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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분카레 Jul 29. 2023

미국 서부 맨 끝

< 여행기 2>

눈으로만 덮여 있던 겨울의 이곳은 적막하고 침울했었다. 인구 2만 명의 작고 단조로운 작은 도시이다. 공부와 커뮤니티 시설들이 잘 갖춰진 도시였다면 한국에서의 모든 생활을 잠시 중단하고 왔을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을 따라오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일 년을 보냈다. 여름의 풍경은 겨울과는 많이 달랐다. 적나라하게 노출된 사막의 토양은 척박하고 거칠었다. 그나마 마을이 형성된 곳은 호수가 있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공원을 이루고 있었다. 나무아래 잔디와 수영장과 파머마켓 등에서 사람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이 겨울과 가장 다른 풍경이었다. 습도가 낮아 기온은 높아도 그늘은 시원하다. 습하지 않고 모기가 없는 색다른 날씨가 믿기지 않는다. 네 식구가 오랜만에 완전체가 되어 일상의 행복을 누렸다. 냉동실의 국과 볶음밥들이 우리의 부재가 가져올 허전함을 메워주기를 바라면서 더 꽉꽉 채워 넣었다. 한국식당 하나 없는 작은 도시라 어쩔 수 없이 혼자 해결해야만 하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실력이 많이 늘었다며 나를 안심시키지만 여전히 부실하고 빈약하게 한끼한끼 때우다시피 먹는 듯 했다. 건강을 지키기를 바라는 짠한 마음을 남겨둔 채 아침 일찍 라스베가스로 출발했다.


이곳 서부는 사방곳곳이 빈 공터로 남아있다. 건물을 높이 올릴 이유가 없어 보인다. 고층 아파트는 필요치 않으며 마당이 있는 주택들이 검소하고 널찍하게 펼쳐져 있다. 많은 집 뜰에 세워져 있는 집 채만한 캠핑카는 그들의 여가문화를 추측하기에 충분했다. 이곳 사람에게 시간에 대한 개념을 형언한다면 촘촘하기보다는 얼기설기 얽힌 여유로움으로 말할 수 있겠다.


물뿌리는 자동 시스템이 하루 종일 커다란 원을 그리며 논밭을 누빈다. 그 규모가 얼마나 큰지 한 자리에서 눈에 다 담을 수도 없다. 그 엄청한 농사에 사람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는이유는 자동화 때문이다. 자연이 내리는 물만으로는 초록의 대지를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옥수수 밭과 밀밭이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지만 그 외 대부분은 버려진 척박한 땅이다. 그저 무미건조한 지형의 스케일에 놀랄 뿐이다. 아기자기하고 정감 넘치는 한국의 시골 풍경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손바닥 만한 땅도 놀리는 법이 없던 어머니의 농사법과도 무척 대조적이다. 시종일관 미국이 부러운 이유 중 하나이다.


이방인에게 건조한 날씨는 그야말로 피부에 먼저 와 닿는다. 피부가 건조해져 얼굴이 바스락 부셔질 것 같고 가렵다. 이곳 사람들은 건조함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했다. 사람들은 외모를 치장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고 상대에 대한 예의는 깍듯하다. 사람들 덩치가 크고 땅이 넓은 만큼 모든 것들이 그에 최적화된 듯하다. 농산물도 공산품도 땅덩어리처럼 일단 사이즈가 크다.


내버려진 것 같은 땅을 지나칠 때면 매번 드는 생각이 있다. 저 넓은 곳에 집을 지으면 수 만가구가 들어설 수 있을거라는 허황된 상상이다. 여행을 할 때는 이 넓은 땅이 이제 가장 큰 제약이 된다. 국내에서조차 비행기가 보편적인 이동수단이 된 것을 보면 국토의 넓이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시애틀까지 차로 3시간을 달렸고, 거기서 다시 라스베가스로 2시간 동안 날아갔다. 아무리 멀어도 몇 시간 운전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차로 몇 일을 달려야 하는 미국의 여행은 쉽지 않다. 사막의 한 가운데 웬 광란의 도시가, 이는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뉴딜정책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대공황으로 경기가 불안정해지고 실업자가 급증하면서 불황 극복을 위해 후버 대통령이 만든 정책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건설 현장에 사람과 돈이 몰리니 갬블과 유흥가도 동시에 발전하게 된 것이다. 각종 볼거리와 카지노를 호텔 안으로 끌어 들인 몇몇 손꼽히는 사업가들로 인해 지금의 화려한 도시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지금의 라스베가스를 있게 한 후버댐과 말로만 듣던 라스베가스를 직접 체험하러 간다. (23.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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