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 사용설명서

< 소소한 부모역할 8 >

by 삼분카레

대부분의 칭찬은 기분을 좋게 한다.

기분을 좋게 혹은 나쁘게 하는 정도에 그치는 칭찬은 그나마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 하지만 칭찬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치명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좀 더 신중하게 그것을 바라봐야 한다. 아이들을 키울 때 칭찬을 많이 하라고 하지만 정작 칭찬의 사용법이 올바른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는 뜻이다. 어떠한 기계이든 on/off 기능과 기초적 작동 법만 알아도 사용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용 설명서를 숙지해서 무해한 건 빼고 유익하고 편리한 기능들을 잘 활용한다면 그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하물며 기계도 이러한데 그 대상이 사람, 그것도 순진무결한 유아라면 더 이상의 설명은 구차할 뿐이다.


어린이집에서 근무할 때 내가 겪었던 일을 토대로 나는 칭찬사용설명서를 안내해 보고 싶다.


35개월 야무네(가명)가 어린이집 결석을 하는 날이면 선생님들마다 입을 모아 말한다.

'야무네가 없으니까 중심이 안 잡혀'

야무네가 어린이집을 나오는 날이면 선생님들은 또 말한다.

'역시 야무네가 있으면 안정감이 있어'


야무네는 그런 존재다. 한 줄로 서라는 말끼를 못 알아먹고 아이들은 우왕좌왕 한다. 그럴 때 야무네는 언제나 기준이 되어준다. 야무네가 기준을 잡고 서면 아이들은 줄줄이 사탕처럼 줄을 서게 되고 이탈 없이 이동이 쉬워진다. 친구들에게도 야무네는 인기가 많다. 남사친 중에 J와 S는 야무네를 사이에 두고 경쟁을 일삼는다. 손 씻으러 갈 때도 서로 야무네 옆에 서기를 원하고, 낮잠을 잘 때도 야무네 옆에 눕기를 고대한다. 그녀는 공평한 자비를 베풀듯 어떤 날은 J와 손을 잡고 다니고, 또 어떤 날은 S와 엄마아빠 놀이를 한다. 셋의 관계는 가끔 삐걱거리면서도 다행히 그런대로 균형을 잃지 않는다. 이런 과정에서도 야무네는 언제나 칭찬을 독차지 한다. 야무네가 균형을 잘 잡아주어 그런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에서 남녀 성비는 여아가 훨씬 열세했다. 그 이유로 남아 출생비율이 약간 높은 것도 있지만 여야의 경우 집에서 케어하기가 수월하다보니 늦게 합류시키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추정해서이다. 유아들은 어릴수록 개월 수에 따른 발달차이가 크게 나타난다. 여아가 남아보다 언어, 신체, 사회성 면에서 앞선 발달을 보이는 건 보편적 현상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야무네는 몇 안 되는 여아이기도 했고 개월 수가 빠른 편에 속했으며, 또래 아이들에 비해 말을 좀 더 잘했다. 혹여 담임이 아닌 타반 선생님들도 그런 야무네에게 쉬이 한 마디 던진다. “와~야무네는 진짜 착하다" 또는 "야무네 최고" "야무네가 없으니까 친구들이 말을 안 들어"


야무네에게 가는 이런 과한 칭찬 이대로 괜찮을까?

그 칭찬으로 인해 어쩌면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행동을 못하는 건 아닌지, 35개월 아이들의 관용과 배려심이 차이나면 얼마나 난다고 야무네의 행동이 이렇게 남다른 걸까. 물론 아이마다 타고난 성품이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야무네 경우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나 말들이 아이를 특정한 테두리로 가둬버리는 것이 아닐까 염려가 되었다.


그러던 중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야무네의 행동이 자발성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가 될 만한 일이었다. 야무네 담임이 중간에 바뀌었다. 새로 온 선생님은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파악해야 했고 아이들도 새로운 선생님과 적응해 나가기 바빴다. 이로써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야무네가 이전만큼 과한 칭찬에 노출되지 않았다. 야무네도 자연스레 자신의 노선을 바꾸었다. 아니 바꾸었다기보다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야무네는 새 담임 선생님 앞에서 오히려 전보다 더 어린 아이가 된 듯했다. 선생님 무릎에 있는 시간이 잦았고, 그 또래 아이들이 보이는 특성들 예를 들자면,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에서 자신이 억울하다며 자주 일렀고, 양보하고 싶지 않을 때는 얄짤없었다. 야무네의 행동은 같은 아이가 맞나 할 정도로 그 전과 현저하게 달랐다. 하지만 야무네의 그런 행동들을 보면서 나는 안심이 되었다. 이제야 35개월 다운 아이로 돌아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특히 단체 생활에서 특정한 아이를 향한 훈계는 그것이 설령 칭찬일지라도 잘 사용해야 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칭찬 사용법은 가정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우가 뒤에 있는 친구 잘 보이도록 앉아줘서 고마워”

“아연이가 장난감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네. 정리를 잘 하는구나”

이것은 아이의 배려심 많은 행동에 초점을 두어 칭찬을 한 것이다. 아이의 구체적인 행동에 대해 칭찬을 할 때 아이들이 먼저 안다. 선생님이 저 아이를 특별히 예뻐해서가 아니라, 바른 행동이 어떤 것이며 다른 친구들을 위해서는 저렇게 행동해야 하는구나를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 깨친 것에 대해서는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이와 비슷한 견해를 『부모와 아이 사이』라는 책에서도 중요하게 언급해 두었다.

'칭찬이란 페니실린 주사처럼 함부로 놓아서는 안 된다. 잘 듣는 약이 모두 그러하듯, 약을 쓸 때에는 법칙과 주의가 필요하다. 법칙이란 시간과 양 그리고 부작용의 가능성들이다. 감정에 쓰이는 약에도 이와 비슷한 법칙이 있다. 칭찬할 때 가장 중요한 법칙은 성격과 인격에 대해서 칭찬하지 말고, 꼭 아이의 노력과, 노력을 통해 성취한 것에 대해 칭찬해야 한다.' 고 교육심리학자 하임 G, 가너트가 한 얘기이다.


칭찬을 남발하는 것과 두루뭉술하게 '착하다, 훌륭하다, 성격 좋다, 역시 너야'로 칭찬하는 것은 오히려 아이에게 위협을 가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강제로 아이에게 가면을 씌우는 행위와도 같다. 자칫 수동적이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아이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이제부터 칭찬은 노력한 일에 그리고 노력을 통한 성취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주기로 하자.


한때 우리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말로 칭찬의 사용법도 모른 채 오남용을 해왔던 시절이 있다. 좋은 의도일지라도 그에 따른 결과가 어떨지에 대한 의문을 조금만 가진다면 우리는 보다 질 좋은 칭찬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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