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보다 더 중요한 건 끝이었어!

< 소소한 부모역할 5 >

by 삼분카레

“선생님 저 이번 주 까지만 다니고 학원 끊을 거예요.”

아이는 다소 냉소적이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우리 관계에서 분명 본인이 뭔지 모를 우위를 점령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말투이다. 학원생이 떨어질 때마다 선생님이 마음을 졸인다는 것을 그 어린 아이는 어찌 알았을까.

그에 질세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 그래? 왜?”

“엄마가 그만 다니래요”

내가 교습소를 운영할 때 제법 빈번히 듣던 말이다.


부모입장에서 다른 계획이 생기거나, 맘에 안 들어서 그만 둘 수도 있다. 그만 둔다는 말이 너무 미안해서, 혹은 미리 이야기하면 혹여 내 아이에게 소홀할까하는 걱정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식으로 끝을 맺는 경우 대부분의 아이는 학습태도나 인성 면에서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다.


큰애는 6학년 2학기 때 처음 수학학원을 다녔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를 특수목적 고등학교에 보내야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특출나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초등학교 저학년을 중국에서 보내고 한 학년을 낮추어 4학년으로 돌아왔다. 이미 과고나 외고 준비를 하는 아이들은 저학년 때부터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우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처음 간 수학학원 선생님은 같은 패턴의 시험지를 여러 장 준비해 두고서는 하나도 틀리지 않을 때까지 문제를 풀렸다. 3시간이고 4시간이고 인정사정없이 아이를 붙잡아 두는 형식이었다. 이런 무자비한 교육방식을 선호 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지금까지 수학공부를 시키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리고 수학의 기초라 할 수 있는 연산 공부가 안 되어 있어 이 방식을 몇 달 따라가다 보면 득이 될 것 같았다. 아이는 한 번 가면 끝을 알 수 없는 수업방식에 힘들어 했지만, 한 문제가 틀려 몇 시간을 씨름하며 풀어냈을 때의 희열감을 맛보기도 했다. 풀고 또 풀어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아이의 연산력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렇게 얼마 동안을 다녔는지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만둘 때는 똑똑히 기억이 난다. 그만둘 때 처음으로 선생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선생님이 아이의 부족한 실력을 끌어올려주어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선생님의 지도 덕분에 진득한 엉덩이 공부법에 집중력이 좋아졌고, 문제가 풀릴 때까지 풀어내고야마는 집착력이 생겼고, 덤으로 연산력이 향상되었다는 점은 크나큰 소득이었다. 좀 더 난위도 있는 문제를 다루는 학원으로 보내고 싶다고 애기했더니, 부족한 부분과 강화가 필요한 부분 등 전반적인 조언들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조언 덕에 다음 학원에 가서 상담을 하면서 전 선생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아이의 컨디션을 잘 전달할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그만두겠다는 통보만을 남기고 끝맺었더라면 결코 듣지 못했을 정보들이었다. 그러한 정보가 없었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만나고 왔다는 이야기에 아이의 호기심어린 눈이 반짝거린다. 오롯이 자신을 중심에 두고 두 어른이 만나 무슨 이야기를 했을지 궁금한 건 당연하다. 아이는 칭찬의 말들을 기대하며 턱밑까지 얼굴을 들이민다. 참고 지내온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아이가 가진 장점들로 최대한 늘어뜨려 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렇게 하나의 매듭을 짓듯 아이는 무탈하게 다음 순서를 밟게 되었다.


이런 형태는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부터 해왔던 방식이다. 일 년 동안 아이를 잘 보살펴준데 대한 감사의 말을 전함과 동시에 아이에 대한 객관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학기 시작할 때는 선생님을 뵙지 않더라도 학년을 마칠 때에는 반드시 찾아뵈었다. 학기 초에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은 좀 낯간지러운 일이다. 학년이 끝나는 시점에는 선생님도 학부모가 찾아온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셨다. 아이에 대한 특성, 진로, 교우관계 등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선생님들은 보통 아이에 대해 장점위주의 두루뭉술 이야기만 할 수 밖에 없다. 내 아이를 위해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 나눌 사람은 많지 않았다. 최근접 거리에서 아이를 지켜본 선생님과 아이의 양육 문제를 이야기 하면서 나도 배워간다고 여겼다. 아이를 잘 이해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아이의 욕구 안에 어떤 의도가 숨어있는지 알게 되니 대처하기도 쉬웠다. 아이의 성장에 나타나는 모든 순간이 처음인 나에게 전문가들의 조언은 큰 도움이 되었다. 아이를 존중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모든 것을 말로는 다 열거할 순 없지만 순간순간 대응하는 나의 미미한 행동들에도 분명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아이는 자라면서 자의든 타의든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아이가 어릴 때는 더더욱 그 관계형성의 중심에 부모가 있다.

관계 형성은 학습에 뿐만 아니라 인성형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선생님과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에서 아이는 관계가 주는 온갖 감정들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간다. 직장생활에서도 관계를 잘 맺는 사람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성공은 실력순이 아니라는 말은 아이들 학교생활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된다. 비슷한 실력, 혹은 실력이 좀 떨어지지만 인성이 좋고 관계형성이 잘 되어 있는 아이에게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질 수 있다.


관계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아이, 그 일차적 모델이 나였던 사실은 큰 부담이었다. 실수 투성이에 나 자신을 자책하고 울기도 하면서 지나왔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피해야 하는 양육자의 태도라고 한다. 육아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정적 일을 부모인 내 탓으로 돌리는 일은 더욱 스트레스를 가중시킬 뿐이다. 아이라는 배아가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싹이 어느 정도 자랄 때 까지 단지 외부의 방해나 공격으로부터 이겨낼 힘을 길러주는 것이 최선이다. 지나친 개입과 과잉보호는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말은 진리이지 않을까.


아이를 키우는 데는 수많은 완급조절이 필요했다. 당근과 채찍도 시의적절해야 했다.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아야 하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절대로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와 또는 무언가와 끝맺음을 할 때, 그동안 성실히 짜온 올이 풀리지 않도록 매듭의 과정을 잊지 않았던 일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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