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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 Nov 17. 2015

마리텔부터 빅프렌드까지, 집단지성 어디까지 써봤니?

집단지성 잘못 활용하다 실패한 TV콘텐츠 잔혹사 연구

<..>부터 <빅프렌드>까지집단지성 어디까지 써봤니?

NYU 커뮤니케이션학 교수인 클레이 셔키는 TV와 뉴미디어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얘기한다. 그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TV가 뉴미디어를 품을 길은 요원해 보인다. 과거 신문이 방송을 소화하려고 애썼지만 기껏 한다는 것이 편성표를 올리고 TV 비평 기사만 썼던 것을 기억한다면 올드 미디어가 된 TV와 뉴미디어가 어떤 관계를 가질지 짐작이 된다. 그럼에도 TV는 항상 뉴미디어를 탐한다. 그것이 새롭기 때문에, 그것에 관심이 몰리기 때문에, 또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TV라는 매체는 방송이 정해진 시간에 나가고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 자리에 앉아 봐야 한다.(온에어의 경우) 그리고 그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 대부분 정해진 제작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무한도전은 목요일에 찍고 런닝맨은 월요일에 찍는다. 많은 사람을 조직해야 하기 때문에 제작 시점이 정해져 있다. 또 양적으로도 그렇다. 시간이 돈이기 때문에 제작 시간은 제작 효율에 맞춰 짠다. 드라마는 하루 이틀을 늘이느냐 줄이냐에 따라 제작비가 몇 천 이상 차이가 나기도 한다. 촬영을 오래해야 하는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선 스태프를 작게 꾸려야 한다. 이들도 24시간 항상 찍는 것은 아니다. 프로그램 제작은 톱니바퀴 같아서 쉽게 무언가를 바꾸기 어렵다. 일반인을 활용하는 경우에도 그들을 무작정 붙잡을 수 없다. 특히 다수를 콘트롤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다만 거대 미디어로서 사람들에게 분명한 보상이 주어질 때는 약간의 통제권이 주어진다.


반면 인터넷에 모이는 사람들은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SNS 이용자들은 시간을 정해두지 않고 글을 쓰고 남의 글을 본다. 짜투리 시간을 활용하기 때문에 이용량도 균일하지 않다. 이들을 정해진 시간에 모아서 무엇인가를 도모하게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이들은 '비조직화'되어있지만 잉여 시간이 개인적인 활동으로 끝나는 과거와 달리 지금은 그것이 온라인 공간에서 '생산'적 활동으로 이어진다. 더 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고 축적될 수 있고 재가공될 수 있다. 사람들이 조금씩 시간을 모아 백과사전을 만들기도 하고 지진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 OS를 함께 개발하기도 한다. 이들은 조직을 만들어 동시에 활동하지 않지만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새로운 형태를 띄고 있다. 흔히 이를 집단지성이라고 말한다.


집단지성은 누군가의 일사분란한 통제를 받지 않는다. 명령체계가 분명하지 않다. 촛불시위를 나오는 사람들의 배후를 물으려 하는 것이 인터넷 세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원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집단지성을 발휘할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TV는 앞서 말한 정해진 틀(시간, 돈) 안에서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온라인 세계는 이 두 가지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많은 간극이 두 매체 사이에 있지만 이것이 결정적인 문제로 작용한다. PD는 사람들을 모아 어떤 활동을 함께 하고자 한다. 그런데 첫째 사람들이 원하는 시간에 집중해서 모이질 않으며 둘째 모이자고 해도 잘 안 모인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많은 프로그램들이 좌절을 맛보았다. 마치 <인디아나 존스2>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배를 찾으려 했으나 잘못된 성배를 들어 올리고 죽어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겹친다. 

유일하게 생존한, 나름 킬로 콘텐츠로 자리 잡은 프로그램이 MBC<마이 리틀 텔레비전>이다. 사실 이 프로그램은 인터넷의 바다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바다 깊이 숨 쉬고 있는 대형 고래를 잡으려 하지 않고 해변으로 올라오는 조개와 미역 등을 잘 건져내고 있다. 어쩌면 가장 겸손하고 그래서 현명한 솔루션을 가진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용자들이 즐길 콘텐츠를 비교적 제한된 시간 안에 집중하여 보여준다. 제작비의 무한대 사용을 막고 제공하는 콘텐츠의 질을 유지한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 안에 원하는 사람들이 들어와서 볼 수 있게 한다. 인터넷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지만 실제는 TV의 매카니즘을 온라인에 옮겨 활용하는 것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은 시청자들과 소통할 수 있으며 원본 소스를 편집하면서 시청자들의 실시간 반응을 담을 수 있다는 것. 만약 이것을 온에어로 생중계하면 시청자들은 여러 콘텐츠를 골라볼 수 없으며 편집이 안 된 늘어지는 방송을 다수가 봐야 한다. 비교적 소수가 참여하여 다수가 볼 수 있는 TV 콘텐츠로 재가공하려는 것이 <마.리.텔>의 전략인 셈이다. 여기서 시청자들은 어디까지나 프로그램의 참여자라기보다는 관객에 가깝다. 다만 이전 관객이 개인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대형 뮤지컬에 있는 거라면 <마.리.텔>의 관객은 대화를 원하면 주고받을 수 있는 소규모 연극 무대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소극장에 있어도 관객이 관여는 할 수 있지만 극의 흐름에 실제적인 영향을 줄 수는 없다. <마.리.텔>은 거기까지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에는 없었던 거라 참신하고 매력적이다.

