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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 May 18. 2016

판타지와 현실의 절묘한 봉합!

영화<뷰티 인사이드> 리뷰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2012년작 애니메이션 <늑대아이>의 여주인공 하나는 늑대인간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는다. 늑대와 인간의 모습을 오가는 아이를 남모르게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모습이 눈물겹다. 설상가상 남편도 사고로 세상을 떠나니 하나의 삶은 벼랑에 서있는 듯 했다. 이 괴상한 상황에 직면한 한 엄마의 삶에 우린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하나는 아기가 아프자 병원으로 달려가는데 일반 병원과 동물 병원 중 어디로 가야하는지 망설인다. 아무도 그녀에게 답을 주지 않는다. 매 순간 설정이 독특하고 그래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낯설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육아의 본질과 마주친다. 육아라는 것은 누가 알려주는 대로 따라갈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육아법은 아이의 수만큼 다양하다. 아이의 성향, 성장 시점, 주변 환경 등이 더해져 변수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 많다. 테스트를 해볼 수도 없는, 그래서 매일이 진검승부일 수밖에 없는 게 아이를 키우는 일이다. 하나의 남편이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떠나게 되고 엄마가 홀로 아이를 키워가는 과정은 아빠의 역할이 엄연히 있고 또 있어야 하지만 육아의 제1 주체로서 오롯이 감당해야할 엄마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도망갈 곳 없는 엄마들에겐 폭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 한 편은 묵직한 울림을 준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키웠음에도 아이의 삶은 아이들의 것이라는 메시지는 양육하는 이들에게 잔인한 진실을 알려준다.  

영화는 사적인 이야기 속에서 공감대를 뽑아내는 마술을 부리곤 한다.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현실과 세상을 꿰뚫는 메시지를 던질 때는 가장 깊은 곳에서 울림이 느껴진다. 영화는 개별을 통해 보편을 말하고 허구를 통해 진실을 말한다. 우린 그런 마법을 매번 기대한다. 그런데 매일 외모, 나이, 성별이 달라지는 이상한 ‘병’에 걸린 어느 남자의 이야기, <뷰티 인사이드>는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 선 듯 손이 가지 않았다. 사람을 홀리고는 감당하지 못 하고 허겁지겁 추스르는 영화나 드라마가 얼마나 많았나? 사실 시나리오의 디테일과 메시지 전달력이 떨어지는 국내 러브 스토리에 실망했던 관객이라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 확인한 관객과 평단의 평가가 생각보다 낮은 게 의아스럽다. 난 균형감 있으면서 진지하고 마무리도 매끄러운 나무 의자에 앉았다 일어난 기분이 들었는데 말이다.


※ 주의 스포일러 있음


영화를 판타지로 시작했다면 그 다음으로 이야기꾼에게 중요한 과제는 첫째 판타지 요소를 현실과 잘 봉합하는 것이고 둘째 그 봉합된 부분 중 무엇을 관객에게 보여줄 것인가를 고르는 일이다. <뷰티인사이드>는 겉돌지 않고 주인공 우진의 삶으로 뛰어든다. 하루 밤을 보낸 여자 옆에서 새로운 얼굴로 일어난 우진은 안 맞는 옷을 익숙하게 주워 입고 밖으로 나온다. 남들이 반복하는 출근길에 남다른 길을 가야하는 우진의 삶이 자연스럽게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가 어느 때부터 그런 일이 일어났었고 그래서 그는 어떻게 적응하며 살았는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게 설명을 이어간다. 처음으로 바뀐 모습에 오열하는 아들을 위로해주는 엄마의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친구 상백이 친구를 다시 받아들이는 장면도 억지 없이 꾸며진다. 영화 <빅>부터 반복 재생되어 온 주변인들과의 불화 장면을 축약, 제거하고 우진은 재빨리 혼자 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우진은 가구 디자인을 하고 친구 상백은 영업을 뛰어 가구 업체 알렉스를 만드는데, 사람에 따라 가구를 맞춰 제작해주는 그의 작업은 매번 새로운 삶에 적응해야 하는 우진에게는 일종의 숙명이자 소명처럼 보인다.     

