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미래 귀촌일기 4 >
아침해가 대반뜰의 뿌연 안개를 걷어내자 너른 들판은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이 풍경을 만들어 내는 도시와는 달리 시골은 자연이 사람과 풍경 모두를 지휘하는 듯하다.
재가노인복지센터가 개소를 했다. 첫 요양보호 수급자는 어머니였고 나는 가족요양보호사로 등록을 했다. 어머니는 10년 전에 서울의 한 병원에서 오른쪽 무릎 수술을 하셨다. 얼마 안가 다른 쪽 무릎이 마뜩잖았고 곧 고관절에까지 무리가 가서 걷기 운동을 못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남편이 주로 어머니를 돌보고 나는 바깥일로 분주하다. 그야말로 남편은 집사람이, 나는 바깥양반이 되었다. ‘당신 은퇴하고 나면 노후에는 내가 벌어먹여 살릴께’ 호언장담하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수년 전부터 세웠던 계획들을 하나씩 이뤄나갈 생각하니 매일이 설렘의 연속이다.
두 번째 요양보호사는 완다, 그는 필리핀에서 온 결혼 7년차 결혼이민여성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있기 전까지는 진주에서 남편의 식당일을 도왔다. 식당이 문을 닫으면서 부부는 실업자가 되었는데 지금으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말한다. 식당 옆 채소가게의 아내가 베트남인으로 완다와 같은 이주여성이다 보니 두 사람은 각별한 친분을 쌓아왔다. 각종 채소들의 수급을 맡아주시는 그의 시부모님이 마침 의령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공심채, 고수 같은 동남아인들이 즐겨먹는 채소 농사를 짓는데 늘 일손이 부족하던 참이었다. 진주자유시장내에 동남아채소가게라면 진주시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이름난 채소가게이다. 완다부부는 채소가게 부부의 권유로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 농촌이 외면당하고 땅이 제구실을 못하는 이 시대에 농사를 짓겠다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묻고 따지지도 않고 환영받는 이곳, 군에서도 빈집을 매입해 귀농인들에게 살 곳을 지원해 주고 있다.
완다 남편은 채소 재배 농법을 익히고, 운송을 맡는 등 하루가 다르게 농사꾼으로 변모하고 있다. 완다는 육아와 병행해서 할 수 있는 경제활동을 찾던 중이었다. 실업상태일 때 취득해 두었던 요양보호사일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며 잇몸 만개한 웃음을 내보인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있는 시간 동안 완다는 오전 오후 두 어르신의 돌봄을 맡게 되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면서 생기는 급작스러운 일에 도움의 손길은 넘쳐났다. 누구든 나서서 아이를 맡아주기도 하고 수급자 어르신을 대신 돌봐드리기도 한다. 선하고 요령피울 줄 모르는 완다의 품행에 보답하는 시골의 정이라고 할까.
노인요양복지센터가 서서히 자리를 굳히고 있는 사이 북카페 본연의 임무를 위해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북카페인 만큼 책과 관련한 활동을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진즉부터 떠벌리고 다닌 탓에 은근 독서클럽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으니 더 지체해서는 안 되었다. 이를 위한 SNS홍보는 혜란이가 카페일이 틈나는 대로 맡아서 해 주었다.
독서클럽 첫날에 5명이 참여를 했다. 부산에 거주하지만 주말마다 시골집으로 찾아오던 봉이님은 최근 이곳으로 완전 이주를 고민 중이다. 더블님은 남편이 먼저 귀촌을 했고 본인이 시골살이에 적합할지 수습기간을 가져보기로 했다는데 독서클럽까지 나온 거 보면 반 이상은 넘어온 것 같다. 평생을 사업체를 꾸리다 정리하고 귀촌하신 옥빈님, 동물권과 환경보호 활동가이며 얼마 전 결혼과 함께 시골살이를 택한 청년 함박님, 모이고 보니 마치 우리의 만남은 필연 같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첫 번째 화두는 ‘따로 또 같이 잘 살아보자’에 꽂혔다.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소리가 그득한 곳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로 선행되어야 할 일이 젊은 사람들의 유입일 겁니다 ”
“그러려면 일자리와 살기 좋은 곳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어야겠죠”
의령군은 경남에서 가장 인구수가 적은 군이며 노령화 지수 또한 가장 높은 곳이다. 고령화, 저출산이라는 말에 노인들은 죄인이라도 되는 양 ‘이리 오래 살아가 우짜것노’ 라며 죄 값을 덜어내려는 듯하다.
“젊은이들과 결혼여성들의 유입을 위해서 당장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완다가 이곳으로 오게 된 경위는 좋은 사례가 될 것 같아요. 일자리 마련, 거주 공간 제공, 살기 좋은 마을 만들어가기 등 말이죠”
“제가 본 책 <<어딘가에는 싸우는 이주여성이 있다>>에서도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충북옥천의 마을에 이주여성들의 유입이 늘어나게 된 과정을 함께 살펴보면 어떨까요?”
“관련 책을 더 찾아보고 앞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의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 같아요.”
새까만 시골 밤하늘 아래, 세상을 밝히는 등불처럼 밤이 깊어지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앞으로 읽고 토론할 책들과 방향성 그리고 모임 규칙 등을 세세하게 짜나갔다. 독서클럽의 이름을 ‘형설지독’으로 정했다. 반딧불과 눈빛으로 공부를 해서 공을 세웠다는 형설지공에서 본떠 만들었다. 지역사회를 밝히는 반딧불이 되고 눈처럼 환한 세상을 만드는 독서모임이 되자고 혈서라도 쓸 기세였다.
사람살기 좋은 곳을 만들기 위해 모이고, 책을 함께 읽고, 같이 실천하는 일들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일들임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