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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hoto Dec 17. 2022

과거의 기억을 스캔하다.

필름을 통해 추억을 끄집어낸다.



지난 블랙 프라이데이 때 나는 필름 스캐너를 구입했다. 예전부터 하나 구입할까 하다가 마땅한 스캐너를 찾지 못했었다. 너무 비싸거나 혹은 너무 장난감스러운 스캐너만 보였다.


내가 필름 스캐너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99년부터로 기억된다. 그때부터 나는 통신사 일을 하기 시작했고 디지털카메라가 나오기 전이였기에 보통 네거티브 필름으로 촬영해서 현상과정을 끝낸 뒤에 몇 장을 필름 스캐너로 스캔을 한 뒤에 회사로 사진을 전송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속도인 전화를 통한 모뎀을 이용해서 프랑스 본사로 사진을 전송했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특파원으로 일할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호텔에서 장기 투숙을 했기에 - 내가 그렇게 오랜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살 것이란 생각을 못했었다. 약 2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비싼 호텔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서 모뎀을 통해 사진을 전송했었다. 중간에 끊어지기 일쑤였던. 사진을 전송할 때는 거의 졸면서 전송 상태를 확인했었다. 중간에 끊어지면 다시 처음부터 전송하고 그랬던 기억이.


사진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기 시작한 뒤에는 작업이 많이 수월해졌다. 현상소 마감시간에 쫓겨서 뛰어다니지도 않았고 필름을 스캔하는 과정도 없어졌다. 바로바로 사진 파일을 백업해서 컴퓨터 모니터로 확인하고

필요한 사진들을 전송했다. 다행히 인터넷 속도도 조금 빨라졌었다.


예를 들어 벌써 20년 전인 2002 한일 월드컵 취재를 할 때 전국에 있는 경기장에서 경기를 취재한 뒤에 기자실로 가서 바로 전송을 하거나 혹은 모자란 취재를 더 한 뒤에 사무실 혹은 집으로 와서 사진을 정리한 뒤에 바로 본사로 전송했었다. 디지털카메라의 편안함에 나는 빠져들었다.




필름으로 작업할 때는 한 장 한 장 신중을 기해 촬영을 했었고 마지막 한 장을 찍으면 자동으로 필름을 감겨주는 윙~~~ 하는 소리를 좋아했었다. 촬영한 필름을 정성스럽게 보관하고 그랬다.

필름을 사용해서 촬영을 할때는 꼭 결정적 상황일 때 필름을 교환해야 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여분의 필름을 항상 든든하게 챙기고 다녔다.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한 뒤 부터는 필름 대신 배터리를 든든하게 챙겨서 다니고 메모리 카드를 여유 있게 가지고 다녀야 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공부하고 촬영을 한 것이 1996년부터였다. 프랑스에서 사진 학교를 다니면서 촬영한 필름은 이민을 온 지금도 여전히 잘 보관하고 있었다. 늘 내가 예전에 작업한 사진들이 궁금했었다. 물론 인화지에 인화를 한 사진은 가끔 끄집어내어 보았기에 궁금하지 않았지만 인화하지 않은 나머지 많은 사진들의 내용은 기억이 안 났다. 그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해 필름 스캐너를 구입했다.



블랙 프라이데이라 조금 할인된 가격으로 내가 점찍어두었던 필름 스캐너를 판매하고 있었다. 

필름 스캐너가 배달된 날 나는 나의 오래된 필름 파일을 꺼내서 사진 몇 장을 스캔해보았다.

제일 궁금해하던 나의 젊은 날을 찾아보았다.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 예전에는 매섭고 날카로운 눈매를 가졌던, 지금에 비해 많이 날씬했던 그런 모습이 보였다.

다른 필름들을 스캔해 보았다. 오래된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 내가 이때 이런 곳을 갔었지 그리고 지금은 기억이 안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 필름 안에 있었다. 

몇몇은 기억이 나지만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대충의 기억은 있지만 특히 이름이 기억이 안 나고 전혀 기억조차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Dili. East Timor 1999


필름의 앞뒤에 있는 사진으로 내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가 유추가 되기도 했다.

가끔은 내가 발로 사진을 찍었구나 하면서 괜히 스캔해 보았다는 사진들도 많이 보였다.

지금과는 많이 다른 나의 사진 스타일에 당혹스럽기까지도 했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참 내가 순수하게 사진을 찍었구나 란 생각도 들었다. 정말 내가 찍고 싶은 사진들만 찍었던 순간이었다. 당시에는 - 물론 학교 과제를 위해 찍은 사진들도 많다-  클라이언트를 위해 작업한 것도 아니고 단지 내가 보고 느끼는 감정을 사진으로 표현했었던 시절이었다. 사진의 기본에 아주 충실했던 사진들.


필름을 한 장 한 장 보면서 나의 지나간 시절이 정말 필름처럼 휘리릭 머릿속을 지나간다. 

그땐 그랬지 하면서. 다시 보고 싶은 얼굴들 다시 가고 싶은 장소들이 

                                                                                                                                       Dili. East Timor 1999


가끔 필름 한 장을 스캔하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는 경우도 많았다. 그 사진을 보면서 내가 저 사진을 촬영할 당시를 떠올리고 혹은 그 필름 안에 있는 인물을 떠올리고 그러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Montmartre Paris France 1996



여전히 내가 꺼내보아야 할 필름 파일이 많이 남아있다. 천천히 가끔 필름을 스캔을 할 생각이다. 나의 기억과 추억을 아끼면서 곱씹어 보고 싶기 때문이다. 

흔한 말로 사람들이 ' 남는 건 사진뿐이야' 하면서 촬영을 한다. 나에게도 나의 지난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건 나의 기억과 남아있는 사진 필름뿐이다. 


사진의 힘은 대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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