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1
등 장 인 물
남자1. 1년 전 들이대던 나이 40먹은 사람. 나이와 얼굴이 매치가 되는 외모와 차림새. 요즘 보기 드문 남자긴 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식으로 들이댔으니까. 그러나 순진함과 스토커는 한발 차이. 좋게 좋게 거절을 몇 번이나 했다.
'똑'
희미하게 들렸다. 누군가 사무실 입구에서 노크하는 소리. 보통 한 번의 노크는 택배 기사님의 알림이었다. 중요한 물건은 올 게 없었다. 나중에 확인하려고 그대로 앉아하던 일을 계속했다. 그러다 3분 정도가 지났을까. 아까와 같은 무게의 소리로 '똑 똑 똑'하는 소리가 들렸다. 민원인인가 보다. 근데 왜 들어오지 않지? 재빠르게 구두로 갈아 신고 마스크를 썼다.
어, 많이 보던 얼굴. 1년 전 그 새끼다. 그 새끼가 이제 사무실로 직접 찾아온 것이다. 아는 척을 해야 해 말아야 해 어지럽다가 그냥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주소를 잘못 변경해서 여기로 우편물이 오는 것 같습니다. 제가 주소를 잘못 적었거든요. 여기 호수로요'
'제가 담당하는데, 다른 사람 우편물은 온 적이 없네요'
'아 그래요? 제가 여기 406호로 주소를 적어놓았는데... 우편물이 왔을 텐데..'
'아무것도 온 게 없어요.'
나보다 더 이 건물에서 오래 직장생활을 해놓고, 우편물을 왜 뜬금없이 우리 사무실로 주소를 변경하는지 말이 안 된다. 대답했는데도 자꾸 돌아가지 않고 같은 말을 늘어놓길래 용건이 따로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럴 거면 밖으로 날 불러야지 왜 회사 안에서 난리야. 아니 밖이면 내가 안나 갔겠지.
몇 분을 대화만 하고 있으니까 다른 직원들도 하나둘 이쪽으로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 새끼는 또 같은 말을 반복하고, 직원들로부터 나와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 여러 명의 시선이 따가웠는지 금방 자기 사무실로 다시 돌아갔다.
저 미친놈은 왜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우편물이 잘못 오면 사무실에서 반송하지 그걸 가지고 오겠냐? 아 이렇게 논리적으로 생각해봤자다. 쟤는 논리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부류다. 내 옆의 직장동료가 누구냐고 묻길래 같은 층에 근무하는 직원 같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아울 씨한테 관심 있는 거 아니야? 괜히 헛소리한 거 같은데?'라고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럴 때마다 뒤통수가 따갑고 무서워진다. 언젠가 더 가까이에 올 것 같다.
갑자기 차단한 저 새끼의 프로필을 찾아본다. 어쭈. 여자 친구 생겼으면서 이런 행동을 하네. 재밌는 애네. 갑자기 카톡이 왔다. 아.. 내가 차단이 아니라 숨김을 했구나. 왜 그랬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또 이런 진부한 방식인가 하다가. 갑자기 몇 개의 메시지가 더 오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결혼 소식. 아 이거였구나. 답장은 안 했다. 이수정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얼마 전에 방송에서 사이코패스한테 한번 답을 해주면 자기한테 반응을 해주는 게 재밌어서 더 문제를 벌인다고 했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사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이제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1년 전 저 새끼에 대해서 분명 친구 H에게 말했을 것이다. 역시 기억하고 있었다. 카톡 내용을 보여주고 우리는 한참을 낄낄댔다. '개 xx은 꼭 지가 개 xx인 걸 티를 내냐'라고 조롱하는 그 애의 걸걸한 말투가 쾌감을 일으킨다. 나는 왜 나한테 이상한 사람이 자주 꼬이냐고 의미 없는 질문을 했다. 거기엔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물론 있다. 걔를 우스워하다가 반성하고 있는 내 마음을 알아채고 한마디 더 한다.
'역시 우리 아울. 이상한 사람인 거 파악할 줄 아네'
'그렇지? 나는 선택하지 않았잖아. 그때에도! '
판단력만 늘어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