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전략
얼마 전 애플에서도 시리(Siri)를 탑재한 인공지능 스피커 홈팟(HomePod)을 공개하면서 인공지능 개인비서들 간의 경쟁이 4파전(Amazon, Apple, Google, Microsoft)으로 좁혀지며 스마트폰 이후 각 기업들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사실 애플의 시리(Siri)와 MS의 콜타나(Cortana)는 몇 년 전부터 OS에 탑재(built in)되어 인공지능이라 기보다 스마트 음성인식 서비스에 가까운 형태로 시작했었다. 하지만 핸드폰이나 컴퓨터에 대고 말(명령)을 하여 일을(task) 처리하는 결과의 정확성이 떨어지고, 사용자의 심리적인 거리감이 존재해 음성명령 서비스에 대한 확실한 방향성을 심어주지 못했다. 예를 들어 “시리야, 지은이한테 전화 걸어줘”라고 했을 때, 언뜻 보면 간편하고 편리해 보이지만, 통화하려는 대상이 김지은인지, 이지은인지, 그 이지은이, 고등학교 동창 이지은인지 아님 회사 동료 이지은인지 등, 여러 확인 절차(confirmation)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내가 최근 통화 목록을 통해 터치로 직접 전화를 거는 게 더 편리할 때가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아마존(Amazon)의 에코(Echo)가 인공지능 스피커 형태를 갖추어 집에서 대화하는 형식으로 자신들의 쇼핑 비즈니스와 연결시키는 시도를 하면서, 인공지능 개인비서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아마존은 프라임(AmazonPrime) 서비스를 통해 고객들이 어떤 물건을 어떤 주기로 구매하는지 데이터를 확보하고 그 데이터를 통해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내가 두 달에 한 번씩 같은 브랜드의 치약을 반복적으로 아마존 프라임에서 구매했다면, 그 치약이 다 떨어져 갈 때 즈음, 이메일이나 웹으로 ‘이거 주문할 때 되지 않었어?”라고 추천을 하고, 아마존 에코를 통해 “지난번에 구매한 치약 좀 주문해줘”라고 말해서 내가 늘 사용하는 물건을 인터넷 검색 단계 없이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게 하는 모델인 것이다. 아마존은 얼마 전 미국 내 최고 유기농 슈퍼마켓 체인인 Whole Foods (홀푸즈)까지 인수하여, 아마존 GO와 함께 인공지능 서비스를 어떻게 오프라인 매장과 기존의 온라인 시장과 연결시킬까를 고민하며 쇼핑 분야의 인공지능 서비스 전략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결국 여기서 말하는 인공지능은 데이터 의존도가 매우 높으며, 내가 데이터를 많이 주면 줄수록 내가 받는 서비스의 편리함과 질이 좋아진다는 개념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다수의 플랫폼과 서비스 사용자를 보유한 Google과 같은 회사에게 더욱 유리하다. Google은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와 구글 홈(Google Home)을 출시한 지 일 년여 밖에 안되었지만, 사실 인공지능 비서(Virtual Assistant)라는 얼굴만 내세우지 않았을 뿐 수년 전부터 사용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슬쩍슬쩍 인공지능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예를 들어 구글 맵(Google Map)에 집과 회사를 저장해 놓고 출퇴근길에 내비게이션으로 사용했다면, 아침에 차의 시동을 걸 시간쯤 되면 ‘지금 떠나면 30분 정도 걸려.’라던가 ‘사고가 나서 평소보다 10분 더 걸리겠네.’등의 정보를 알림(notification) 형태로 보내준다. 또한 비행기표를 예매할 때 Gmail을 등록 이메일 계정으로 입력했다면, 비행정보가 핸드폰 캘린더에 자동적으로 추가되어 비행정보를 찾아(tracking) 관리해주는 것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구글 홈을 사용해 음악을 틀어 달라고 하면 평소 내가 사용하는 유튜브의 데이터를 이용해 나의 취향에 근접한 음악을 들려주고 구글 검색과 통역기 등을 이용하여 정확한 정보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용자마다 느끼는 점은 다르겠지만 구글의 인공지능 서비스는 아마존 알렉사(Alexa)에 비하여 전반적인 라이프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글 역시 얼마 전 월마트(Walmart)와 파트너십을 맺어 아마존의 쇼핑형 인공지능 서비스의 독주를 견제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애플의 홈팟(HomePod)과 시리(Siri)의 전략은 어떨까? 애플은 너무나 심플하고 애플답게 인공지능 음악 서비스에 집중했다. 