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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Aug 26. 2020

세상의 모든 멘토는 사라져라

20살 무렵이었던가. 딱 대학을 입학하고부터 갑자기 주어진 많은 시간을 감당할 수 없었어. 선택 장애가 아니라 어느 것도 선택할 줄 모르는 존재였지.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3년 내내 0교시부터 야간 자율학습으로 학교에 가둬놓고 기숙사에 돌아오면 화장실 청소까지 시키는 사립학교를 어떻게 견뎠는지 몰라. 전쟁 속에서도 살아남는 거 보면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못 견딜 게 없을까. 야간 자율학습이 미치도록 싫었지만 학원이나 과외받는 애들이 아니면 인정해주지 않았어. 이게 '자율'이야? 게다가 1등에서 20등까지는 다른 반에서 자율학습이 이뤄졌어. 소위 '들러리' 취급받은 애들이 자율 학습하는 분위기가 어땠을 것 같아? 재밌긴 되게 재밌어.


3년 내내 순위로 매겨진 내 등급과 석차 순위를 보며 늘 패배감을 느꼈어. 나의 열등감을 벗어나고 싶었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어. 그때부터 멘토가 될 만한 사람을 찾았던 것 같아. 한참 '멘토'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시절이었어. 주위의 본받을 만한 사람에게 자극받으며 나의 열등감에서 달아나려고 몸서리를 쳤어. 


첫 번째 멘토는 지도 교수. 

내가 선택한 건 아니고 학교에서 정해주더라. 다들 그래? 바꿀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러면 불이익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 돌아서 그대로 따랐어. 어찌나 순종적이던지. 어느 날 상담을 하고 점심을 같이 먹는데 그러더라.

'내가 너희 부모님이면 다시 재수를 하던지 편입을 해서 이 학교는 벗어나게 할 거다.' 그 말을 듣자 나 자신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 


다음날 지도교수님을 바꿔달라고 했어. 교수님이 그런 식으로 나를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밤새 재수가 없는 거야. 그 교수는 왜 이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건지 반항심이 생겼지. 교수와 학생은 계급이 다르다는 걸 은근히 우기는 것 같기도 하고. 그 교수의 그 제자 아니야? 제자들을 하등 하게 취급하는 교수는 다 학교에서 쫓겨나야 해.


두 번째 멘토는 대학 연구실 조교. 

대학교을 다니며 조교 하던 같은 학교 언니였는데 20살 눈에는 25살이 꽤 어른스러웠어. 언니는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편이었어. 나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시기였지만 언니를 능가할 순 없었지. 언니 책상엔 늘 성경책이 펼쳐져 있었어. 지금의 나는 교회에 성경책도 안 들고 가는 애거든. 내 첫 남자 친구는 교회 동생이야, 잘생기고 자신감 넘치는  그 애는 나만의 만찢남. 그 애에게 푹 빠졌어. 걔가 군대에 있을 때 얼마나 많은 편지를 썼는지 몰라. 역시나 내가 그 부대에서 제일 편지를 많이 썼더라고 하더라. 그런 낭만적인 시절도 있었다. 크.. 열렬히 사랑했던 그 시절이 좋아. 결국은? 너무 사랑해서 해서 헤어졌어. 못 믿겠지만 못 볼 생각에 몸에 두드러기가 날 지경이었어.  2년 내내 이러고 있느니 헤어지고 건강해지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 걔가 군대에 간지 6개월 때 이별을 통보했어.

 

헤어졌다고 교회 사람들에게 알렸어. 다들 은근 축하하는 분위기를 느꼈어. 그 기분에 확신을 주었던 말이 있었지. 내가 멘토라고 생각했던 언니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라고 하더라고. 아니 고작 21살의 첫 남자 친구를 두고 첫 단추 운운하는 게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지. 근데 그때는 어안이 벙벙했어. 배신감이 느껴졌어. 내가 누굴 믿었던 걸까. 그때 연구실 책장에서 책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언니를 쳐다보면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대로 가만히 얼어붙었어. 아무렇지 않은 척 '진짜 그렇게 생각했어요?'라고 물었는데 목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다고 하더라. 그 날 이후로 목사님도 미워했어.


잘못 끼워진 단추도 내가 입은 옷이야. 지들의 단추는 맞게 끼운 거 맞아?


남의 멘토 찾아서

대학에서 멘토 찾기를 실패했고 어느 정도 단념했는데,  사회에 나와 처음 하게 된 일이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일을 맡았어. 삶은 참 아이러니해. 내 멘토도 못 찾았는데 남의 멘토를 찾아줘야 한다니. 그래도 원하는 대로 연결만 시켜주는 일이라 편하긴 했는데 역시 멘토들이 문제더라고.


담당 업무의 취지는 창업자에게 멘토를 연결해줘서 사업에 도움이 되게 하는 일이었어. 두세 번 진행하다 보니 딱 감이 오더라. 창업자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 멘토들만 배 불리는 일이라는 걸. 도움이 되는 것도 간혹 있지. 세금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창업자들에게 세무사들, 특허는 변리사, 법률은 변호사처럼 관련 분야에 전문가를 직접 연결시켜주기도 했거든. 


그러나 뜬구름 잡는 말발로, 자신을 섭외하는 나 같은 담당자에게 잘 보이기 급급한 사람들이 허다해. 그들의 거만함에 토할 것 같았어. 멘토링 시간에 대 놓고 '매니저*에게 잘 보여야 한다. 요청하는 자료나 출석을 잘해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하더라고. 그건 우회적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이었어. '매니저님들 저 잘했죠? 다음에도 멘토로 불러주세요'라고. 


누구를 따라 한다고 그와 같아질 수 없다고. 
따라 한다고 반드시 나아지는 것도 아니잖아


왜 이렇게 누구를 따라 하고 싶어 난리일까. 그냥 나는 나로 존재하면 되는 걸. 몇 차례 마음속에 정해둔 멘토들이 있었는데 결국은 별로였어. 차라리 그냥 아는 사람쯤으로 지냈더라면 실망도 안 했을 텐데. 내가 '인간'을 믿기로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 사실 인간은 나약하고 이기적인 존재잖아. 


내가 찾던 멘토는 사람이 아니라 신이었나 봐. 그 정도의 기대는 신에게 걸어야 할 마음인 것 같아. 나를 이 구렁텅이에서 구원해 줄 전지전능한 존재. 이래서 사람들이 신을 찾나. 완벽한 것을 따르고 싶어 하잖아. 그건 사람으로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인간 멘토는 없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내가 미워했던 나의 멘토들에게 미안해지더라. 그들의 장점만 배웠으면 되는 거였어. 이렇게 생각하니 누구나 멘토가 되더라고. 요즘엔 배울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고 생각해. 글쓰기 모임 멤버 중 한 사람이 이 글을 읽고 피드백을 해주었는데 '한 사람의 완벽한 멘토보다 허술한 백명의 멘토가 낫다'라고 생각한다고 공감해줬어. 100명의 멘토를 발견하면서 살아보려고 해. 그럼 이만.


나의 최애 멘토들 list

- 모든 시민을 대신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일하는 시민단체 활동가.

- 코로나 19의 방역과 치료를 위해 밤낮으로 일하는 의료진과 공무원, 자원봉사자들,

- 멋진 북 큐레이션으로 책을 자꾸자꾸 사고 싶게 만드는 동네서점 주인,

- 나의 자랑을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친구.

- 글을 읽어주고 피드백해주는 글쓰기모임 멤버들.

- 밥 잘사주는 대학 후배.

- 시덥잖은 개그로 엄청 웃길 수 있는 내 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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