이 선택이 가능해진 것은 매체의 발달 덕분이다. 과거에도 이런 아이디어는 존재했다. 일방향 매체라는 한계를 넘고 싶은 게 TV의 꿈이기 때문에 PD들도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인터넷 어딘가에 방송을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것인가에 자신이 없었다. 또 이미 대중에게 노출이 된 내용을 TV에서 다시 방송하는 것이 얼빠진 짓 아닌가 하는 회의가 많았다. 그렇지만 지금의 모바일 기술 환경은 대중이 TV 외 콘텐츠에 몰리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뛰어난 편집 테크닉은 원본 이상의 결과를 내고 있다.(무한도전이 촬영 현장을 공개해도 방송을 꼭 챙겨보게 만드는 것은 편집의 노하우가 대단하기 때문이다.) <마.리.텔>은 여러 콘텐츠를 동시에 온라인으로 방송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시청자들이 다 볼 수 없다. 그러니 본방 유인책이 더 강력한 셈이다. 

얼마 전 SBS가 야침 차게 내놓은 파일럿 <18초>(2015.8.11,18)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TV 스타와 SNS 스타가 인기 동영상을 만들어내어 조회수로 경쟁하는 포맷이다. 거의 12시간 동안 도전자들이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데 그것을 네티즌들이 보면서 리액션을 준다. 문제는 가공이 전혀 안 된 과정을 날 것으로 보여주는 것이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이라고 지루한 것을 참아줄 거라면 오산이다. TV나 인터넷이나 압축되고 집중되어야 한다. 다만 압축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팟캐스트에서도 2시간도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방송이 있고 5분도 듣기 지루한 방송이 있다. 제작진은 이 점을 간과했다. 시청자들에게 양질의 콘텐츠를 계속 제공해야 했는데 도전자들의 준비 과정은 지루했다. 이를 방송으로 만회하기 위해 중계 방식을 활용했지만 느슨하고 재미없는 스토리에 얹을 말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동영상 조회수 결과도 거의 인기 투표에 불과했다. 동영상의 질이 객관적인 평가를 할만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 했다. 

MBC의 파일럿 <소원을말해요>(2014년9월26일 방송)는 집단지성으로 한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이다. 방송은 ‘겨울왕국의 리사가 되고 싶다’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과정을 담았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최대 실수는 집단지성을 활용하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을 믿지 못 한 데에 있다. 제작진 입장에선 정식으로 섭외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프로그램의 성패를 맡기기 어려울 수 있다. 얼마나 모이고 그래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함께 할지 모른다. 그래서 제작진이 택한 방법은 소원을 이뤄주는 사람들을 연예인으로 채우는 것이었다. 그들이 한다면 네티즌도 좋아하고 시청자들도 좋아할 것 같았을 거다. 그러나 만두를 주겠다고 하고 조금 식은 만두를 주는 것과 만두를 주겠다고 하고 속 없는 진빵을 주는 것은 다르다. 후자는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채널과 프로그램을 선택한다는 것은 그 순간 예상하는 만족을 기대한다는 것이고 그게 충족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걸 깨버렸다. 

<빅프렌드>가 방송할 때 그 점이 가장 기대되고 우려되었다. 과연 얼마나 사람들을 믿고 몸을 던질 수 있을까? 마치 락 공연장에서 관객에게 몸을 던지는 가수처럼 PD는 사람들을 믿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거리를 잘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만 뚜껑이 열린 프로그램의 모습은 또다시 망설이는 모습 그대로였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재미는 주인공 짱구가 단순히 얼마나 메이크 오버 되는지 보는 것에 있지 않다.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짱구가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해 네티즌과 어떻게 소통해 나갈 것인가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이전 방식들을 답습한다. 정작 의논은 네티즌들과 하고 있지만 그를 돕는 역할은 섭외한 유명인들로 채워진다. 시청자들은 집단지성 내의 사람들 중 짱구를 도울 사람이 나타나고 그들이 조금씩 변화를 주는 과정을 보고 싶은데도 말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지속적으로 공유되어 리액션을 생산하길 바랬다. 

주제와 목적도 불분명했다. 변화를 주기가 정말 어려운 ‘사람 개조’는 성형 외에는 극적 변화를 주기 어렵다. 멋진 남자가 되는 것도 모호하다. 여자친구를 만들고 싶었다면 소개팅이라도 했어야 했다. 프로그램은 소박하게 살고 있는 한 남자의 일상을 지나치게 흔드는 감이 있다. 계속 그런 도움을 주지도 못 할 텐데도. 바이럴 마케팅에서 사용하는 소원들어주기나 단시간 내 인생 바꿔주기 등은 이런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선 쉽게 손 댈 수 없다. 내용과 분량 면에서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지난 번 <수.방.사> 얘기를 했지만 그저 자신의 취미 생활을 집에서 할 수 있는 계획을 아내 몰래 수행해보는 가벼운 아이템 등이 실현 가능해 보인다. 

아직 때가 안 온 것일까? 아니면 답을 못 찾고 있는 것일까?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솔루션을 가지고 있진 않다. 하지만 산이 있으니 올라간다는 말처럼 앞으로도 많은 PD들이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기 위해 등정을 시도할 것이다. 과연 정상에 깃발을 꽂는 PD는 누가 될까? 과연 심해의 고래는 누가 잡게 될까? 나도 궁금하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큰 도전을 하려는 사람은 그에 걸맞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도가 나오건 모가 나오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을 때 비로소 길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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