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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an 05. 2021

우리만 읽는 이야기일 지라도

2020 비학술적 학술제 기고

〈신 인류의 우정〉 지난 1년여의 기간 동안, 우리는 비대면 글쓰기를 통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방정식의 우정을 쌓았습니다. 이 우정은 멀지만 가까운, 안전하면서도 위험한, 모든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신 인류의 우정’입니다. 새로운 실험에 참여한 8명의 소회를 가장 마기슬다운 방식인 글쓰기로 풀어냅니다. 


*비학술적학술제 사이트에는 더 많은 글들이 있습니다

https://www.forumnotforum.net/


마감의기쁨과슬픔은 40주간 이탈자 없이 매주 600자의 글을 공유했다. 마감일만 정해지면 된다는 간단한 첫 시작을 발판으로 다양한 세부 규칙을 만들어냈다. 처음엔 지속하는 일에 중점을 두고 '뭐라도 쓴다'는 의지에 초점을 맞췄다. 어설프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마감은 지켜졌다. 그렇게 우리는 쓰고 싶은 글만 쓴다. 자신의 소비 행태, 아주 사적인 상담, 평소 과하게 예민한 시선, 비참한 처지, 도전하고 있는 사소한 일까지. 각자의 솔직한 글을 읽을 때면 매번 자극이 된다. 온라인에서 익명으로 모였기에 가벼울 수 있는 모임이 어떻게 지속할 수 있었을까.


Q1. 어떻게 '마감의 기쁨과 슬픔에' 참여하게 되었나.

1년 전 그동안 쌓아둔 글이 아깝게 느껴졌다. 글을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싶고, 글쓰기라는 취미를 발전시키고 싶었다. 그 당시 퇴사 욕구가 치솟았던 그 시기에 ‘공채형 인간’을 읽었다. 인스타그램에서 저자인 사과집을 팔로우하고 있다가 모집 글을 보고 급하게 신청했다. 


Q2. 모임을 좋아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편인가.

어떤 모임을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한 적이 없다. 그 흔한 스터디도 싫어했는데 그 이유는 모르는 사람들과 벌금 때문에 묶여있다는 압박이 스트레스였다. 혼자서도 뭐든지 잘하는 타입은 아니었지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사교적인 성격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었는데, 그 적당한 선이 늘 어려웠다.


Q3.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에 대한 경험은?

두 달간 평일에 한번 5명으로 시작한 모임이 있다. 그러나 혼자 글을 쓰면 되는 일에 이동시간, 교통비, 커피 값의 비용이 과도하게 느껴졌다. 얼굴을 맞대며 피드백하는 일도 편하지 않았다.  멤버 중 한 명인 목사님에게 비판적인 피드백을 하기 어려웠다. 피드백 또한 그 자리에서 즉시 읽고 해야 했는데 할 말이 없을 때에 곤혹스러웠다. 누가 봐도 글을 잘 쓰는 사람에 대한 평가를 비판적으로 하기 어려웠다.


Q4. 코로나 시대에 온라인을 통한 모임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전에도 우리 사회는 점점 폐쇄적이고 사생활이 중요시되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었다. 온라인을 통한 커뮤니티가 확산되는 시점에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이 그 발전을 앞당긴 것 같다. 특히 글을 쓰는 행위는 지독하게 외로운 작업이라 사실 함께 하는 일은 아니다. 단순히 글쓰기를 지속할 부수적인 방법만 찾으면 됐다. 그 방법이 마감, 독자, 반응이면 충분하다. 온라인으로도 완벽하게 이뤄낼 수는 조건들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우리만 읽는 이야기일지라도 지치지 않고 쓸 수 있다.


 Q5. 온라인에서 연결된 관계는 한계가 있진 않나.

모임에 참여하기 전에는 온라인을 통한 ‘돈독한 사이’에 관한 기대가 전혀 없었다. 

생각해보면 아주 사적인 글을 읽어주는 데 애착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서로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글을 읽는다는 건 편견 없이 다시 나를 바라봐줄 사람이 생긴다는 일이다.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자기 존재가 집중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 그 안정감 속에서야 비로소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글 쓰는 나라는 존재가 마기슬을 통해 주목받았고,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좋아해 주는 동료들이 있다. 이렇게 맺어진 관계가 오프라인보다 결코 가볍거나 약하지 않다. 


Q6. 모임을 지속하기 위한 마기슬만의 독특한 규칙이 있다면?

한 기수당 10주의 기간을 정해뒀다. 한 시즌을 끝낼 때면 1,2주간의 휴식기가 있다. 더 쉬고 싶은 사람을 위해 휴학제도도 마련했다. 휴학생들은 마감만 하지 않을 뿐 대화나 피드백에는 모두 참여할 수 있다. 대화하면서 언제든 다시 돌아오라고 독려하고, 돌아오고 싶도록 자극을 줄 수 있다. 글의 마감만큼 피드백도 중요하게 여긴다. 피드백에 참여하지 않은 멤버들에게도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Q7. 글을 쓰면서 또 다른 자아를 만났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직업이 작가, 기자, 학자가 아니더라도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글 쓰는 나'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확장되는 것을 느꼈다. 악플에 대처하는 방법, 현실에서 나를 아는 사람이 내 글을 읽을 때의 부끄러움, 수치스러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의 마음가짐 등, 글쓰기가 아니라면 겪지 못했을 경험이다.


Q8. 글쓰기 모임을 통해 무엇을 얻었나.

첫 번째, 글을 읽어주는 동료들이다. 회사와 집을 제외하고 점점 자발적으로 외로워지고 있는데, 그 헛헛함을 어느 정도 메꿔준다. 두 번째, 나에게 맞는 모임 방식을 알았다. 평소 성실하다는 칭찬에 성과는 뚜렷하지 않아 자주 민망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성실을 무기로 삼으려고 한다. 마감을 정해두며 일하는 방식으로 글쓰기 모임 말고도 삶에서 해야 하는 일에 마감을 정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산성이 늘었다.


눈에 띄는 성과들도 있다. 마기슬을 하면서 논문을 썼고, 브런치 작가에 승인됐으며, 매달 2편 이상의 기사를 보낼 곳이 생겼다. 한 시즌에는 독서에세이를 쓴 적이 있는데 덕분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기도 했다. 이런 일들을 불과 1년 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요즘은 마감 안에서 자유롭다. 진정한 자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가 아니라 선택한 일을 해내는 능력이기 때문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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