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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Sep 14. 2023

일요 도공

취미로 도자기를 만든다는 것

미술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일요화가라는 말이 있었다. 검색해 보니 '아마추어 화가의 별칭'이라고 나온다. 본업을 제외한 여가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일요일 밖에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사람들을 일요화가라고 부른다. 앙리 루소는 세관으로 근무하면서 그림을 그렸고 처칠도 일요화가였다. 훗날에는 본업인 화가로 잘 알려진 고갱은 일요화가에서 찐 화가로 명성을 휘날렸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본업보다 흙 만지는 일을 좋아하기에 약간 불편한 마음도 있다. 본업에서 크게 성장할 것 같지 않기에 무기력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열정을 도자기에 쏟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 노력이면 충분한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왜 실력이 크게 늘지 않을까? 이 정도 할 거면 도자기 한다고 말해도 될까? 하는 취미 주제에 자기검열에 빠진다.


나는 회사원으로 누리는 만족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쉽사리 퇴사할 생각이 없다. 소속감이 주는 안정감이 분명하고. 남들 보기에 그럴싸한 직장 이름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편하다. 일 자체가 스트레스 주거나,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다만 그놈의 성장이 문제다. 여기서 이것만 하고 있으면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걸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회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기 때문에 취미 하면서 허기를 채운다. 요즘 자기 계발 분야에서는 워라밸은 개나 주라면서 하나에 몰입하기도 시간이 없으니 에너지를 한데 모으라고 한다. 나는 취미가 워라밸 추구하기 위해 여유롭고 쉬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하는 방법이 이게 최선인 것 같다.


남들이 뭐라든 회사의 허기를 취미로 채우고 있다. 직장이 주는 월급을 받아서 흙값에 보태며 일요화가처럼 시간 날 때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항상 더 잘하고 싶다. 상상력을 발휘하고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고, 직접 만들어서 선물하고 사용하는 것이 생각했을 때 보다 더 기쁘다.


올해 초에 처음 타로점을 보았다. 뽑은 카드 중 기억 남는 게 하나 있다. 여왕 같은 화려한 여자가 돈, 술, 꽃과 같이 모든 걸 움켜쥐고 있었다. 해석하기를 하고 싶은 게 많고 그걸 하나도 놓기 싫어한다고 했다. 타로 언니는 '다 해도 될 것 같다'라며 기분 좋은 결론을 내렸다. 나는 늘 뭔가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인생이 뭔가 잘못 굴러가나 두려워했었기에 이 말을 전적으로 믿어버렸으면 좋겠다. 인생이 잘 굴러가고 있나 보다 하고.


한때 정의로운 NGO 활동가가 될 것 같았고, 더 어렸을 적에는 승무원을 꿈꿨다. 회사원이 되고 나서는 투자로 부자가 되는 것만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셋 다 앞으로도 될 것 같진 않다. 따지고 보면 승무원이든 NGO 활동 가든, 부자든 그 자체가 내가 원하는 삶이 될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뭘 할 거냐가 더 근본적인 욕심에 가깝다.


내 욕심은 미래에 있지 않다.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면 상상하기도 힘들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편이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 좋은 하루를 맞이하고, 하루 끝에 수고했다는 기분을 가지면 멋있는 인생 같다.


그런 하루를 보내려면 지금 당장은 없으면 안 될 것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에 도자기는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최근 배운 새로운 단어 중에 '일요화가'가 참 마음에 든다. 괜히 왠지 저 멀리 과거에서 온 화가들이 나를 응원해 주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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