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이 타오르는 밤

<성냥팔이 소녀> 재해석 글 부문

by Kimplay

#1

낮이었다가 순식간에 밤이 찾아오는 낮밤 마을이 있었어요. 밤이 된 마을을 밝히는 것이라고는

달과 성냥뿐이었지요. 그래서 낮밤 마을에는 성냥을 파는 사람이 많았어요.


#2

“잠깐만요. 지나갈게요.”

개비는 성냥을 파는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았어요. 그때 어느 상인이 개비에게 말을 걸었어요.

“낯선 얼굴인데... 어디서 왔니?”

“낮거리 골목에서 왔어요. 오늘 처음으로 성냥을 팔러 나왔어요.”

그러자 상인이 눈을 게슴츠레 뜨며 말했어요.

“그럼 일단 성냥팔이 사이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알아둬.

첫째, 달은 밤에 깨어 있는 사람들을 찾아서 달나라로 데려간단다.

둘째, 한밤중에 달보다 밝으면 달의 질투를 받지. 그러니 성냥을 파는 우리는 밤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해. 사방이 어두워지면 뛰어야 할지도 몰라.”

상인의 말에 개비는 겁이 났어요. 한겨울인데도 식은땀이 흘렀지요.

개비는 두려움을 잊기 위해 더 크게 외쳤어요.

"성냥 사세요!"


#3

얼마 뒤, 밝던 하늘이 먹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어두워졌어요.

성냥팔이 상인들은 짐을 챙겨 각자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어요.

개비도 성냥을 들고뛰다 보니 어느새 혼자 남겨졌지요. 벌써 달은 개비의 머리 위에 떠 있었어요.

“안 자고 돌아다녀서 달님이 날 쫓아다니나 봐. 달님, 저를 데려가지 마세요.”

개비는 간절히 빌며 걸음을 재촉했어요.


#4

마침내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옆집 창틈으로 아이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어요.

[더 놀고 싶어요. 불 켜 주세요.]

불을 켜 달라는 아이의 말에 성냥을 꺼낸 개비는, 달님이 질투할까 봐 성냥을 도로 집어넣었어요.

“후유, 큰일 날 뻔했네.”

개비는 전설이 두려웠어요. 밤하늘을 보려다 눈을 질끈 감으며 서둘러 집 안으로 들어갔지요.


#5

다음 날, 개비는 날이 밝자마자 거리로 나갔어요. 어두운 밤이 오기 전에 성냥을 다 팔기로 했거든요.

언제 올진 모르지만 말이에요.

“달님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아. 서둘러야겠어!”

야속하게도 밤은 어제보다 더 빨리 찾아온 것 같았어요.

“오늘도 성냥을 다 못 팔았는데 어쩌지?”

성냥팔이 상인들이 짐을 챙겨 거리를 떠났지만, 개비는 달님 몰래 남은 성냥을 더 팔기로 했어요.

개비는 달빛을 피해 어두운 구석에 자리를 잡고, 더 큰 목소리로 “성냥 사세요!” 하고 외쳤어요.

시간이 갈수록 개비의 뺨과 콧등은 빨갛게 얼었지요.


#6

개비가 힐끔 달을 본 순간, 하늘에서 작은 불빛이 떨어지고 있었어요. 불빛은 곧 개비의 발끝에 떨어졌어요.

빛을 내며 타고 있는 아주 작은 불씨였지요. 놀란 개비는 발로 '탁탁' 두드려 불을 껐어요

"갑자기 웬 불씨지? 달님한테 들킬 뻔했네."

가슴을 쓸어내린 개비는 남은 성냥을 들고 어둠 속을 걷기 시작했어요.


#7

그런데 개비가 다음 블록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눈앞이 환해졌어요.

"여기 있었구나! 하마터면 놓칠 뻔했네.
나는 달이야.”

달이라는 말에 눈을 떠보니, 어둠 속에서 반달 모양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어요.

개비는 빨개진 얼굴을 쓸며 더듬더듬 말했어요.

“미, 미안해요. 밤늦게 잠들지 않아서...”

개비는 가방을 숨기다가 달빛 아래 성냥을 쏟자 또 한 번 사과했어요.

“빛을 내는 성냥을 파는 것도 미안해요.”

개비의 연이은 사과에 달님은 어리둥절했어요.

“무슨 말이야? 그게 왜 나한테 미안하니?”

개비는 달님에게 성냥팔이 상인에게 들은 전설을 이야기해주었어요.

그러자 달님이 반달눈을 하고 웃었어요.

“그건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야. 난 누군가를 잡아가거나 질투하지 않아.”


#8

달님의 미소에 마음이 놓인 개비가 성냥을 주우며 물었어요.

“그런데 왜 저를 찾았어요?”

조금 전에 토끼들이 달 밖으로 불씨를 떨어뜨렸거든. 네 앞으로 떨어지는 걸 봤는데...

혹시 불씨가 어디로 갔는지 아니?"

달님의 물음에 개비는 자신이 꺼트린 불씨가 생각났어요.

"아! 미안해요. 제가 꺼트렸어요.. 밝은 불씨 때문에 달님에게 들킬까 봐 겁이 났거든요."

