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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미래 귀촌일기 7 >

by 삼분카레

5월의 대반뜰은 충만함이고 희망이다. 양파 줄기가 어린아이 키만큼 자라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막바지 성장에 온 힘을 기울이는 듯하다. 돼지감자를 비롯한 각종 채소들은 날이 갈수록 짙은 푸르름을 뽐내고, 뒷산 참나무 숲에 버섯종균 일도 마쳤다.


논밭의 작물들만큼이나 사람들의 활기도 넘친다. 계절 덕분만은 아니다. 인근의 당동마을, 등대마을, 판곡마을, 덕천마을의 어르신 중 대부분은 요양보호, 생활보호, 치매요양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매칭이 되었다. 노인인구에 비해 젊은 사람 수가 적은 농촌에서 이 같은 현상은 매우 이례적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수급자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은 일대일 매칭이 기본이다. 우리 마을에서도 기본은 따르되 방식을 약간 수정 응용했다. 마을의 이웃사랑 모토인 ‘따로 또 같이’를 부르짖으며 공동으로 어르신들을 돌보기로 했다. 청소와 보수가 필요한 어르신들의 집은 당번을 정해 순회하면서 일들을 처리한다. 아침마다 마을공동사업장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에 일도 여가도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공동 보호가 가능해졌다. 모두에게 큰 만족을 주는 방식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런 방식이 가능하게 된 것에는 몇 달 전 마을공동 급식소 지원 사업 공모에서 적지 않은 사업비를 따내면서 시작되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집에서 따로 밥을 하지 않고 공동급식소에서 한솥밥을 먹게 되면서 일은 한층 수월해졌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외로움과 불균형한 영양섭취에서 해방되게 된 것이 가장 두드러진 성과라면 성과이다.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 된지 석 달 정도 되었다. 거동에 큰 불편이 없는 어르신들은 서서할 수 있는 일을 맡고, 거동에 불편함이 있는 어르신들은 앉아서 잡일들을 맡는다. 어른들의 일머리가 만들어내는 일의 속도는 빛의 속도를 능가할 수준이다. 무거운 짐 운반이나 힘을 써야 할 일들에는 워크어웨이로 들어온 상민군이 한 몫을 단단히 해 주고 있다. 그는 32살 청년으로 3개월간의 체류를 신청하고 들어왔다. 졸업 후 서울에서 힘들게 얻은 직장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가던 중에 우연찮게 우리 마을 워크어웨이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월세는 비싸고, 수입은 일정치 않고, 숨만 쉬는데도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을 감당하려니 정말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어요. 도시의 피폐한 생활이 저의 남은 자신감마저 야금야금 갉아 먹는 것 같아 두려웠어요.”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으셔서 농촌 체험을 오신 거예요?”

“일단은 마음을 좀 회복하고 싶어요.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 절대로 시골에서 살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지만, 마음의 위로를 얻는 데는 또 시골만한 데가 없는 것 같아요. 요즘은 청년들도 농촌으로 많이 들어온다고 하니, 이곳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찾아보고 싶어요.”

“탁월한 선택이에요. 우리와 함께 고민해 봐요.”


시골살이를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상민군의 눈빛에서 굳은 의지를 보았다. 무턱대고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시골로 들어와 이도저도 아닌 안타까운 일을 방지하자는 우리의 의도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방문도 여행도 아닌 직접 살아보게 함으로써 귀농귀촌을 위한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었다. 확신을 갖고 돌아왔을 때 이탈자는 줄고 만족감은 높아지는 법이니까. 워크어웨이를 통해 들어온 분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함박님 부부가 맡아서 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끼리 갖는 동질감과 비슷한 세대끼리의 조언이 피부로 가닿으리라 생각한다.


이후 워크어웨이 시스템이 청년이나 퇴직 후의 사람들을 불러들이는데 지대한 공헌을 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날로 갱신되고 있다. 신청자와 문의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그것을 증명해 준다.


등대마을 근처의 캠핑장은 주말이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붐빈다. 이런 시골에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는게 신기할 정도이다. 장기대여를 해서 텐트를 철거하지 않고 세컨하우스 처럼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처음에 이곳에 캠핑장이 생긴다고 했을 때 주민들은 모두 의아해 했다. 볼거리도 놀거리도 없는 무료한 이곳에 캠핑이 가당키는 할까라는 회의적인 시선만 난무했었다. 카라반 7대와 오토캠핑장 십여 군데로 시작한 캠핑장이 점점 영역을 넓혔고 지금은 초창기의 두 배가 넘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붐비는 캠핑족들로 인해 정작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수혜가 없다는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특정 개인의 운영권 독점보다는 마을단위에서 운영권을 가져오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다. 대반뜰 북카페 역시 등대마을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북카페를 중심으로 마을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역시 연대의 힘은 강했다. 마을단위의 운영이 되면서 캠핑장은 더욱 활성화 될 일만 남겨두고 있다.


캠핑장 옆 휴지기에 주말 프리마켓을 계획 중이다. 마을공동사업장에서 만들어내는 제품과 인근 마을에서 재배하는 각종 농산물과 먹거리들로 시장이 형성 될 것이다. 캠핑 오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의령군 전체 마을 사람들이 나들이 오는 장소가 되도록 이미 밑그림을 마쳤다. 푸드트럭도 생기고 뻥튀기가 뻥뻥대고, 아이들이 자기 얼굴만한 솜사탕을 들고 뛰어노는 그런 날이 머지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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