.

그 다음 관심은 유령으로 넘어갔다. 특정 연령대가 되면 많은 아이들이 유령에 관심을 가지고 공포스러운 것과 미지의 대상에 대한 호기심을 강하게 가지는 때가 온다. 그맘때 쯤 아들은 <오페라의 유령>책을 알게 되었고, 그런 후 비디오로 나온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오페라 형식의 영화여서 영화 중간 중간 뮤지컬로 부르는 노래를 죄다 외울 정도로 보고 또 봤다. 심지어는 어떤 장면 뒤에 어떤 대사가 따라오는 것 까지 알 정도였다. 어릴 때 가슴 속에 움틔웠던 싹들은 자라서도 여전히 파릇파릇 돋아 있는 듯 했다. 작년인가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오리지널 내한공연을 챙겨 보고 오더니, 가장 좋아하는 곡 All I Ask Of You를 연신 흥얼거렸다.

동화책을 읽은 후 관련 음악, 영화, 놀이, 전시 등과 연계할 수 있는 환경이면 좋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그럴 때 웅진 비주얼박물관 어린이 백과사전을 보면서 자주 찾아 가는 작업들을 많이 했다. 아이가 물어올 때 또는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어린이 백과사전을 찾아보면서 호기심을 더 증폭시켜 주려했다. 이 방법은 스스로 찾아 알게 되는 것에 대한 뿌듯함을 맛보게 하는 작업으로는 최고였다. 빠른 것 보다는 천천히 자신의 주도아래 알아가는 것이 내 것으로 오래 남게 되는 법이다.

‘책으로만 끝내지 말고 꼭 확장시켜 줘야해‘라는 필사적 사명감은 가졌던 건 아니었다. 그저 아이가 보이는 관심에 나도 응답해 주고 싶었다. 그러면 아이는 더 넓게 관심을 보였다. 더 깊게 알려고 했다. 아이 스스로 가지는 욕구는 열의를 낳았다. 열의로 인해 알아가는 기쁨을 얻으면서 새로운 흥미가 생겼다. 욕구와 열의를 가지도록 교육하라는 주문은 16C 의 몽테뉴도 강조했던 교육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는 동화책을 아이 혼자 읽게 하는 것보다 읽어주는 행위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화책은 아이의 연령대에 맞는 인지수준과 습득해야 할 생활태도, 그리고 사회성 등을 다루고 있다. 같이 읽음으로서 아이의 관심과 욕구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책 내용을 자연스럽게 현실로 끄집어내어 놀 수 있다. 아이의 관심거리에 부모가 공감해 주면 아이들은 부모와의 교감을 훨씬 크게 느낀다. 아마 말이 통한다는 느낌을 최초로 느끼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중심에 두고 다방면으로 접근하고, 궁금한 점은 스스로 찾아 가는 방식을 자주 택했더니, 아이는 자신이 가졌던 관심사에 대해 좀 더 집요한 면이 생겼다. 스쳐 지나듯 호기심이 생겼다가 금방 사그라드는 일보다 ‘한 번 알아볼까’ 와 같은 끈기 있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그래서 신중한 면이 길러진 것 같다.

책은 아이 교육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매체이면서 다른 것과 연계시키는 가장 중요한 매개물이다. 아이는 아직 어려서 그 매체와 매개물을 혼자 찾기가 힘들다. 아이가 한 뼘 자랄 수 있도록 책만 읽어주기 보다는 다른 활동도 함께 해보는 것을 적극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