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변했어요

< 나의 미래 귀촌일기 1 >

by 삼분카레

땅을 치며 후회한다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어이없게도 십수년 전 나는 귀촌에 대해 설레발을 쳤었다. 남편이 퇴직을 하고 나면 같이 시골로 들어가서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다는 경솔한 생각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퇴직은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세월은 급행열차를 타고 달렸는지 슬슬 내릴 채비를 해야 할 시점에 가까워진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고, 고등학교 이후로는 줄곧 도시에서 살았다. 시골에 대한 동경은 언제나 사치스럽도록 해왔다. 가끔 가는 시댁의 시골의 정취는 꽤 매력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시부모님께서 직접 농사지으신 건강한 먹거리를 언제나 그득그득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가져다 먹었다.


가끔 방문하는 것과 매일 사는 것의 간극은 실로 어마무시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가는 것은 선택이다. 심지어 가끔에 방점을 찍으면 일상을 벗어나 신선한 체험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반대로 매일 그곳에 사는 것은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내야만 한다는 억압이 느껴진다. 도시에서의 삶이 삭막하고 퍽퍽하다지만 그건 많고 많은 편리함을 모조리 빼낸 후를 표현하는 말이다. 도시가 싫고 자연이 가까운 시골이 좋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정작 마주하려니 주저해진다. 혼자서 내적갈등을 겪고 생각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남편 말에 의하면 2,3년 전부터 내가 귀촌하면 안 될 이유들을 제비가 박씨 물어오듯 한다고 했다. 나이 들면 병원이 가까워야 한다는 말을 제일 먼저 물어오더니, 그 다음은 아이들 핑계를 대더란다. 남편은 인정하지 않지만 그곳은 촌 중의 상촌이다. 굽이굽이 재를 넘고 한참을 달려야 나오는 촌이다. 가까운 도시인 진주 마산 창원을 가려도 해도 운전해서 1시간은 달려야 한다. 서울에서 최소 5시간 반을 달려야 나오는 곳, 차가 막힐 때는 족히 9시간도 마다않는 첩첩산중이다. 그런 먼 길을 아이들 얼굴을 일 년 가야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득하다.


많은 사람들이 호기로운 마음으로 귀촌귀농을 했다가 두손두발 들고 도시로 귀환한다는 이야기는 빛의 속도로 와 내 귀에 박힌다. 남자 혼자 자연에서 살고, 아내는 도시에서 사는 경우를 주위에서 권해온다. 무턱대고 갔다가 이내 백기 들고 귀환했다는 경우만 내 귀에 들어온다. 적응해서 잘 살고 있다는 경우는 하나도 들려오지 않는다. 역시 내가 듣고 싶은 것만 들리는 모양이다. 나는 지극히 평균적인 범주에 속하는 사람이다. 열에 여덟이 인정하는 일이면 어느새 나도 여덟 쪽으로 편승하고 있다. 그러니 백기 들고서 자신이 설 곳을 찾지 못하게 될까봐 염려된다.


남편의 퇴직 날을 미리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반대로 남편은 퇴직 날만을 기다리며 살고 있을 것이다.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난 또 내가 듣고 싶은 말만을 듣고 있다. ‘퇴직 후에 급속도로 노화가 진전되고 우울해 질 수 있으니 더 길게 일하는 것이 좋다고’


나의 설레발이 있기 오래전부터 꿈꾸던 일인지 모른다. 터전이 있고 조상이 있고 추억이 있는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유년 시절 다음으로 갖는 두 번째 꿈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와중에 와이프조차도 쾌재를 불렀으니 남편은 그런 아내가 천연기념물 같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고단한 직장생활도 달콤한 꿈을 미끼로 참아내는지도 모른다. 허세도 자랑질도 모르는 남편이 회사 동료들에게 떠벌렸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와이프가 흔쾌히 시골살이를 꿈꾼다는 말에 주위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했다며 의기양양해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못 들어줄게 어디 있겠냐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도 자신없음이 내 마음 한 귀퉁이에 웅크리고 있다. 다행히 남아 있는 시간이 있다. 평소 내가 즐겨하던 말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를 되내어 보기로 한다. 남편의 소원이라는데 깔끔하게 그 소원 들어주기로 하고, 나는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구상하면 된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한결 가벼워진다. 귀촌해서 마을이장을 하겠다며 설레발치던 처음의 나로 돌아가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