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되새김질

< 소소한 부모역할 6 >

by 삼분카레

난 아이들을 잘 기르고 싶은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그때는 잘 몰랐었는데 아이들이 조금씩 자라면서 그들에게 나타나는 다양한 양상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을느낄 정도의 일들을 더러 겪으면서 나는 나의 양육태도에 관해 고민들을 했다.


옆에서 친 언니들이 가끔 충고할 때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내가 없으면 집안이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노파심과 불안 때문에 잠시라도 집을 비울 수가 없었다. 놀러가자고 할 때 아이들 핑계를 댔고, 아버지 제사에 친정일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어려서 못가고, 거리가 멀어서 안 되고, 주중이라서 빠졌다. 아이들 생활에 리듬이 깨지는 것이 싫었다. 그런 욕심들은 그런 곳에만 한정 되지 않았고, 아이들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거나 간섭을 하는 방식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난 그저 헌신적이고 다분히 루틴화된 내 스타일을 고수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대체로 규율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엄마의 스타일은 당연히 아이들에게 그대로 영향이 뻗쳤을 것이다.

옆집 언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대학원 수업을 다닐 때였다. 큰애는 옆집 형, 누나와 잘 놀다가도 첼로연습 한 시간 하고 온다며 가더란다.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형, 누나들 보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한다며 옆집 언니는 혀를 내 두르며 감탄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아이가 대견하다는 생각보다 우려가 앞섰다. 내가 아이를 강박적으로 키운 건 아닌지, 아이에게 강요한건 없는지 이런저런 생각들로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에 있을 때 둘째의 친구 생일날이어서 큰애도 같이 초대되어 가게 되었다. 그 집에는 애기도 있고 해서 큰 민폐를 끼치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하며 보냈다. 나는 아이들에게 뭐든지 그 집 엄마께 여쭤보고 하라며 신신당부를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이랬다. 큰애는 그 날 이걸 만져도 되는지, 저걸 먹어도 되는지, 화장실을 가도 되는지 등등 지나칠 정도로 물었던 모양이다. 기질이 유순한 편이었고 엄마의 당부도 있었던 터라지만 아이가 그랬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또다시 나의 양육태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심한 통제 속에 자란 아이가 누군가의 허락 하에 행동하는 습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의 자율성을 내가 뺏은 건 아닌지 온갖 생각들로 괴로웠다.

이러 일을 대할 때마다 나의 양육방식에 있을법한 흠들을 열심히 뒤적였다. 양육 태도에 대한 반성은 아이의 작은 행동하나에서부터 빈번히 마주쳤다. 끊임없이 내가 하는 방식을 되짚어보고 점검해 보기도 했다. 그때만큼 나에 대한 반성의 시간을 길게 가진 적도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 본성이 쉽게 바뀌기는 어렵다. 나의 문제 또는 어떠한 문제를 인지한다는 것은 곧 행동교정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뀌지는 않더라도 조심은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 그런 시간들은 헛되지 않았다. 어설프게 변화를 시도하다가 아이들에게 되려 공격을 받는 일도 허다했다.

아이는 엄마의 태도에 약간의 변화만 생겨도 탐지견 수준으로 냄새를 잘 맡는다. 오늘은 우리엄마가 또 어디서 무슨 강연을 들으셨나?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 자녀교육 관련 책을 읽으시고 우리한테 적용하려 하시는구나를 감지한다.

나는 그 의심에 추적당하지 않으려 했지만 아이들의 직감은 어른 그 이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게 제일 취약한 부분인 아이들의 자율성을 길러주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무심한 척 하려 했고, 아이가 선택한 일을 지지해 주기로 했고, 나의 일을 찾기도 하면서.

그 중 큰애에게 일생일대의 중요한 선택의 기회가 왔다.

아들은 1월3일생 온살배기여서 7살에 입학을 시킬지 8살에 시킬지 고민을 했었다. 여러면에서 올되지는 않았지만 수순대로 이른 입학을 시켰다. 2학년일 때 중국으로 이사를 갔다가 다시 돌아올 때는 학기제가 달라서 학년 선택이 애매하게 되었다. 입학동기들과 같이 다니려면 5학년으로 가야하는데 한국에서의 공백 기간이 길고 또래와의 개월 수도 커서 따라갈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제일 먼저 앞섰다. 어느 정도 머리가 굵었을 때고 부모가 마음대로 정하기에도 망설여졌다.


이 정도 나이라면 자신이 가고 싶은 학년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에게 지게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나는 스펜서 존슨의 <선택>이라는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아이에게 책을 내밀었다. 책 내용은 선택의 귀로에서 최소의 후회와 최상의 선택을 위한 실천 방법들이 제시되어 있었다. 어떤 것을 선택했을때와 하지 않았을때의 장단점을 따져 보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책이었다. 다행히 청소년용으로 출판된 책이라 아이가 읽고 지침대로 해 보는 것에 어려움이 없을것 같았다. 책을 읽고 아이가 스스로 판단내릴때까지 우리부부는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았다.


동생들과 친구가 되고, 입학동기들은 자신보다 한 학년이 높은 선배가 되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감당할 자신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후 아이의 선택은 확고했다.


복학 후 아이는 오히려 친구의 범위를 4, 5학년 모두로 넓혔다. 영문을 알지 못하는 4학년 친구들은 어째서 선배들한테 반말을 하냐며 겁을 주는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는 불리해 질 수 있는 상황을 오히려 친구의 폭을 확대하는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자신이 선택한 일에 본인이 책임지기 위해 아이는 스스로 견디는 힘을 길렀을 것이다. 만약 그 선택이 본인이 아닌 나의 개입으로 강행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친구들과 생긴 약간의 불화에도 그 화살은 나에게로 향했을 것이다. 그에 따른 부작용들에 많은 날들을 소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 태연하게 되려 자신만이 가진 특권인 듯 누리며 잘 적응해 나갔다.

그 후로도 아이에게 선택권과 발언권을 주고 자율권을 가지도록 하는 시도는 이어졌다. 터무니없는 선택을 할 경우 부모의 의도대로 유도를 하기도 했지만 웬만해선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양육에 관한한 거의 모든 나의 방식에 대해 되새김질을 해야 했다. 남의 집 자식은 뭐든 순조롭게 잘 크는 것 같이 보였다. 내 아이의 발달이나 행동양상들은 유난히 뒤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중심에 책이 있었고 책은 늘 내 곁에서 도움을 주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의 의미를 체험할 수 있었다. 많은 책을 아이에게 읽어주어서 그랬고, 부모교육 관련 책으로부터 도움을 받았고, 자녀교육 실천가들이 안내해 주는 방식을 따라하기도했고, 지침이 되는 책을 직접 아이에게 선물을 하면서 도움을 얻었다. 내가 반추하는 과정을 거칠 때 책은 좋은 소화제가 되어준 셈이다.


나의 모자람을 인지하고 내 방식에 오만해 하지 않은 덕에 아이는 점점 자율적인 아이로 잘 성장할 수 있었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