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미래 귀촌 일기 3 >
드디어 대반뜰 서점이 문을 열었다.
서점과 접해있는 동북쪽의 당동마을과 남서쪽의 판곡마을은 가가호호 방문해서 떡을 돌리고 인사를 드렸다.
“무신 가계요?”
“네 어르신, 책과 커피를 팔지만 곧 어르신의 불편을 사는 가게가 될 거예요.”
어르신은 무슨 소린가 의아해 했지만 되묻지는 않았다. 두고 보면 알게 되것지하는 어르신 특유의 느긋함에서 나온 반응이다.
비어있는 집이 태반이었다. 반경을 조금 더 넓히니 흩뿌려진 듯 자리하고 있는 작은 마을들이 약간의 위로를 건넨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서점의 잠재 이용자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돌아왔다.
서점 입구에 ‘대반뜰 북카페’라고 새긴 장승을 세웠다. 마당에는 자연아란석을 깔아 잡초들의 반란을 막고 배수에 신경을 썼다. 마당 오른쪽에 아궁이가 입을 벌린 채 있는 사랑방은 그대로 살려 두었다. 북카페가 아닌 다른 용도로 허가를 내어 사무실로 쓸 공간이기 때문이다. 기와지붕이 있는 본채는 집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했다. 마루는 철거하고 앞으로 넓게 빼서 온실과 같은 공간으로 지붕을 투명유리로 잇대었다.
여전히 정돈중이라 어수선하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겨우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서점동쪽으로 흐르는 유곡천 주위로 군에서 운영하는 오토갬핑장이 생겼다. 카라반도 설치되어 있어서 주말이면 늘 만원이다. 그나마 북적거리는 인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 마을에 큰 이득이 없어도 그저 반가울 따름이다. 앞으로 캠핑족들의 니즈를 파악해서 마을의 수익을 창출해 내는 방안도 나의 계획 속에 한 꼭지로 자리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니 서점을 자꾸 비워야 할 일이 생긴다. 모름지기 가게란 문 열고 닫는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자리를 비우는 일도 없어야 한다. 알바생이 필요했다. 이런 시골에서 알바생을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혜란이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혜란이는 착한아저씨의 외동딸이다. 착한아저씨는 시아버지의 오랜 절친이셨다. 나이는 10살 정도 어리지만 마을 이장이셨던 시아버지와 늘 뜻을 같이하던 분이었다. 우리가족에게 아낌없는 친절을 베풀어 주셨기에 내가 붙인 별명이다. 착한아저씨의 착함은 외동딸인 혜란이에게도 어김없이 과다방출되었다. 혜란이 신발밑창에 티끌하나 묻을새도 없이 딸을 애지중지 키웠다. 혜란이가 가지를 뻗고 바람에 흔들릴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집을 떠나 도시에서 취직을 했을 때도 혜란이는 곧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돌아와야만 했다. 이단종교집단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혜란이를 구출해 올 때 아저씨는 다시는 딸을 떼어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는지 모른다.
그 이후로 혜란이는 대반뜰을 떠나 본적이 없었고 37살이 되도록 엄마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혜란이 이야기는 온 동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가십거리였다. 때로는 혜란이 아버지의 왜곡된 자식사랑을 질책하는 듯 하고, 때로는 앞날이 창창한 한 청춘의 삶을 동정하는 듯 했다. 남의 일에 이러쿵저러쿵 참견하기 좋아하는 이곳의 문화가 낯설지만 곧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단조로운 삶에 산소를 불어 넣어줄 만한 일들은 좀처럼 없는 이곳, ‘누가 병원에 실려갔다더라, 어느 집 자식이 어떻다더라’와 같은 이야기들만이 무성할 뿐이다. 이후 마을의 모두가 공동체 생활이 갖는 기쁨과 신명나는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을 날이 오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혜란이에게 카페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했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착한아저씨였다. 아저씨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무위도식하는 딸을 가장 안쓰럽게 여긴 사람도 아저씨였을 것이다. 혜란이도 좋아서 흔쾌히 승락했다. 혜란이는 읍내 카페에서 6개월간의 알바경험도 있었다.
혜란이가 카페를 맡아주는 시간에 나는 사무실로 개조한 사랑방에서 업무를 시작한다. 제일먼저 해야 할 일은 재가노인복지센터 허가를 받는 일이다. 갖추어야 할 서류들로 관공서를 쫓아다닐 일이 넘쳐났다. 이런 날을 대비해서 사회복지사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두었다. 시골인구의 대부분이 노인들인 만큼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는 필수불가결하다. 거동이 불편하고 요양을 받아야 함에도 인력수급이 어려워 보호를 받지 못하는 어르신이 대부분이다. 등급을 받고 신청을 하는 일들은 관공서 복지과에서도 해 주는 일이다. 그러나 인력수급에 난항을 겪는 일은 그들도 해결해 주지 못한다. 마을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시에서 귀촌한 분들을 독려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나이 먹고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가 올 것이다. 어르신을 돌보고 마을의 일원으로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모두의 동참이 필요하다. 귀촌하신 분들이 하루 3시간씩 이웃 어르신을 돌봐드리는 일로 삶이 더욱 풍성해지면 좋겠다. 적은 시간이지만 4대보험이 보장되는 직업이므로 은퇴를 하신 분들에게는 비싼 지역의료보험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따로 또 같이’를 모토로 서로서로 힘을 합치면 어려울 것도 없어 보인다.
북카페에 사람들이 모이고, 같이 살아가는 의미를 나누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기쁨이 되는 날들이 올 것이다. 멀리 있는 자식보다 가까이 있는 이웃에 의지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6개월 후 마을이장선거가 있다. 몇 해 전 외지에서 들어온 분이 이장직을 맡으면서 동네 인심이 삭막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을주민들의 동의를 구하지도 않은 상태로 교묘하게 마을 귀퉁이에 양계장 허가를 받은 현 이장은 마을의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았다. 지금 마을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버님의 뒤를 이어 내가 나서야 할 때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