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아울 Nov 29. 2020

50만 명이 보는 글쓰기

브런치를 통해 얻은 것들

4번 떨어지고 선정된 브런치 작가

4번의 탈락 이후 작가가 선정된 지 10개월 정도 됐을 때 글 하나 갑자기 조회수 50만 명에 다다랐다. 지인들이 다음 메인, 카카오톡에 내 글이 소개된 것을 캡처해주면서 알게 되었다. 선정기준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크게 두 가지로 추측해본다. 명절 이후라는 시의성과 관심을 끌만한 이슈 선정. '고속도로에서 시어머니가 준 반찬 버리기'는 내 관심이었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인 제목이 아니었나 되돌아봤다.





고속도로에서 시어머니가 준 반찬 버리는 며느리


50만이라는 숫자가 내 인생에 들어옴


글의 주제는 상대가 원하지 않은 선물을 과도하게 주는 행위에 대한 고찰이다. 받은 것들에 대해 항상 감사만 할 수 없는 상황을 되돌아봤다. 준만큼 상대에게 원하는 반응을 요구하지 말고, 원하지 않은 것을 억지로 주지 말자는 취지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 남매 사이, 연애 중에 실제 일어난 사건을 들춰냈는데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심지어 브런치 북으로 발간하기 직전까지 이 글을 빼고 싶었다. 


독자들이 제목을 보고 들어왔듯이 내용의 다른 에피소드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에 뜨거운 입장이 펼쳐졌다. 이런 반응이 신기했지만 상처 주는 말들도 많았다. 글 하나로 순식간에 며느리들의 옹호를 받기도 했고, 동시에 무례하고 감사를 모르는 싸가지없는 요즘 애들로 많은 어머니들에게 찍혔다.



보기 싫은 댓글에 관하여

브런치는 조회수가 천 단위로 넘어갈 때마다 알람이 뜬다. '1,000을 돌파하였습니다'로 시작하다가 '5,000이 돌파하였습니다' 그 이후로도 브런치는 만 명 십만 명 이십만 명이 봤다며 실시간으로 내 주의를 끄는 데 성공했다. 이틀 동안이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었고, 불시에 등장하는 댓글로 정신이 피폐해졌다. 


알람은 껐지만 신경은 온통 내 글을 비난하는 몇몇 소수의 사람들에게 향했다. 이런 지속적인 피드백은 고민할 시간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감정에 도달했다. 좋은 반응에는 한없이 행복해하면서도 안 좋은 댓글에는 울화가 치밀었다. 이렇게 며칠은 감정의 극단을 왔다 갔다 했다. 쏟아지는 입장을 일일이 읽고 있자니 그게 맹목적 비난인지 건전한 비판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댓글 읽기를 그만뒀다.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


애초에 필명으로 글을 남기는 일도 되도록 현실의 나와 분리하면서 솔직하게 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결국은 나 자신은 한 사람이라는 사실만 뼈저리게 깨달았다. 글 하나의 피드백에도 개복치처럼 구는 나 자신이 정말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2주 동안은 아무 글도 쓰지 않았다.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에서는 인간의 뇌는 애초에 수십만 명의 자극(그게 좋아요 일지라도)을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나는 심신이 미약한 게 아니라 인간의 뇌를 가졌을 뿐이다. 



앞으로의 글쓰기와 다가올 비판

글쓰기 동료들은 1. 차단 2. 댓글창 접기 3. 무신경 등으로 비난을 원천 차단하는 방법을 추천했다. 나는 3. 무신경을 택했다. 마음이 단단해지면 언젠가는 댓글창을 읽고 싶어 질까 봐 닫지 않았다. 2주 정도 지나서야 댓글을 나눠서 전부 읽을 수 있었다. 


악플에 관해 격한 반응을 선사해준 글쓰기 동료들


다시 글을 쓰려고 돌아왔다. 이번 사태?로 글쓰기에 조금 더 책임감을 가지게 됐다. 누구에게 상처를 주려고 쓴 글은 아니지만 상처를 받았다면 사과하고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글에 대한 주장이 변한 건 아니다. 다만 글의 주제를 오해하지 않게 선명하게 써야겠다. 이왕 욕할 거면 글의 요지는 제대로 파악하고 욕했으면 하는 마음.


앞으로의 비판도 기대된다. 그때는 비판과 비난을 구별해서 받아들일 만한 것은 수용하고 싶다. 내 현실은 주로 조용하고 내 글에 관심 없는 게 다수다. 물론 나를 들키기 싫어서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두려움도 있다. 그러나 알린 사람에게 받는 무관심이란..? 


맹목적 비난보다는 무조건적인 지지가 낫다. 지속적인 비난은 한순간 열정을 불타게 할 수는 있지만 금방 사그라들고, 적응해서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지지는 내가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할지언정 지속 가능하게 한다. 두 달 전부터 아침 6시에 운동하고 쓴 글도 10명 정도의 좋아요 반응이 있지만 이들이 내 제목만 읽어주고 좋아요를 클릭한다는 것만으로 큰 힘이 된다. 그 글을 쉬고 있을 때 멀리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그날 당장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고 싶어 졌다. 한 단명이라도 내 글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게 너무 소중하고 간절해지기까지 했었다. 50만 명이라는 숫자보다 친구의 말 한마디가 더 글쓰기에 긍정을 부여하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50만 명이라는 숫자보다 진심 어린 피드백이 아니었을까. 그 피드백 중에 50만 명을 마주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그리 심각해질 필요는 없던 일 같다. 


*

올해 기억남을 만한 사건을 이렇게 기록해둔다. 

2020. 11. 29.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의 모든 멘토는 사라져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