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회 결성하다

< 나의 미래 귀촌일기 5 >

by 삼분카레

꽃피고 새 울던 봄날 북카페를 열었고, 지금은 두 계절을 보낸 가을의 초입에 서있다. 마을 사람들의 북카페 방문이 잦아졌다. 어르신들은 불편한 점을 호소하고 적적함을 달래기 위함이 크고, 좀 더 젊은 사람들은 커피와 친목을 위해서 모인다. 캠핑 온 사람들은 주로 테이크아웃 해가고 뜨내기 손님들도 시골마을의 카페가 생소해 지나던 길에 들른다. 소문을 듣고 오는 손님 혹은 책을 보고 싶은 이도 드물게 찾아든다.


자주 얼굴 보는 사이가 된다는 건 이틀만 못 봐도 서로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관계가 된다는 것. 관계가 낳은 또 다른 기분 좋은 감정들을 하나 둘 알아가는 중이다. 마을이장에 당선되는 일은 사람들과 잦은 교류로 인한 순치로써 이변은 없었다. 귀촌을 꿈꾸던 철부지 시절에는 아버님의 뒤를 잇겠다는 말로 마을이장을 선언했었고, 이후 여러 차례 귀촌을 두고 심경의 변화를 겪었었다. 지금 모든 일들이 현실이 되고 보니 마을이장은 내게 숙명과도 같은 일이었던 것 같다.


사실 마을이장을 염두에 두게 된 실질적인 계기도 있었다. 2022년 서울에서 생활 할 때 횡성으로 농활을 다녀온 적이 있다. 활동명은 ‘채종포 밭 풀 뽑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는 생협과 횡성 여성농민회와의 결연 활동 중의 하나였다. 공동으로 밭을 경작하면서 토종작물에서 종자를 채취하는 작업으로서 우리의 토종씨앗을 지키자는 가치 있는 활동이었다.


지구상의 모든 종자를 독점하려 드는 악덕기업인 몬산토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당대에만 수확가능하고 계승이 안 되도록 유전자 조작한 씨앗을 만들고, 자사의 농약이나 화학비료에만 적확한 씨앗을 판매하는 그들의 횡포는 나날이 교활해 질 것이다. 농민들의 작은 날개짓이 이후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이 되기를 희망하였다. 여성농민회의 결연한 의지에 감명을 받았고 이후 동참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여성농민회는 40대부터 80대 여성들로 이루어졌는데, 여성회에서 운영하는 마을사업으로 작은 두부공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한켠에서는 각종 농촌체험 활동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여성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당당함을 기본으로 자랑스런 농촌 살리는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농촌이 살만한 곳임을 어필하기 바빴고 언제든 귀촌을 하게 될 때 도움을 주겠노라며 넉넉함까지 내어주었다.


그때부터 오랜 시간동안 마을단위의 공공사업을 만들어야겠다고 다부진 마음을 먹어 왔다. 별무반 꿈도 희망도 없던 마른장작 같은 어르신들의 삶이 다시 활활 타는 불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랐다. 누구라도 불쏘시개 역할이 되어야 하는데 그 기회가 지금 내 앞에 와있다. 자신이 아직도 쓸모 있는 사람이란 걸 자부하는 삶과 오래 사는 것을 한탄만 하는 삶의 질 차이는 확연이 다를 것이다.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고 소일거리로 시간을 보내는 삶과 무기력하게 혼자 시간을 보내는 삶의 질 차이는 또 얼마나 클까.


경남에서는 진주지역 여성농민회가 그나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곳의 대표를 만나고 횡성의 대표님께도 자문을 구했다. 유곡면 일대 13명의 여성들이 창립멤버가 되어 여성농민회를 결성했다. 앞으로 우리가 펼칠 사업 아이템을 결정하고 판로를 개척하는 일들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같이 하면 당해내지 못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마음을 갖고 행동하자 여기저기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는다. 역시 뜻이 있는 곳에 길은 보이고 그 길을 잘 닦는 일은 우리 손에 달렸다. 의령군에서도 우리의 행보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담당공무원의 세세한 조언과 관심은 우리에게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마을 공공사업이 활성화되면 이 일을 주축으로 이주여성들의 유입인구를 늘이는 일과도 연계하고 싶다. 고령자들의 숙련된 솜씨가 젊은이들의 추진력과 아이디어를 만나 더욱 빛을 발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어르신들에게는 용돈벌이를 젊은이들에게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우리의 계획은 앞으로도 한계를 알지 못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