마치 “우리는 구글 홈과 아마존 에코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당연히 할 수 있지만, 잊었니? 우린 원래 아이튠즈(iTunes)와 아이팟(iPod), 음악 비즈니스를 선도했었잖아.”라고 말하듯 애플뮤직의 데이터를 기본으로 한 음악 서비스를 제공한다. 나의 취향에 맞는 선곡과 추천은 기본이고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이 무엇인지, 작곡가나 가수 등을 물어볼 수 있으며 음성 명령을 통한 애플 TV 조작도 가능하다. 또한 실내 음향을 측정해 오디오 레벨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센서가 장착되어 실내 공간의 가구 배치에 따라 음향 자동조절이 가능하게 하는 등 디자인부터 높게 책정된 가격까지 프리미엄 오디오 스피커라는 인식을 부각하였다. 애플 워치가 웨어러블 디바이스란 점보다 새로운 ‘명품시계’라는 오브젝트에 더 집중했던 것과 같은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한편 MS의 콜타나(Cortana)는 스피커 자체의 전략보단 전체적인 서비스에 집중을 하는 편이다. 홈,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보다 MS의 원래 주종목인 비즈니스와 기업(enterprise)을 위한 인공 지능에 초점을 맞추며, 현재 윈도즈 10(Windows)에 탑재되어있는 콜타나가 기존 오피스 제품(파워포인트, 워드, 엑셀 등)이나 스카이프 비즈니스(Skype Business) 또 인공지능 스피커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생산성의 시너지를 높일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다. 만약 내가 직장에서 ‘2017 상반기 결산’ 파일을 김 과장에게 목요일까지 보내준다고 이메일을 보냈고 아직 그 자료를 보내지 않았다면, 콜타나가 “2017 상반기 결산 파일 김 과장한테 오늘까지 보내준다고 하지 않았어? 잊지 마.” 라며 알려주고 심지어 ‘2017 상반기 결산’이라는 제목의 PPT 파일 보고서까지 첨부하라고 준비해준다. 같은 시나리오가 스피커에서도 동일하게 제공된다. 아침에 일어나 콜타나 스피커에게 미팅 스케줄을 물으면, 몇 시에 어떤 미팅 스케줄이 잡혀 있는지 알려주지만,“오늘 2017 상반기 결산 자료 파일 김 과장한테 보내주는 거 잊지 마.”라고 다시 한번 언급해 주며 개인 비서와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
Amazon, Apple, Google, Microsoft 각 회사들은 위와 같은 전략으로 인공지능 서비스를 상품화시키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확장하고 있고, 동시에 서로의 영역을 조금씩 침범하고 있다. 아마존은 에코 쇼(Echo Show)라는 화상 채팅이 가능한 인공지능 기기를 만들어 MS가 담당하던 화상 채팅 영역을 확장하고, 구글 역시 위에서 언급한 월마트와 손을 잡아 아마존의 쇼핑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점은 얼마 전 MS의 콜타나(Cortana)와 아마존의 알렉사(Alexa)가 협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아직 어떤 방식으로 협업을 할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더 필요해 보이지만, 아마도 각기 다른 역할을 가진 서비스들 과의 소통 정도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존 에코에게는 “Alexa, 콜타나에게 내가 미팅에 좀 늦는다고 김 부장한테 이메일 좀 보내줄래?”혹은 MS 콜타나에겐,“Cortana, 알렉사에게 지난번에 내가 주문한 주방세제 좀 주문해 줄래?”라는 식의 협업이 될 것이다. 이러한 협업은 서로의 특화된 서비스를 이용하자는 취지인데, 적의 적은 나의 동지라 했으니, 한 개의 기업이 시장을 독식하는 것을 막기 위한 동맹이자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회사들의 전략도 중요하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기를 사용하는 사용자이다. 사용자를 위한 편리한 인공지능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 데이터 과학자나, 개발자들이 알고리듬을 잘 구축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용자들이 편리하다고 느끼는 인공지능 서비스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디자이너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 다음 챕터에서는 ‘인공지능 서비스를 만드는 디자이너들’의 역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