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의 에필로그를 쓰는 게 될 줄이야...
오늘은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다시 백지 앞에 앉았습니다.
안녕하세요. 김팥팥입니다. <뒤꿈치로 도망쳐 나를 보다>를 마무리하고 꾸준히 관심을 갖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하고 싶기도 하고, 미쳐 담지 못했던 소소한 에피소드 등을 남겨 보고 싶어 이렇게 다시 노트북 열었습니다.
4월 11일에 KFC에 앉아서 제가 쓴 16화 전편을 다시 완독하고 브런치북으로 발간을 했습니다. 제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는데 비문도 많고 맞춤법 실수도 많아 수정할 것 투성이더라고요. 이렇게 서툰 글을 진중하게 글을 보는 분들께 보여드렸다는 게 창피해 양 뺨이 화끈거릴 정도로 였습니다. 하지만 브런치에 글을 쓴 것은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11일에 만족스럽지 않은 수정을 끝내고 다음날 아니 그다음 날까지 쓰러져 잤습니다. 매주 정해진 날까지 일정한 양의 글을 쓰는 것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매일 글을 쓰는 작가님들 정말 존경합니다.), 트라우마가 시작되었던 그때로 돌아가 그 일을 다시 곱씹는 것이 상당한 에너지와 마음이 소모되는 일이었습니다. 감히 표현해 보건대 제 발로 지옥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글 쓰면서 울기도 하고 혼자 분노해 씩씩거리기도 여러 번... 며칠은 우울과 무기력에 사로잡혀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도 있었습니다. 글을 쓰는 내내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에 내내 긴장을 했는지 글을 마무리하고 긴장이 풀려 종일 잠을 잤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조금 괴로운 글쓰기였지만 모순적이게도 버티게 해 준 것도 ‘글쓰기’였습니다.
반강제적이긴 했지만 글을 쓰기 위해서 그때의 사건을 나열하고 그것에 대한 제 생각과 감정을 정리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힘들었다.’, ‘슬펐다.’로 끝나지 않았고 마지막엔 꼭 이 말을 붙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아요. ‘그래, 잘 버텼다.’라고 스스로를 토닥일 줄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토닥이는 것은 저에게 정말 큰 발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도 어떤 감정이 울컥 올라올 때면 메모로라도 짧게 글로 남기고 나중에 돌아보면서 꼭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만에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 헐...”
제가 제주도를 걸어서 일주 했다는 것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대게 이랬습니다. 꽤 짧은 시간 내에 완주한 것이더라고요. 아마 저는 말 그대로 ‘도망치 듯’ 걸었기 때문인 것도 있고, 평소에도(3화 겁쟁이의 이동수단) 버스나 택시를 잘 타지 않고 원래 많이 걷는 편이었어서 가능했던 거 같아요.
일주일 동안 그렇게 걷고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체중도 3kg 정도 빠지고 근육량도 늘었죠. 매일 아침 저를 괴롭히던 두통도 줄었고요. 또 하나 놀라웠던 변화는 ‘비타민D’였습니다. 저는 몸이 좋지 않아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받았는데요. 제주도를 가기 전에 '의사 생활하면서 이런 수치는 처음이다.'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실 정도로 제 수치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정상은 보통 60~100인데 제 수치는 9였거든요. 영양제로는 어림도 없어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주도를 다녀온 후 혈액검사를 다시 했는데 24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여전히 미달이었지만 꽤 큰 변화였죠. 비타민D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체내 부족하면 대사 장애부터 불면증, 소화 장애 그리고 우울증까지 유발한다고 해요. 지금까지의 저의 증상의 원인이 다 이것 때문이라고 할 순 없지만 어느 정도 영향이 있다고 할 수 있었어요. 선생님은 걸으면서 햇빛에 많이 노출된 덕분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산책을 많이 하라고 당부의 당부를 하셨죠. 생활에서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하나씩 고쳐 나가라는 의사 선생님의 잔소리가 이해가 되었습니다. 조금 거창하지만 ‘작은 발자국이 위대한 도약이 될거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웃음)
‘도망’이 ‘여행’이 되고 난 후 마음껏 제주도를 누볐습니다. 그때부터 가는 길에 있는 독립서점에 모두 들렀어요. 독립서점을 갔던 이유는 독립서점에 들어가는 것은 마치 서점 주인의 머릿속을 들어갔다 오는 것 같았거든요. 책을 배치하고 또 그것을 큐레이션 해 놓을 것을 보면서 서점 주인은 요즘 어떤 고민을 하는지 또 그 생각을 어떻게 정리하는지를 엿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제 머릿속에 작은 서점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을 정리할지 걷는 내내 상상하기도 했죠.
우연히 들린 라바 북스로 시작해... 북타임, 소심한 책방, 고양이님이 출근하는 책다방, 나물이 들어간 스콘을 파는 요리 전문 서점 감귤 서점, 어쩌다 시리즈 작가님 한 분의 근황을 엿들을 수 있었던 만춘 서점 또 구들 책방까지...
