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전후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정

< 소소한 부모역할 7 >

by 삼분카레

첫째가 갓 대학을 들어가서 1,2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전화로 들려오는 아이의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았다. 대뜸 “엄마는 왜 저를 이렇게 키우셨어요?”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얼음이 되어버렸다. 무슨 말로 어떻게 받아칠까 찰나의 순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아니 내가 너를 어떻게 키우다니,

두 살 아래인 너의 동생은 오빠만한 남자가 없는 것으로 자신의 솔로 신세를 은근 내 탓으로 돌리기도 하는데. “엄마는 오빠를 어떻게 키웠길래. 왜 오빠 같은 남자가 또 없냐고~” 하며 듣기 좋은 찬사를 아끼지 않는데. 그런 아들을 키워낸 사람이 난데, 그런 나에게 이렇게 예고 없는 킥을 날리다니 나는 여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쪽 구석이 찔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다소 규범에 얽매인 사람이고, 고리타분하고, 나와의 약속에도 좀 철저한 그러니 좀 따분한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양육과정에서 아이들을 나도 모르게 옥죄었을 것이고, 그런 엄마가 싫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인정하지만 아이가 불만을 가진다해도 이제는 달리 어찌할 방도가 없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많은 생각들이 과속을 감행하면서 나의 뇌리를 수만 바퀴 돌고 온 느낌이었다.


그렇게 길고도 짧은 침묵이 흐른 후 아들도 다시 차분하게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고 아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대학 들어가면서 학부며 동아리 친구들과 선배들을 만나고 대단한 교수의 수업을 들으면서 활동영역이 확대되고 지금까지와는 어마한 차이가 있는 다채로움을 경험했을 것이다. 다양한 경험을 한 선배, 자신의 상식밖에 있는 친구들, 특이하면서도 개성 있고 멋진 이들을 만나보니 자신의 초라함과 평범함에서 자괴감이 몰려왔던 건지도 모른다. 아이가 대충 얼버무리는 말 속에 녹아있는 내용들을 나는 이렇게 추측했을 뿐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얼음이 되었던 내 몸은 어느새 녹았고 오히려 미소의 물줄기로 흐르고 있었다. 그맘때쯤 누구나 고민할법한 대수롭지 않는 고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를 해 주었는지 기억 나질 않는다. 그런 후 아들은 두 번 다시는 내게 그런 말을 해 오진 않았다.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고 틈틈이 교내의 각종 아르바이트 자리를 염탐하면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해 나갔다. 때로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벌써 찾지 않아도 된다고, 아직 찾지 못한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해주었다. 그의 여정은 여전히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번에는 딸이 대학을 들어가서 딱 그만큼의 시간이 지났을 때쯤이었다. 첫 학기에 운이 좋아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전화로 심상치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는 내 성격이 좀 활발했으면 좋겠어. 나는 왜 이럴까?’

아들의 그때 그날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랐고 그 흡사함이 신기할 정도였다. 일찍이 한 번 맞아본 매인지라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전화기 너머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여유로운 목소리로 응대할 수 있었다. 딸은 내 성격을 많이 닮았다. 나도 어렸을 때 너무 내성적이라 평생을 내 성격을 좀 개조하고 싶다는 욕망에 힘겨워 하며 살아왔다. 나를 사랑한 시간보다 나를 원망한 시간이 더 길었다. 지금 생각하면 괜한 에너지 낭비였다는 생각과 그 시간에 다른 것에 전념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결코 헛된 시간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딸은 한바탕 학교이야기, 친구이야기, 대학수업이야기, 이런저런 썰을 풀어놓았다. 나도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대학교 때 나 자신을 싫어했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딸 눈에는 사교성 좋은 엄마, 어떤 문제든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것 같은 엄마였는데 엄마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었다는 것에 안도감과 약간의 위로를 얻은 것 같았다.


"내성적인 성격이 부끄러웠던 시절이 있었고, 내성적인 성격의 장점을 발견하며 기뻐했던 시기가 있었으며, 지금은 내향성과 외향성의 이분법적인 경계를 뛰어넘기 위해 애쓰고 있다."라며 심리학에 근거해 마음을 다독여 주는 책 <나를 돌보지 않는 나에게>에서 정여울 작가도 그런 말들을 늘어놓은 걸 보면,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성격에 대해 족히 수년 혹은 수십 년을 불만을 가지며 사는지 모른다.


나는 안다. 나도 그랬듯 딸도,

활달하고 적극적인 타입의 친구를 부러워하면서 더욱 자신의 내향성이 싫어지다가, 어느 때는 타협을 하다가도 또 어느 때는 성격개조에 부단한 공을 들이다가 결국 자기다운 자신의 모습에 웃으며 직면하게 될 거란 것을.

넓게 쭉 뻗은 아스팔트로 곧장 가는 길은 재미가 없다. 굽이굽이 나 있는 좁고 먼 길을 돌아가면서 흙탕길도 만나고 또랑물에 발도 담궈 보며 걷는 길이 훨씬 재미있다. 어쨌든 빙빙 돌아 걷게 될 딸의 여정을 지금도 응원한다.


아이들 성장과정을 보면 연령대별로 반드시 이수하고야마는 필수과목이 존재하는 듯하다.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생애주기별 발달과업이라고 하는데, 생후 3개월 정도면 목을 가누고, 돌쯤에 걸음을 떼고, 두 돌 지나면 말을 시작하고 하는 것에만 국한시켜 생각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그 과업들을 하나하나 해 낼 때마다 호들갑을 떨었었다. 어릴 때는 성장속도가 빠르고 따라오는 과업들도 촘촘한데다 가시적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이렇게 19살 20살 때쯤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 두 아이를 직접 겪고 보니 새삼 신기했다. 여전히 아이들은 성장 중이고, 그래서 나는 여전히 양육자인 상태이며, 동시에 중년을 맞는 나의 생애 과업을 살피는 것에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함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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