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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Apr 12. 2022

사라질 공간에도 남아있는 이야기

헌책방에서 만난 사람

친척들이 모이면 옛날이야기로 하루를 거뜬히 샌다. 어른들이 미래보다 과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던 것 같다. 그들 서로도 '그 말을 3번 들었다, 5번 들었다'며 지겨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패턴은 모일 때마다 쉽게 반복된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건 좋은데 '요즘 애들은'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얼른 피할 준비도 갖춰야 한다. 그전까지는 어른들의 강렬한 기억에 분명 흡입력이 있다.

아빠를 비롯한 형제들은 광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5.18 민주화 운동, 4.19 혁명을 겪었다. 광주의 어떤 공원에서 아빠의 친구 동상이 세워진 것도 그 시절에 떠난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고모들의 손을 잡고 피난을 떠났었고, 셋째 고모는 사실 피난 때 가족을 잃은 고아였는데 할아버지가 데려와서 우리 가족으로 지내게 된 것이었다. 오늘 헌책방에서 일어난 일이 격정적인 역사적 사건은 아니었지만 은은하게 오래 간직할 것 같다. 그때 헌책방에서 나에게 카뮈를 주입시킨 아저씨 때문에 내가 이러쿵저러쿵. 이 헌책방 방문한 건 어떤 끝이 아니라 이제 막 움트기 시작했다.


요즘은 카뮈에 빠졌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로 페스트가 재조명받긴 했지만 그 때문은 아니고 '부조리'라는 의미에 꽂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뮈를 알게 됐다. 작가의 철학이 나랑 비슷하다고 느껴지면 그들의 작품을 보는 것보다 생애가 먼저 궁금해진다. 학력, 경제적 조건, 가족관계, 열등감, 병명 등을 파헤치며 적당히 덕질을 하고 나서도 좋다면 그때부터 글을 읽곤 한다. 카뮈 통과. 그의 작품은 왠지 헌책방에서 만나고 싶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 사람이 지나다니기도 벅찬 통로가 보였다. 약 5만 권의 책이 있는 책 사이에서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갔다. 공간은 협소한데 온 몸을 역동적으로 움직여야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스스로 이곳에서 카뮈 책을 찾는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어리바리한 나를 본 또 다른 손님은 찾는 책 있으면 사장님께 물어보라고 하셨다. 이방인을 찾고 있다고 말하니 카뮈의 책을 본 기억이 있다며 내가 있는 쪽으로 왔다. 이쪽으로 오면 내가 계속 물러나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한 방향으로 걸었다. 결국엔 이 지점에서 책을 찾지 못했다. 수 만권 중에 이방인이 없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미심쩍은 마음이 들었지만 30분을 혼자 더 헤매고 나서 주인 할아버지의 기억을 존중했다.


다른 손님은 카뮈를 찾는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딸 뻘 되는 나를 기특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분은 시지프 신화를 찾아줬다. 연이어 오래된 미래도 주셨는데 그건 이미 읽었다. 다음으로 그리스인 조르바를 건넸고 격찬을 하셔서 사겠다고 말했다.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아저씨는 카뮈의 전집이 집에 있을 만큼 카뮈를 좋아한다고 하셨다. 이제 막 카뮈에 대해서 알아가고 있다고 했고, 그 이후로 10분 정도 프랑스 문학에 대해 강의 비슷한 설명을 들었다. 카뮈의 스승인 장 그르니에를 소개받고 카뮈를 공부한 김아영 번역가를 추천받았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하는 예술가들

 자신의 책은 진작 골랐고, 나에게  말을   아저씨가 유유히 책방을 떠났다. 아저씨가 나가니까 아저씨에 대해 궁금해졌다. 책방 주인 할아버지께 저분을 아시는지 물어봤다. "동네 놈팡이같이 보여도 사학자이고  방송국에서 여행 다큐를 진행하고 있다"라고 알려주셨다 아저씨의 집에는 사장님보다  많은 책이 있다고도 하던데 언젠가 내가  집에 초대받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도 빠졌다. 다시 만나서 카뮈에 대해 이야기할 날이   같다.


...

며칠이 지난 후 본격 구글링 한 결과 

신정일 선생님. 현재까지 약 110권의 책을 쓰신 사학자였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네이버 검색 결과

https://www.khan.co.kr/article/2010062818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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