일주일 동안 제주도의 많은 모습을 봤지만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시 한 편의 위로를 보내주었던 숙소 주인분께는 (12화 집에 불을 내달라는 이상한 숙소 주인) 또 다른 시 한 편을 받았고 언제 한번 놀러 가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셨던 산방산 숙소 주인아저씨께도 (8화 행복하면 불안하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무사히 완주했다고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어 놓고 와서 계속 마음에 걸렸던 한방찜질방 (14화 나를 찜질방에 가둔 마법사 할머니) 에는 나중에 전화를 했는데...'네~ 내가 잘 왔어요~'하고 할머니의 특유의 말투로 괜찮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무화과 따기를 체험했던 농장 사장님은 제가 딴 것 외에 한 봉지를 더 챙겨주셨는데 반나절이 지나니 무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다이소에서 밀폐용기와 설탕 한 봉지를 사서 무화과 위에 설탕을 왕창 부어 비행기를 탔죠. 나중에 쨈으로 만들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밖에도 아내의 우울증으로 제주에 왔지만 답답해서 다시 서울로 가고 싶다면 저와 30여 분간 같이 걷기 운동을 한 할아버지, 퇴사하고 여행을 왔다며 헤어지면서 홍삼 스틱을 나눠준 같은 방에 머문 언니, 저에게 가게를 맡겨 놓고 차도에 강아지를 구하러 간 샌드위치 가게 사장님, 바다를 보며 물질했던 얘기를 나누는 할머니 등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한 가득 담고 여행을 마쳤습니다.
하지만 제주도는… 살만한 곳은 아닌 것 같아요. 물가가 저에겐 너무 비쌌습니다. 또 섬이기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이나 갑작스러운 일도 꽤 빈번해 보였어요. 날씨 때문에 육지에서 물건을 받지 못해 편의점이 텅텅 비는 것을 여행하는 동안 두 번 정도 봤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도가 너무 좋아 언제 곤 다시 가고 싶습니다. 제주도에서 정말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다시 제주도를 간다면 명소보다는 그분들은 만나러 갈 것 같습니다.
맨발로 비행기를 타고…... 여름이었고 제주도가 휴양지였기 때문에 비행기를 탈 때는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 창피하지 않았지만 비행기에 내려서 지하철을 탈 때는 민망함을 좀 감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심지어 그때 저의 차림은 방금 노숙자가 된 사람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다행히 저를 걱정했던 엄마가 공항으로 마중 나오셔서 엄마가 챙겨 온 운동화를 신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슬리퍼는 회사에서 실내 슬리퍼로 잘 신다가 1년 뒤 많이 헤져서 버렸습니다. (좋은 슬리퍼 였다.)
제가 좀... 약은 사람입니다.
‘아버지’ 혹은 ‘트라우마들’을 주제로 글을 쓸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것이 여전히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제주도로 도망가 시작한 걷기 여행’으로 문틈으로 살짝 엿보듯 과거와 마주하는 것을 시도했고, 나름 성공적이었습니다. 당시 걷기 여행을 했던 것도 도움이 되었지만 그때 일을 정리하는 이번 글쓰기를 통해 저의 아픔을 한 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거든요. 온전하진 않지만 ‘제주 걷기 여행’은 슬픔과 행복의 기억이 함께 있어 과거를 돌아보는데 기억이 괴로워도 완충을 해주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쓰기도 무사히 완주했고요. 이번에 마음의 관절을 참 잘 썼던 것 같아요. (6화 마음에 무릎이 있었더라면) 이제 관절이 괜찮은 것 같으니 ‘마음 근육’을 키워볼까 합니다. (웃음)
다친 발로 심지어 아킬레스건에 생리대까지 잘라 붙여가며 무리하게 걸은 저에게 '어휴... 왜 그렇게 까지..'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트라우마 때문에 일반적인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었고, 그다음에는 오기로, 나중엔 걷는 데에 중독(16화 기왕이면 멋있게 도망가자) 이 되어서 걷는 것을 멈출 수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트라우마에 지기 싫어서 오기로 이를 악물고 걸었습니다. 순간순간의 위기와 한계를 뛰어넘으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많이 올라가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위험하고 힘든 스포츠를 즐기는지 이제는 이해가 돼요. 하지만 위험하다고 느낌이 왔을 땐 도전적인 마음은 잠시 내려놓은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과거의 일 때문에 평소에도 택시나 버스 타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못 타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에 도착했을 당시엔 '내가 왜 이러지?' 할 정도로 기사 아저씨를 보면 울렁거리고 심하게는 역겨움에 헛구역질을 하기도 했습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게 무엇인지 직접 경험할 수 있었죠.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을 저는 믿지 않아요. 그렇다고'망했어!'하고 포기하기엔 힘겹게 버텨온 시간들이 아깝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은 겪어야 하는 '아픔'을 나는 지금 겪고 있는 거라고... 앞으로 '슬픔'도 겪어야 하고, '힘듦'이나 '공포', '혼란'등 더 많은 것을 겪어야겠지만, 더불어 '행복'이나 '재미', '사랑' 등 좋은 것을 겪는 날도 있을 거라고... 그러니 오늘을 쉽게 포기하지 말자고. 기왕 사는 거 매운맛, 쓴 맛, 단맛 다 맛봐야 하지 않을까요? 핵 불닭맛도 있는데 그것까지도...(후훗) 지금 저는 버스와 택시를 아주 잘 타고, 조금은 불안하지만 그래도 꽤 유쾌한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타인에게 보여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어떻게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할 수 있어?’라고 저도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용기를 낸 덕분에 많은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하고요.
걷기 중독처럼 글쓰기 중독이 되면 이런 걸까요? 지쳐서 꼬박 하루를 일어나지 못하고도 다시 일어나 어떤 글을 쓸면 좋을까 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다음에는 ‘퇴사 이유를 찾아 영국으로 떠나 사건(?) 사고에 휘말린 이야기’를 할까 하고 있습니다. 또는 저처럼 '피곤한(?) 사람에 대한 자문자답'을 써봐도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왕좌왕하고 있지만 또 다른 마라톤을 위해서 많이 훈련하고 돌아오겠습니다. :)
지금까지 읽어주신 많은 분들(쑥스러워 언급하지 못하지만...)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