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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아빠의 농막생활

시골라이프

by 김아울

엄마가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고기를 구워주겠다고 했다. 가던 정육점이 닫아 고기는 나보고 사 오라고 했다.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을 먹어야 했다. 그러려면 남편과 나는 늦은 밤이나 다음날 새벽에 다시 돌아와야 한다. 조금 피곤할 것 같아 평소 같았으면 거절했겠지만 오늘만큼은 너무 가고 싶어졌다. 내 생일이었으니까


아빠와 나


내가 20년 동안 살았던 고향은 언제 가도 편안하다. 특히 시골이라 그런 것 같다. 나이가 먹을수록 시골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오늘은 농막으로 향했다. 본가를 지나 산 밑 어귀에 아빠가 일하다 쉬어가는 컨테이너. 나는 평상에 앉아 은행나무를 내려다보며 시간 보내고 책 읽는 걸 즐겼다. 어느새 노을이 지면 밥을 먹다가, 내려가기 귀찮으면 여기서 잠을 청한다.


하나 둘 짐이 늘어나더니 웬만한 구색을 갖춰지기 시작했다. 에어컨, 냉장고, 보일러, 평상과 스피커까지 있다 보니 여름마다 우리의 휴양지가 됐었다. 종종 이웃들의 카페가 되고, 외지인들의 숙소가 되기도 한다. 선풍기 두대는 너무 오래되어서 버튼이 안 눌렸다. 스탠드형은 돌아가지도 않았는데, 아빠가 젓가락으로 날개를 툭 쳐내리자 시동이 걸린 것처럼 다시 돌아갔다. 그 모습이 보고 역시 기계도 처음 시작이 어려운 거라며 깔깔거렸다.


하얗게 핀 목수국

도착했을 때 아빠는 방금 막 페인트칠을 마치고 난 후였다. 거의 10년 만에 칠한 거라 이 정도면 리모델링 수준이었다. 엄마는 오자마자 기쁘게 알아차렸다. 농막 주변에 핀 목수국이 과하게 화려했다. 한 달 전에 본 보랏빛의 수국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청개구리는 어찌나 귀여운지. 괴롭히고 싶었지만 너무 가냘프기에 다칠까 봐 바라보기만 했다.


아빠는 칡으로 둘러 쌓인 이 넓은 산을 정리하는데 3개월이나 걸렸다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하셨다. 여름내 일하느라 몸무게가 3킬로나 빠졌다고 했다. 가을엔 다시 늘어나겠지. 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시간 동안 항상 같은 몸무게로 유지하셨다.


아빠의 일과를 들었다. 오전에 일하고, 점심을 먹고 좋아하는 시사 유튜브를 들으며 평상에 낮잠을 자다가 5시에 다시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퇴근할 때쯤 돌아와 저녁을 먹고 골프 연습을 하다가 9시에 주무신다고 했다. 진심으로 부러웠다. 은퇴 후의 가장 이상적인 삶이 아닐까 싶었다. 저녁때가 되면 이웃이자 친구 분들의 전화가 온다. 오늘도 그 집에 가서 백숙을 먹을 뻔했지만, 너무 늦어질까 오붓하게 가족끼리만 먹자고 했다.


얼마 전 보내준 노을, 농막에서 내려다보이는 하늘

비가 많이 내려서 노을을 보진 못했다. 다만 번개가 많이 쳐서 무섭기도 했는데, 산 어귀에 송전탑이 있어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송전탑이 무너지진 않을까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 막 딴 깻잎 향이 코끝을 찔렀다. 거의 향신료 수준으로 강해서 내가 마트에서 사 온 깻잎은 그냥 식감만 존재하는 채소 수준이었다. 식사량이 많지 않아 밥까지 겨우 볶아 먹었다. 남편이 출장 갔다 사온 그 나라의 전통주가 있었는데, 아빠는 아껴 먹겠다며 소주를 깠다. 엄마의 표정이 못마땅하다. 이제 사위들에게 술을 사 오지 말라는 지령을 내리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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