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세마랑 지역에는 호텔 치푸트라가 있다 5성급 호텔이다.
호텔을 벗어난 길가에는 거리에서 구걸을 하거나 차 유리를 닦아주거나 노래를 불러주고 돈을 받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5세에서 12세 정도로 구성이 되어있다. 부모가 있는 아이도 있고 고아인 아이들도 있다.
나는 1999년-2000년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특파원 생활을 했었다.
취재를 마치고 내가 임대해서 사용하는 거주지로 가는 길에 늘 마주치는 아이들.
늘 항상 사진 작업을 시작할 때는 호기심이 우선된다. 무슨 연유로, 어떤 아이들이 왜? 이런 식의 호기심이 앞선다. 며칠간 카메라를 들지 않고 가서 아이들을 관찰했다. 하루 종일은 아니어도 취재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들려서 두어 시간씩 그들을 지켜보았다.
아이들도 나에게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매일 나타나니까.
어느 날부터 카메라를 들고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아이들 중 약간의 영어를 하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그 아이가 다른 아이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나는 거의 매일 퇴근길에 들려서 아이들과 생활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도 내가 찍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없어졌다. 그냥 나는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아무런 관여를 해서는 안된다.
근처 과일 시장에서 판매하고 폐기 처분할 바나나를 아이들이 먹는다.
하루는 아이들이 우르르 어디론가 간다. 나도 따라갔다. 아이들이 도착한 곳은 근처 시장이었다. 팔다 남은 폐기 처분할 바나나중에서 먹을 만한 것들을 고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 바나나를 찾자마자 먹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모든 것들을 따라 한다. 흡연도 마약도. 너무 어린 나이에 그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모른다.
갑자기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인도네시아의 생활에 지쳐가던 때이기도 했다.
한국의 모 대학에서 강의를 제안받았다. 그 핑계로 인도네시아 생활을 정리했다.
아이들에 대한 작업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나는 개인적 이유로 인도네시아를 떠났다
3년 뒤 다시 인도네시아를 찾았다. 제일 먼저 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이 있던 곳을 찾았다. 아이들도 찾아다녔다. 그 많던 아이들이 없어졌다. 주변에 물어보니 다른 지역 다른 도시로 떠났다고 한다. 아이들은 이제 20살이 넘고 30살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2000년의 아이들을 기억하고 걱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