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미래 귀촌일기 6 >
시골의 겨울은 도시보다 더욱 삭막하다. 초록빛이 주는 생동감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활기이다. 그나마 대반뜰에는 양파들의 가녀린 싹들이 겨울 한가운데 꼿꼿하게 서 있어 한결 나은 편이다.
겨울의 스산함을 잊게 하는데 북카페가 적지 않은 공헌을 하는 건 역시 사람의 온기 덕분이다. 독서토론의 열기는 점점 달아올라 9개월 만에 멤버가 10명으로 늘었다. 먼 길을 갈 때 걸어온 길을 되돌아서서 보면 언제나 대견한 생각이 드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어느새 이렇게 멀리까지 걸어왔음을 알게 되는 점과 멈추지 않고 나아나길 잘했다는 점. ‘형설지독’도 그러하다. 그동안 스물두번의 모임을 가졌다. 책을 읽고 토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자꾸자꾸 생겨난다. 머리를 맞대고서 나온 아이디어는 여럿이 함께 움직이는 행동력과 만나 더욱 우리를 신명나게 한다.
독서토론에서 결혼이주민에 관한 책을 여러 권 같이 읽었다. 코로나로 폐업을 하고 남편과 귀농한 완다의 시골살이는 탄탄하게 자리를 다져가고 있다. 완다의 소식을 들은 고향 친척 동생이 한국으로 결혼이주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입소문이 나고 인구 유입으로 이어지는데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님을 직감했다. 지난달에는 부산에서도 일가족이 근처 마을로 터전을 옮겨왔다. 이주 여성을 가까이서 혹은 간접적으로 대하고 보니 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은 차고 넘친다.
“일정한 벌이 없이 어떻게 도시에서 사셨어요?”
“정말 비참했어요. 저는 국적 욕심 때문에 결혼을 했어요. 지금의 남편과요. 그런데 덜컹 아이가 생겨버렸어요. 아이만 아니었으면 벌써 헤어졌을 거예요. 남편은 힘들 때 저를 때리기도 했어요”
무급가사노동과 유급임금노동으로 치열하게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홀대를 받는 일은 다반사다. 괄목할만한 변화는 없고 한결같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한결같다고 여겨질 때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는 더욱 오리무중이다. 더 이상 참으면 안 되겠다는 의식이 깨어나고 함께 뭉치면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겨나고 있다. 완다와 그의 친구들의 활약은 형설지독으로 하여금 더 많은 과제를 부여하는 중이다.
양파 농사는 오랜 시간동안 대반뜰의 주된 농작물이 되어오고 있다. 늦가을에 파종을 하면 땅속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초여름에 수확을 한다. 다른 작물들이 결실을 맺고 떠나는 자리에 홀로 푸르름을 간직한 채 자신의 생존을 알린다. 그러고 보면 양파는 사계절이 가지는 자양분을 한 몸에 옴팡지게 담아내는 작물이다.
양파 값이 해마다 널뛰기를 해도 농부들은 그저 묵묵하게 일할 뿐이다. 일 년의 노고가 언제나 헐값에 매겨지는데는 익숙해져 있고 시장의 양파금은 중간상인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매해 6월 초순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온 식구들이 양파 밭을 누비던 일은 이제 아득한 추억이 되었다. 일 년에 겨우 이틀정도 도와드리는 일이었지만 시집와서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마을의 몇 분이 대반뜰 전체를 대량으로 농작하고 있어서 대부분이 기계화되어 한층 수월해졌다.
마을 공공사업으로 양파를 주종목으로 하자는데는 마을 주민 누구도 이견이 없었다. 주요채소 품목 몇 가지를 늘리는 일은 착한아저씨를 비롯하여 대량생산하시는 농부님들을 만나 논의를 거쳤다. 돼지감자와 뿌리채소들의 농사를 늘리고 공장은 당뇨나 식이요법 환자, 그리고 이유식에 필요한 채소를 말리는 공정으로 결정했다, 허가를 받고 건물을 짓고, 필요한 장비들을 들여 놓는데는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공공자금을 지원받아 하는 일이라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지만 옥빈님의 오랜 사업 경험으로 일은 한층 수월하게 진전되었다.
3층 건물에 1층은 공장의 모습을 거의 갖췄다. 2층은 방문객들 체험장으로 3층은 투숙객들을 위한 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체험장에서는 농촌 체험을 오는 방문객들에게 천연염색, 각종 공예 등 다채로운 활동을 위한 공간이다. 3층은 숙박시설로 이용하기 위함이다. 하루 5시간의 노동제공을 받고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는 워크어웨이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도시생활에 지쳐 힐링이 필요한 청년들, 귀촌 혹은 귀농에 대한 열망은 있지만 해낼 수 있을지 자신감이 없으신 분들, 한국의 농촌을 체험하고 싶은 외국인들, 삶의 터전을 찾고 있는 이주민들에게 ‘일단 살아보기’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이 같은 기회를 통해 마을은 모자란 일손을 보충하고 누군가는 새로운 비전을 갖게 될 것이다.
도시는 ‘떠나다’는 말과 어울리고, 시골은 ‘돌아오다’는 말과 잘 호응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돌아오고, 시골로 들어와서 넉넉한 마음으로 함께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