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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울 Jun 20. 2020

봉사활동 하지 않고 받은 봉사점수

중학교 2학년 때, 장애인 학생들과 함께하는 캠프에 참여했다. 여름방학에 이 캠프에 참여하면 봉사활동 점수를 얻을 수 있다는 고급 정보를 들었다. 2박 3일간의 수련회인데 장애인 학생들과 함께 놀면서 점수도 얻으니 일석이조라며 재빠르게 신청했다. 푸른 마을이라고 불리는 그곳은 생각보다 멀었다. 40인승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새로 산 모자 자랑도 끝내고, 가져온 과자들을 다 해치우고 나서도 한참을 잤다. 덜컹거리는 움직임 때문에 눈을 떴는데 창 밖을 보니 깊은 산 자락의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외딴곳이어야 하는지 피곤했다.


버스에서 내리고 푸른 잔디밭과 1층짜리 건물 세 채가 보였다. 우리는 정면에 보이는 강당으로 향했다. 먼저 온 우리 또래 학생들이 모여있었다. 휠체어와 목발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그 외 다른 사람들도 여럿 있었지만 누가 장애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알아차릴 일도 아닌데, 그때는 그들과 나를 규정짓기 바빴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같은 조가 되어서 서로 섞이고 나서는 전혀 판단하기 힘들었다. 조원을 빼고 캠프가 끝나기까지 대화를 나누지 못한 사람들은 끝까지 몰랐다. 나도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은 장애를 가진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는 1조에 속했다. 같이 온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 순간 어색함을 너머 굳어버렸다. 낯선 사람 때문이라면 이 정도로 얼어붙진 않았을 것이다. 14살 때까지 장애를 가진 사람을 뉴스나 다큐멘터리 말고는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마저도 우주, 외계인, UFO보다 덜 봤으니 외계인을 마주쳤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다. 화면으로만 만났던 장애인들에 대해 얼마나 낯선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지 내 몸이 반응했다. 자연스럽게 보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했고, 그 미안함에 주눅 들었다.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것은 내 짝꿍 다영이었다. 


다영이는 잘 웃고 상냥했다. 조원들끼리 자기소개를 할 때, 다들 머뭇거리자 자기가 먼저 말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어쩐지 말투가 이상하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온 걸까 싶었는데, 듣고 보니 청각 장애인이라고 한다. 후천적이라서 다행히 이 정도의 말을 구사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게 다행인가. 10살 때 교통사고로 청력을 잃었는데, 그래도 소리가 희미하게 들린다고 한다.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 정도의 소리와 상대방의 표정과 몸짓, 입모양을 통해서 알아듣는다고 하였다. 


짝꿍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다영이가 나에게 몰입하고 있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 정도 집중이라면 텔레파시라도 통할 것 같았다. 실제로 궁금해져서 텔레파시 게임도 했다. 맞이 맞추진 못했지만 비슷했다고 치부하곤 했다. 다영이는 이해하지 못한 말은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다가 그것마저 어려워지면 수첩을 꺼내고 펜을 건넸다. 그 수첩이 집에 수십 권은 있는데 매일 밤 다시 들춰본다고 말했다. 나는 영어단어 10개도 외우기 귀찮은데 이 일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하는 다영이의 삶이 어떨까. 


어떤 때에는 다영이의 듣지 못하는 귀를 부러워하기도 했다. 기독교 재단이 운영하는 그 시설에서는 예배시간이 있었는데 특히 제일 싫어하는 순서는 통성기도이다. 목사님이 '합심하여 기도하자'라고 말했지만 남의 기도 소리를 듣자니 집중이 안된다. 그 시간에는 줄곳 귀를 막고 고개를 무릎 사이로 웅크렸다.  그래도 집중이 안되면 눈을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다영이를 봤다. 고요하게 미동 없는 그 애의 표정이 잔잔한 호수 같았다. 여기에서 가장 신과 가까이 만나고 있지 않을까. 기도가 끝나고 너무 시끄러웠다며 이럴 때는 나도 듣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다영이는 웃으면서 나도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면 '일부러 알아듣지 못한 척도 한다'라고 말했다. 어쩌면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사실 그 사람이 듣고 싶지 않은 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알아듣기를 포기해버린 거니까.


캠프가 끝나고 봉사활동 점수를 확인했다. 봉사에 관한 활동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린 것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점수가 도통 내 것 같지가 않아 어떤 이력에도 적어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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