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만 움직이면 정상이야

8월 14일의 꿈

by 김아울

친구와 함께 하얀 암벽을 등반했다.

암벽 같지가 않고 커다란 A4용지 단면을 오르는 것 같았다.


왼쪽에 큰 기둥이 있었다. 내려가려면 그 기둥을 잡고 안전하고 쉽게 내려갈 수 있었다.

이미 한참을 올라와서 바닥은 보이지 않고 목표지점이 코앞이었다.

손을 세 번만 움직이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내려갈 수도 없고 더 올라갈 수도 없었다.

몸이 무겁고 힘이 나지 않았다.

암벽은 가볍고 나를 지탱해 줄 것 같지도 않다.


친구는 먼저 등반에 성공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올라오길 간절히 바랬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러다가 친구가 자신이 손을 짚은 자리에 손을 넣어보라고 했다.

1센치도 움직일 힘이 없었는데 마지막 힘을 쥐어짜 봤다.


손을 한번 옮겼는데, 그 자리가 너무 안정적이었다.

마치 그 자국이 손 위아래로 나를 힘껏 감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번 더 손을 움직일 믿음이 생겼다.

그 자국을 따라 움직이면 반드시 성공할 것 같았다.

그렇게 결국 정상에 올랐다.


친구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나도 너무 좋아서 같이 행복했다.


그 암벽 위에는 휘황찬란한 보물이나, 멋진 풍경은 없었고

작은 방 하나가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그 공간을 함께 기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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