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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Apr 15. 2022

대낮에 들리는 이상한 소리를 찾아서

게으름의 끝

나는 가끔 희한할 정도로 게을러진다. 게으르면 멍청해지는 기분이 드는데 한 번씩 게으름 구덩이에 빠지면 또 겸손해지기도 한다. 만약에 내가 이것도 잘되고 저것도 잘 해내면 무시무시하게 오만방자했을 것 같다. 요즘 게을러 빠진 게 오래된 걸 보니 한동안 겸손한 태도로 지낼 듯하다.


낮이 되면 창가에서 '쉬익' 인지 '끼익'하는 소리 들린다.


20층 꼭대기에 살기 때문에 간혹 아기 울음 소리나 의자 끄는 소리가 들리면 전부 옆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오후만 되면 들리는 저 신경질적인 소리는 사람들의 움직이는 소리가 아니었다. 옥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기라도 하나? 뭐가 고장이 나서 삐걱대나 하는 추측은 수 만 번 했다. 벌써 거의 6개월째 지속되고 있으니까. 관리실이 불친절해서 전화해봤자 소용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이건 착각이었고, 관리실 직원분들 다 좋으심) 옆집은 혼자 사는 할머니가 계셨다. 

여기서 도대체 무슨소리가 들리는거냐고

핑계를 이어가자면 나는 주로 낮에 없다. 그러니까 나는 어쩌다 한번 주말에 하루쯤을 낮에 보내게 되는데 그때마다 소리가 들리면, 방에 문을 닫고 들어가 있었다. 겨울엔 또 부엌이나 거실보다 방에서 지냈다. 어쩌다 소리가 들리면 '또 시작됐네' 하고 말았고, 주로 주말에 소리가 들리면 다른 사람들도 주말에는 쉬어야겠지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평일에 쉴 때는 내가 쉬고 싶었다.


같이 사는 동생은 별로 의식하지 않았다. 나보다 더 집에 많이 있는데도 신기할 정도로 불평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동생은 나보다 청각, 후각이 덜 예민하다. 음식이 쉰 정도는 꼭 나에게 확인해달라고 말했고, 내가 옆에서 라디오를 크게 듣건 말건 책도 잘 읽고 공부도 잘했었다. 어디서나 집중을 잘했다. 아마 저 정도의 소음은 무시될 수준이었나 보다. 


그리고 아파트 탓이라고도 돌렸다. '25년 된 아파트라 그런지 별일이 다 있다. 구축 아파트에서는 이런 일도 저런 일도 나타나는 법이기에 감수해야 한다'라고 여겼다. 사실 이 아파트는 내 영혼을 끌어모아 산 것이라 구축이라고 해서 절대로 싸지 않다. 하지만 은연중에 신축 아파트랑 비교해서 하찮게 대하고 있던 것이다. 이제 와서야 집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소리의 원인을 찾아줄게.  


이런저런 이유로 잘도 미뤄오다가, 온전히 혼자서 24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된 건 처음이었다. 대청소를 마치고 거실과 부엌에서 따뜻한 햇살을 쬐었다. 간혹 창밖에 들리는 새소리 나, 자동차의 경적소리 모두 편안한 기분을 줬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잊고 있던 그 소리가 들린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문을 닫고 방구석에만 있자고 이 집을 산 것도 아니지 않나. 낮에는 주로 집에 있지 않다고 해서 이상한 소음이 들리게 놔둔다는 것은 방관 그 자체다. 


네이버는 모든 걸 알고 있지 않을까. 실제로 지식인에 나와 똑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리도 비슷했다. 인터넷이 없었으면 이 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해결했을지 감도 안 온다. 주로 가스 배관의 문제였다. 소리가 들리는 쪽도 가스 배관이 있는 부엌 쪽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해결될 것 같아 허탈하기도 했다. 도시가스에 전화를 하고 3일 만에 방문해주셨다. 그러나 해결은 못했다. 가스가 샌다면 독한 냄새가 심했을 것이고, 가스는 기체라서 이동할 때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가스 문제가 아니라면 또 뭘까.


나는 녹음해둔 소리를 다시 들어보면서 생각해봤다. 소리의 크기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녹음할 때에 창가에서 가스배관, 주방 후드 후드 방향으로 이동했었다. 후드에 가까워질 때 소리가 확연히 커지는 것 같았다. 아마 후드에서 벽으로 연결된 통로에서 나는 소리일까? 곧 밤이 되었고 우리 집은 조용했다. 소리가 들리면 관리실에 방문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내일 재택근무를 신청했다. 나는 소리를 기다렸다. 오후가 되고, 오후가 지났다. 안 들렸다. 이 이야기를 정말로 끝내고 싶다. 아아. 게으름의 폐해가 지독하다. 


하다 하다 안되면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하고 싶다. 요즘 별거 아닌 사건들도 많이 소개되던데, 나도 해결해주지 않을까? 따지고 보면 내 입장에서는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다. 내 세상은 집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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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진행 상황

노후된 옥상 환풍구 소리였음. 현재 수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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