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미래 귀촌 일기 2 >
서점이 없는 마을은 마을이 아니다.
스스로 마을이라 부를 수 있겠지만
영혼까지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자신도 알 것이다. (소설가 닐 게이먼)
『 어서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중에서
2030년 현재 나는 새로운 삶을 위한 준비로 한창이다. 오랜 시간 귀촌에 대한 고민으로 엎고 뒤집기를 번복하고서야 결국 아니 드디어 경남 의령군 유곡면 대반뜰 한 가운데에 섰다.
집을 새로 지을까 말까 많은 고민을 했었다. 짓지 않기로 했다. 평생을 이곳저곳으로 떠돌아 다니면서 때로는 바다 위 부표 같다고 느꼈었다. 쌌던 짐을 풀기도 전에 다음 집을 구해야 할 때도 있었다. 모던하고 화사한 잡지 속의 집처럼 꾸며 놓고 살날을 소망하며 살았다. 그런 내게 노후의 집은 어떤 사치를 부려도 기꺼이 그럴만하다는 이해를 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나였는데 생각에 뒤틀림이 생겼다. 욕심 부리기를 포기한 제일 첫 번째 이유는 시골살이에 백기를 들고 싶을 때 언제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기 위함이다. 두 번째로는 집을 근사하게 지어놓은들 이다음에 자식들이 들어와 살 일은 없을 것 같아서이다. 세 번째로는 미니멀한 삶을 실천하고 재활용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했다. 그러는 와중에 결정타는 바로 네 번째 이유의 등장이다.
우리는 어머니 집을 약간 손보았다. 지리적으로는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춘 최적의 위치였으며 집 앞은 논밭이 펼쳐져 있어 시야가 오대양이 부럽지 않다. 대신 농사짓기에 적확했던 마당의 콘크리트는 거침없이 걷어냈다. 마당 양쪽으로 자리하고 있던 창고들도 모조리 무너뜨렸다. 대신 남편의 놀이터가 될 작업장을 만들었다.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공구걸이에 갖가지 공구들이 자신의 쓸모를 기다리고 있다. 마당의 텃밭, 정원을 가꾸는 일과 목공예가 남편의 주된 하루일과가 될 것이다.
사방을 에워싸고 있던 담은 없애기로 했다. 대문이 있는 오른쪽은 측백나무를 심었더니 가림막 역할로 손색이 없다. 정면 담벼락 자리에 심은 갖가지 꽃들과 키 작은 나무들은 집앞 논과 경계를 허물었다. 왼쪽 담 너머에는 도시에 살고 있는 땅주인을 대신해 오래 전부터 어머니 텃밭으로 이용해 오던 땅이 있다. 몇 년 전 그 땅을 매입하려는데 평당 20만원이던 것을 하루아침에 25만원으로 말을 바꾸는 바람에 사지 않았다. 계속해서 텃밭으로 사용할 수 있으니 우리로서는 손해될 것이 없다. 담을 없앤 덕분에 옆마당이 세배로 뻥튀기 되었다.
집을 짓지 않기로 한 결정적 네 번째 이유는 북카페다. 집짓기를 포기하면서 굳은 돈으로 허름한 시골집을 개조해 북카페를 열고 싶었다. 인적이라곤 드문 시골마을에 북카페라니 가당치도 않은 말이었다. 가족들의 만류에 펼쳐 보이기도 전에 접어야만 하는 터무니없는 계획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펼쳐 보일 수 있었던 건 내가 가진 비장의 카드 덕분이었다. 귀촌하면 안 될 이유들을 물어 나르던 내가 뜻을 굽히고 들어오는 대신 얻어낸 일종의 협상카드였다. 협상타결로 북카페를 얻어낸 것이다.
북카페 용도로 매입한 집은 버스가 다니는 길가에 위치하고 있다. 버스라고 해봐야 하루에 한 번 읍내 시장이나 병원 등으로 어르신들을 실어 나르는 작은 미니버스가 고작이다. 우리 집 앞 400미터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때는 초등학교와 면소재지가 있던 곳이었다. 곳곳에 무너져가는 빈집이 절반 이상이고 몇몇 노인들 행색만큼이나 집들도 겉가죽을 늘어뜨린 채 남루한 모습을 하고 있다.
요즘 동네 어르신들의 관심은 온통 평촌댁 집 맏아들 내외가 귀촌을 한데 쏠리고 있다. 특히나 길가 무너져가는 집을 산 것에 대해 모두 이러쿵저러쿵 애정 어린 잔소리를 늘어놓으신다. 서점이라는 말이 낯설까봐 책 팔고 커피마시는 곳이라 풀어 얘기했더니 겨우 알아들으시곤 혀를 차고 고개를 내젓는다. 사막에서 모래를 팔려고 덤비는 격이니 한심한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서점이 책과 커피를 파는 곳이라고 누가 정해 두기라도 했단 말인가. 시골이라 해서 노인들만 거주한다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윗동네와 아랫동네 사이에 무덤과 밭떼기가 있던 터에 족히 집 열채가 들어갈 만한 택지를 조성했더니 현재 그 집들이 도시에서 귀촌한 사람들로 꽉 찼다.
누군가는 와서 커피를 마실 것이고, 또 누군가는 책을 함께 읽고 싶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도움이 필요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구차하게 변명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소상하게 밝히는 대신 나는 먼저 행동하려 한다. 쯧쯧 혀를 차던 어르신들이 혀를 내두르는 그런 날이 올 수 있길 바란다.
작은 포크레인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시골집이 북카페로 환골탈태할 공사가 오늘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