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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ul 11. 2020

관계의 기본

직장 내 기브 앤 테이크에 관하여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는 없다.

아주 작은 일일 지라도 은연중에 그런 계산적인 태도가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질 때도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상대가 날 좋아해 주길 바란다. 받은 사랑을 그만큼 돌려주기 싫을 때 그 관계는 한쪽이 괴로워진다. 어떤 관계던지 주는 만큼 받는다는 기본 전제가 있어야 한다. 기브 앤 테이크는 지독한 개인주의가 아니라 받은 만큼 줄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서로의 능력으로 단단한 관계가 맺어져야 그 사이가 깊어지는 것 같다.


전 직장에서 유난히 주려는 사람이 있었다. 일방적인 A.

그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 A는 특히 남들 앞에서 나를 챙긴다는 느낌이 강했다. 유독 먹는 것을 잘 챙겼는데 음식에 욕심 있는 사람 같았다. 어떤 행사가 끝나고 나면 꼭 남은 음식을 챙겼고 그러면서 나도 주려고 한다. 싫다고 말했는데도 A의 행동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한번 거절은 미덕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어서 두세 번 말을 해도 늘 그랬다. 나중엔 그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와서 자주 버렸다. 


아무리 호의일지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 것은 쓰레기나 다름없다. 나도 그 호의가 나에게 와서 버려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원하는 사람에게 가면 된다. 이런 일에 대해 구시렁거리면 누군가는 챙겨줘도 난리냐고 말한다. 원하지 않는 것을 주는 게 진짜 난리 아닌가? 


내가 거절을 했고 그게 받아들여졌다면 마음만이라도 감사할 수 있었지만 음식이 왔으니 그건 오히려 피곤하다. 왜 챙겨줬는지 알고 있기에 고맙지도 않다. A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혼자 음식을 주섬주섬 챙기는 게 부끄럽기 때문이다. 이 음식을 챙기는 건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울' 도 원하는 일이라는 느낌을 풍기기 위한 것이다. 원하는 걸 가지려는 노력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부끄러워도 가지고 싶으면 스스로 해내면 된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혼자 한다고 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타인은 그리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는 오히려 나에게 음식을 줌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 


이직하고 나서 B를 만났다. 확실한 기브 앤 테이크를 탑재한 사람.

그는 A보다 많이 주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직접 사 온 커피, 간식 등을 자주 나눠줬다. B가 오기 전에는 사무실에서 간식을 자주 먹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종종 이번엔 내가 사겠다고 말을 해도 절대 계산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계산할 타이밍을 찾지 말고, 그냥 사 와버릴 구실을 찾았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던 날이라 초콜릿을 사서 선물했다. 30분쯤 지났을까. 밖에 나갔다 온다던 B는 엄청 큰 케이크를 들고 왔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니 집에서 가족들과 먹으라고 말했다. 고작 5000원짜리 초콜릿인데 이 케이크는 5만 원은 넘어 보였다. 그는 받으면 꼭 잊지 않고 갚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그는 또 커피를 사 왔다. 그러면서 '어제 제가 10분 지각했잖아요. 미안해서 그래요'라고 말했다. 받은 만큼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또 와 닿았다. 지금까지 B가 사 온 간식은 일을 부탁하거나, 늦거나 일찍 퇴근할 때처럼 조금이라도 신세 질 일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직장에서 당연히 있을 만한 일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는 나보다 한참 상사인데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정중하다. B에 대한 신뢰가 점점 커졌다. 


A와 B를 통해서 두 가지를 배웠다. 첫째로,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실수를 하거나, 부탁을 할 때에  '이 정도는 당연히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은 내가 아니라 타인이 해줘야 한다. 타인이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관계가 뒷받침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B처럼 받은 것에 응당한 고마움을 전해온 사람만 가능하다. 상사라서, 부모라서, 친구라서, 연인이라서 당연해야 하는 일은 없다.


두 번째로, 주는 것은 능력이 된다는 사실이다. B는 자신이 받은 것 이상으로 줬다. 그와 가까이 있으면 손해가 아니라 더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내가 더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를 높이 평가하게 된다. 그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은 것에 대한 보답이었지만 B의 행동처럼 만족스러운 보답은 거기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A가 주는 행위는 능력이 되지 못하는데 그건 강요이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하지 않은 일은 주는 자체가 피해일 수 있다. 


그동안 나는 겨우 기브 앤 테이크였고, 그마저도 잘 실천하지 못했다.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했던 것 같다. 주니까 당연히 받았고, 내 운명인 양 소극적으로 행동한 적이 많다. 그러나 B와 오래 일하면서 나도 더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더 줄 수 있는 행위는 내 능력이 발휘되는 찬란한 순간이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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