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있는 산. 유황 캐는 노동자
가와이젠 ( Kawah Ijen)
홀로 있는 산이란 뜻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섬인 자바섬 남쪽에 자리 잡은 산이다.
유명한 브로모 산과는 약 차로 8시간 거리가 떨어져 있는.
이 사진들은 2000년에 찍은 사진들이다. 당시 나는 인도네시아 특파원으로 그곳의 정치 상황과 시위 등을 사진으로 취재하고 있었다. 어느 날 모든 것들이 일시적으로 잠잠해졌다.
나는 오래전부터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이곳을 가고 싶어졌다. 살가도의 사진에서 보았던 강렬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가와이젠, 유황 그리고 노동자들
어렵게 어렵게 가와이젠까지 도착을 했다. 산 초입에 있는 사무실에서 허가를 받고 ( 요즘은 이곳이 관광지화 된듯하다) 그들이 타는 트럭을 얻어 타고 올라갔다.
산 중턱 어느 지점에서 내려 장비를 이고 지고 메고 걷기 시작했다.
습하고 무더운 날씨. 약 25킬로 그램 정도 나가는 장비를 메고 산길을 걷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한참을 걸어가니 유황 캐는 노동자들의 숙소에 도착을 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사진 몇 장으로만 보았던 풍경과 사람들이 눈에 보이니 사진을 빨리 찍어야겠다는 욕심만 앞섰다. 머릿속으로는 내가 가져온 필름이 몇 롤이나 되는지 생각할 틈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찍기 바빴다. 어느 정도 찍고 난 뒤에 유황을 캐는 정상으로 갈려고 했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이 그 시간에는 올라가지 못한다 한다. 얼마 전에 있었던 사고 때문에 야간작업이 금지되었다 하면서.
나는 그들이 안내한 숙소에서 하루를 잤다. 숙소라고 말하기 힘든 곳이었지만.
눅눅한 매트리스 이불, 배게조차 없는 그냥 눅눅한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그들을 쫒아서 산길을 올랐다. 그들은 아주 날렵했다. 어깨에 빈 바구니를 메고 날듯이 산을 올라간다. 나는 중간중간 사진을 찍기도 혹은 쉬기도 하면서 그들의 뒤를 밟았다.
어느덧 정상까지 올랐다. 산길을 약 10킬로 미터 이상 걸은 듯했다.
정상에 오르니 푸른색을 띠는 칼데라 호가 눈에 들어온다. 고개를 돌려보니 연기가 자욱한 곳이 보인다. 그곳을 향해 내려갔다. 호수 근처에서 마그마를 작은 관을 통해 나오게 만들어 놓았다.
그 마그마가 식으면서 유황이 만들어지는. 유황 가스가 자욱한 이곳에서 노동자들은 그냥 천으로 재갈 물린 양 입을 막고 일을 한다. 그들이 받는 보수는 당시 월 50불 정도 ( 2000년 기준) 어깨에 양쪽 바구니를 올리면 두 바구니 합쳐 약 100킬로그램 정도 된다. 하루에 두 번 정도 왕복한다 한다.
사진에 보이는 작은 관을 통해 마그마와 유황가스가 분리가 된다. 마그마가 식으면서 유황이 만들어진다.
굳어진 유황 덩어리를 깨서 바구니에 담고 있다.
천으로 입을 막는 것이 가스로부터 보호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양쪽 바구니 무게는 합쳐서 약 100 킬로그램 정도이다. 복장도 신발도 안전과는 거리가 있다. 밑에 보이는 호수가 칼데라 호이다.
출근길. 이렇게 한번 출근하면 10일가량 근무하고 내려간다.
유황 캐는 노동자들의 숙소. 빗물을 받아서 그 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당시 나이 55세인 노동자. 자신의 유황 바구니를 역기처럼 들어 올리면서 힘자랑을 하고 있다. 약 100 킬로 그램의 무게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동자들.
점심시간. 식사는 바나나 잎에 싸온 흰밥과 멸치 같은 반찬이 전부이다.
사고로 허리를 다쳐서 마을로 후송을 하는 중이다.
자기가 캐어온 유황의 무게를 재고 있다. 이들은 캐어온 유황의 무게만큼 돈을 받는다.
가와이젠 화산에서 노동자들과 1주일 정도 시간을 같이 보냈다.
벌써 2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곳에서는 많은 노동자들이 유황을 캐고 있다.
당시 작업은 Canon EOS1 카메라로 작업했다. 17-35mm, 70-200mm 렌즈를 주로 사용했다. 필름은 후지 벨비아로 작업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