 

고독한 생활에 익숙했던 우진에게 한 여자를 사랑하는 건 위험한 일이었다. 가구 쇼핑가게에서 일하고 있는 이수를 본 순간 우진은 매일 다른 모습으로 그녀를 찾아가 가구를 계속 구입한다. 이름이 불리기 전에 존재는 무의미하다. 매일 같은 얼굴로 찾아간다고 해도 상대가 나를 인식하지 못 한다면 마찬가지다.

영화가 정공법으로 승부를 건 부분은 우진의 프로포즈와 초반 데이트 장면이다. 누구나 가장 멋진 모습으로 상대에게 각인되고 싶어 한다. 그게 그 사람의 한 부분이라도 특정한 이미지와 태도는 한 사람의 모든 것이 된다. 마치 내 진짜 모습도 전부 그런 것인 마냥 생각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 가장 매력적인 모습은 오래 지켜질 수 없다. 심해로 들어가 버텨도 숨을 오래 참기 힘들고, 높이 뛰어봤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중력을 이기기 어렵다. 연애 초반 보이는 이미지는 점점 무너지고 자신의 민낯이 자꾸 드러나게 된다. 영화에서 우진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지 않기 위해 졸음을 참으면서 잠을 자지 않는 모습은 그래서 낯설지 않은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지하철에서 졸다 다른 사람이 되어 일어난 우진의 참담함은 그래서 남일 같지 않다.

연애 감정은 서로에 대한 실망감으로 흔들린다.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모습을 보일 때 망설이고 상대에게 뛰어들지 못 하고 머뭇거리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선택하는 순간 관계는 급진전을 이룬다. 우진이 자신을 숨기고 계속 고개 비행을 하지 않은 점은 영화의 미덕이다. 잔재주를 부리기보다는 역시 정면 승부를 택했다. 우진은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 그리고 혼란스럽지만 이수는 우진을 받아들인다.

한 사람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모습들은 영화에서 각자 다른 사람들로 형상화된다. 감독은 연애 상황에 따라 가장 어울리는 배우들을 투입시킨다. 그 남자가 가장 멋져 보일 때는 이진욱이, 평범한 일상을 누릴 때는 조달환이, 그리고 가장 질척이고 힘든 순간은 이동욱이 등장한다. 또 가장 낯설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때는 김희원이(이 장면은 나도 충격이었다.) 연애의 가장 취약한 순간, 이별의 순간에는 김주혁이 등장하는데 감독의 선구가 당연하면서도 절묘하다. 혹자는 모든 중요한 순간에는 잘 생긴 사람만 나온다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할 지도 모른다. 너무 예쁘게 그리기만 한 것은 아닌가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콩깍지가 씐 사람 눈에 비치는 애인의 모습을 염두에 두면 편향적인 캐스팅이라 말할 수도 없다. 더군다나 김상호와 김희원까지 출연한 것을 보면 감독이 그리는 인간에 대한 애증의 폭이 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애는 달콤하지만 위험하기도 하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수군거림도 참아야 하고 자신의 생활도 희생해야 한다. 상대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버거울 때가 있다. 언제나 나답게 산다는 것이 힘들어진다. 상대에 영향을 받아 흔들리면 저항감이 생긴다. 또 다른 사람을 온전히 알고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면 우울해진다. 그렇게 감정이 격해지고 과민해지는 순간을 통과해야 연애는 진정한 일상이 된다.


이수는 매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진이 있던 삶과 없는 삶은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말하자면 같은 몸을 하고 있지만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우진을 찾는다. ‘아픈 것보다 네가 없는 게 더 힘들다’는 이수의 말은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의 정점이다. 그 마지막 장면의 우진이 믿고 보는 유연석이라니. 영화는 9회 말 마지막 카운트를 3구 삼진으로 잡았다. 한효주의 연기 폭이 예상보다 훨씬 컸다는 것도 영화의 큰 소득이다.



Citizens! - True Romance - YouTube     

https://youtu.be/RfX0wQ3uG3I

<뷰티인사이드 엔딩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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