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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photo Oct 12. 2022

터키 지진

1년 뒤의 모습

1999년 터키 지진 1년 뒤.


2000년 7월 나는 종로 거리를 걷고 있었다. 

문득 1년 전 터키에서 큰 지진이 있었는데 어떻게 변했을까가 궁금해졌다. 


여러 취재 현장을 다녔지만 나는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보다 오히려 나는 그 뒤의 상황에 늘 더 마음이 갔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호기심과 취재 열기가 끝난 뒤의 마치 연극이나 공연이 끝난 뒤의 모습에 더 관심이 가는 것처럼.


어찌어찌해서 터키행 비행기표를 구했다. 종로 거리에서 떠오른 생각을 실천하는 데는 1주일이면 충분했다.


일단 이스탄불에 도착을 했다. 지진 피해가 심했던 곳은 골주크 , 얄로바 그리고 이즈미트.

이스탄불에서 며칠을 보낸 뒤에 고속버스를 타고 이즈미트로 갔다. 이즈미트를 비롯한 지진 피해를 입은 지역은 터키에서는 동쪽. 아시아 대륙 쪽이다.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 한참을 갔다 기억으로는 약 10시간 정.


이즈미트에 도착한 뒤에 현장까지 어떻게 가야 할지가 막막했다. 현지에서 도와줄 사람 한 명 구해 놓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단 관광 안내소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기본 정보를 얻고 움직일 생각이었다.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관광 안내소를 찾아가는 도중에 내가 길을 물어보았던 한 대학생이 도움을 주고 싶다 한다. 너무 고마웠다.


근처에 있던 다른 학생도 내가 왜 이즈미트에 왔는지를 이야기하니 도와주겠다 한다.

관광 안내소에서는 큰 도움을 못 받았다. 오히려 내가 자료로 가져간 사진 몇 장을 나를 도와주겠다는 대학생들에게 보여주니 그들이 그 지역을 다 찾아주고 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다음날 내 숙소로 그 친구들이 찾아왔다. 같이 버스를 타고 지진이 심하게 났던 곳을 찾아다녔다. 



지진으로 인해 해안 도로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가로등만 물 위에 떠있다. 아이들은 여전히 바다를 즐긴다.



그들과 함께 지진 피해지역을 돌아다녔다. 나는 계속 사진을 찍고 내가 찾는 곳을 말하면 그들이 주변인들에게 정보를 얻고 나를 데리고 가고. 너무 고마웠던. 그들이 없었다면 나는 이 작업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 차비를 내고 밥을 사주려고 할 때마다 그들은 너는 손님이니까 자기네가 사야 한다고 늘 고집을 피웠다.

그때마다 나는 돈을 버는 사람이고 너희는 학생이니 내가 사줘야 한다 그리고 너희의 도움이 없으면 나는 작업을 할 수가 없다. 하면서 이해를 시켜야 했다.





지진으로 인해 무너진 건물 잔해 사이를 걸어가는 아이.


한 번은 너무 목이 말라서 구멍가게에 갔었다. 그 가게 주인이 나에게 어디에서 왔냐 물어보길래 한국에서 왔다 하니 한국과 터키는 친구다 하면서 한사코 음료수 값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너무 사양하는 것도 예가 아는듯해서 결국 그의 성의를 받아들였다.



지진으로 피해 입은 건물을 보수하고 새로 단장을 하고 있다.




신혼부부. 




바닷가에 있던 수영장이 물속에 가라앉았다. 탈의실 지붕만 물 위에 떠있다.




공동묘지. 모두 같은 날자이다. 1999년 8월 17일




지진으로 인해 마당이 갈라졌다.




대관람차 뒤편으로는 스타디움이 있었다. 지진으로 무너졌다.




지진 피해로 꺼진 땅




무너진 건물 잔해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1년이 지났는데도




이재민촌. 








이재민촌










식수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이재민 촌에서는 물을 길어 가야 한다.


1년이 지난 그곳은 여전히 많은 지역이 복구가 되지 못하고 지진 피해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여전히 밝고 사람들은 희망차 보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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