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하려고 벼르는 사람들

연예인 학폭을 보며

by 김아울

나에게도 작은 복수심이 있다. 연예인들이 학폭 논란이 갑자기 보일 때면 늘 생각나는 어린 시절 이야기다. 시골의 아주 작은 동네에서 자란 나는 6학년 내내, 그리고 중학교까지 거의 모든 친구들과 같은 반을 지내왔다. 난 반 아이들의 글씨체를 모두 알고 있었다. 그중 도둑질을 빈번하게 일으키는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언제부터 시작일지 모르는 하여튼 도둑질이란 게 뭔지도 모르는 시골 꼬맹이들에게 그 짓은 참 여럿을 울게 했다.


그 친구는 다른 학부모님들에게까지 범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물증은 없지만 본 사람도 있고, 나처럼 느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애는 아무에게도 크나큰 질타를 받은 적 없는 것 같다. 적어도 우리 부모님은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 그냥 넘어가자'는 식으로 내 주머니 단속만 철저히 하셨다.


급식비 걷는 날만 되면 체육시간이 무서워졌다. 그 시간은 우리 반 몇몇은 무조건 털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자물쇠를 걸어야겠다고 어느 날부터인가 사물함을 잠갔지만, 그것마저 부서져 있었다. 그렇게 우리 반 전체는 몇 년간 돈과 물건이 사라지는 경험을 하며, 또 같이 놀았다. 난 그 애에게 잘해주면 내가 당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처음 그 친구의 도둑질을 경험했을 때는 아직도 생생하다. 책상에 팔꿈치를 대고 다른 친구들과 모여있을 때였다. 내 주머니에 뭔가가 쓱 들어왔다. 급식비가 있는 주머니였다. 몸이 얼어붙고 이렇게 훔쳐 가는가 보다 하고 말았다. 그 애의 목표물이 되서 서글퍼졌다. 그렇게 또 범인을 알면서 넘어갔다. 부모님은 날 혼내지도, 그 애를 찾아가지도, 학교에서 혼난 장면을 본 적도 없다. 그 애는 가난을 무기로 얼마나 많은 용서를 받아왔는지 모른다.


며칠 후 내 생일 파티가 있었다. 엄마는 그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오는 것에 대해 걱정했지만, 요즘은 잠잠하다고 안심시켰다. 친구를 차별해서 '너랑 너랑 너만 와!' 라는 것도 납득이 안됐다. 무사히 파티가 끝났고, 나의 하얀색 토끼 저금통이 사라졌다는 걸 알았다. 다음날 친구들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그러자 오후쯤 친구 한 명이 내 저금통을 봤다며 안내한 곳이 충격적이었다. 학교 건물 밖에는 안 쓰는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데, 아무도 가지 않고 방치된 곳이었다. 그곳에 내 하얀 토끼가 있다는 것이다.


냄새나고 무서운 그곳에 가기도 싫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 두 눈으로 꼭 확인하고 싶어서 친구 여럿과 함께 갔다. 첫 번째 칸 변기 내부를 보라고 했다. 어둡고 잘 보이지도 않은 깜깜한 저 구덩이 아래 하얀 토끼가 등이 찢어진 채 한가운데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찢어진 등 사이로 수북한 동전이 보이고, 위로 쌓아져있던 지폐들은 보이지 않았다. 몇몇은 꺼내자고 했지만 깊이가 우리 키의 세배쯤은 되보였다. 포기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9년 동안 친구들 모두 그 애를 도둑년 취급하며 비난하거나, 따돌리지도 않았다. 그냥 같이 놀았다. 엄마는 여전히 소풍날만 되면 김밥 못 싸오는 아이들을 위해 몇 줄을 더 싸주셨다. 그 친구는 내 김밥을 먹게 되기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 후 완전히 연락이 끊겼다. 시내에서 우연히 마주쳤을때, 나를 반가워하며 인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때는 머리가 커서 이제야 그 애에게 대항할 힘이 생겼나보다.


연예인의 학폭 기사가 나올 때, 그 애가 스타가 됐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봤다. DM으로 어릴적 도둑질을 사과받고 싶어서 연락할 것 같다. 그러다 배짱 두둑하게 나오면 폭로할지도 모르지. 나락을 가건 말건 솔직히 상관없을 것 같다. 다행인지 예쁘장한 그 친구는 연예인이 되지 않았다. 어느 작은 도시에서 네일아트를 한다고 들었다. 그 친구가 사회의 일원으로 무사히 자리잡은 게 용하고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나저나 이런 응어리를 풀고 싶은데 사과하지 않으니 내려놓을 수가 없다. 더 커지지도 않고 더이상 작아지지도 않은 또렷한 기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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