달님은 곤란한 표정으로 한참을 고민하다가 말했어요.

"흠. 이제 달나라에도 성냥이 필요하겠구나."

달님의 말에 개비는 깜짝 놀라 물었어요.

"밝은 달나라에도 성냥이 필요해요?"

"응. 원래 있던 불씨가 꺼졌으니 다른 불이 필요해. 토끼들이 매일 떡을 찌거든.

이참에 달나라에 가서 토끼들에게 성냥 사용법을 알려주지 않을래? 네가 가진 성냥을 모두 살게."


#9

개비는 성냥을 모두 산다는 말에 달님을 따라나섰어요. 달빛이 개비를 두둥실 들어 올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달에 내려놓았어요. 밝은 달빛 아래에는 반죽된 쌀가루가 잔뜩 쌓여 있었지요. 절구질을 하던 토끼들이 박수를 치며 개비를 반겼어요. 박수를 칠 때마다 하얀 쌀가루가 폴폴 날렸지요.

"반가워! 이야기는 들었어. 달에 와 줘서 고마워."

"안녕하세요. 불씨 대신 성냥을 가져왔어요."

개비는 토끼들에게 인사하며 성냥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어요.

"조심조심, 성냥의 빨간 부분을 거친 면에 대고 홱 그어 보세요."

화르륵. 틱. 화르륵. 틱.

어떤 토끼들은 성냥불을 밝혔고, 어떤 토끼들은 성냥만 부러뜨렸지요. 그날 밤하늘은 내내 주황빛이었어요. 낮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자느라 몰랐지만 말이에요.


#10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온 개비는 늦잠을 잤어요.

"너무 오래 자 버렸네. 어서 나가봐야겠다!”

개비는 성냥을 챙겨 밖으로 뛰쳐나갔어요. 그런데 하늘이 온통 주황색으로 물들어 있었지요.

개비도, 길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모두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와아, 예쁘다. 이런 하늘은 처음 보는걸?"

"꼭 불빛 같네. 아 참, 성냥 사 가야겠다."

사람들은 하늘이 불빛으로 물들자 성냥을 떠올렸어요. 덕분에 개비는 밤이 되기 전에 성냥을 모두 팔았어요.

한 개만 빼놓고 말이에요.


#11

집으로 돌아온 개비는 창가에 그 성냥을 올려놓고 달님을 기다렸어요. 하늘은 주황빛이 점점 진해지다가 붉게 타오르더니 검게 변했지요. 자세히 보니 까맣기만 한 줄 알았던 밤하늘에 희끗한 구름이 보였어요. 성냥불이 꺼진 뒤의 뽀얀 연기 같기도 하고, 달에서 본 쌀가루 먼지 같기도 했지요. 잠시 뒤 구름 사이로 이지러진 달님이 모습을 드러냈어요. 개비는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달님에게 물었어요.

"달님, 오늘은 하늘색이 좀 다르던데 왜 그런지 아세요?"

"아, 토끼들이 떡을 쪘어. 예전 불씨와 달리 성냥불이 타올라서 그랬을 거야."

개비가 씩 웃더니 달님에게 말했어요.

"매일 밤이 오기 전에 떡을 쪄 주시면 안 될까요?

저에겐 깜깜한 밤이 되기 전에 오늘처럼 붉게 물든 하늘이 필요해요."

"어렵지 않아. 하지만 오늘처럼 길진 않을 거야. 오늘은 밀린 반죽이 많았거든."

달님의 말에 개비는 달빛처럼 환하게 웃었어요.


#12

그때부터 낮밤 마을에는 밤이 오기 전 붉은 하늘이 생겼어요.

사람들은 이걸 석양이라고 불렀지요.

덕분에 개비와 성냥팔이 상인들은 밤이 오기 전에 뛰지 않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어요.

밤을 준비할 여유가 생긴 사람들이 늦지 않게 성냥을 사 간 덕분이기도 하고요.

물론 전설은 거짓이었지만, 너무 오래된 믿음이라 쉽게 바뀌진 않았어요.


#13

어느 날, 개비에게 성냥을 사던 사람이 하늘을 보며 말했어요.

"와아, 타오르는 석양은 언제 봐도 멋있어."

개비는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어요.

'석양이 아니라, 성냥이 타오르는 거예요. 히히.'




*작가 의

아이가 아이다움을 잃는 것은 참 슬픈 일입니다. 특히나 성냥팔이 소녀는 이름도 없어서 더 슬픕니다.

그래서 외롭고 쓸쓸하게, 타의로 성냥을 팔다 죽는 원작의 어린 주인공에게 또래에 어울리는 모험 같은 일상을 선물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 모험을 위해 '낮밤 마을'이라는 새로운 세계관의 장소를 만들어 성냥을 파는 사람이 많은 이유, 달에 얽힌 전설, 해 질 무렵이 없는 것 등을 설정해 이야기를 꾸며 보았습니다.

새로운 세계관에서 만난 성냥팔이 개비는 아이다운 행복을 누리며 즐겁길 바랍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