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 되든 밥이 되든 먹을 수는 있어요.
매일 밤마다 표지를 만지고 만지고 닳도록 만졌다. 깔짝깔짝
레이어(겹겹이 쌓인 그림판 같은 것)의 개념은 이해했지만 사용은 서툴렀다. 내 책상만큼이나 정리가 안 돼서 수정을 할 때마다 13-14개나 되는 레이어 속을 찾아 헤매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렇게 애써 만든 표지에 용기 있는 포기를 더해 마침내 마무리를 다짐했지만 볼수록 눈에 안 찼다.
나 스스로 드는 생각은 ,
아, 참을 수 없는 조잡함이다.
너무 깔짝댔나 봐.
내 눈에만 보이는 깔짝댐의 흔적들. 거의 로봇청소기 지도 수준으로 펜이 안 쓸고 간 데가 없다. 친한 친구들에게 보여줬더니 모두 비슷한 생각이다. 이대로는 용기 있는 포기가 아니라, 수습불가 포기가 되는 것 같아 다시 펜을 잡는다.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까.
본다. 계속 본다. 뒤표지가 허전해 욕심을 내다 이 지경이 되었다. 중간이라는 게 참 어렵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그랬다.
살다 보면 적당히가 가장 어렵다.
그 말을 두고두고 공감하며 살고 있는데, 이번에도 마음 깊이 느낀다. 펜으로 욕심을 걷어낸다. 과한 흔적들을 지우고 다시 그림을 본다. 보다 보니 더 나을 것 같은 방향이 보인다. 다시 화면을 두드리고 고민한다. 장고 끝에 악수가 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친다. 어깨가 결린다. 다리가 저리고 등짝이 아프다. 시간과 반비례하는 결과물에 현타가 온다.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완성이 될지 복잡한 머릿속에 불안이 툭 떨어진다.
잠깐 화면을 덮고 생각해 본다. 왜 새벽까지 이러고 있는 걸까.
하고 싶으니까.
걱정 말고 하기나 해.
내 안에서 빠르고 단호한 대답이 나왔다. 불안은 머리에 심어지지 않고 쓱 치워졌다.
그래, 죽도 먹을 수는 있지. 못 먹어도 GO다!
공교롭게 GO는 키보드에서 한글키로 '해'다. 그래그래 할게. 이것은 운명의 데스티니.
이런 거 찾지 말고 얼른 하자. 다시 늦은 밤, 뚝딱뚝딱 깔짝대며 흥얼거린다.
마침내 완성된 최신판 <파일명: 1205 새벽> 공개!
(용기 있는 포기는 참 어렵다. 최신판이 아니라, 완성됐다 쓰고 지우는 아직은 모르겠어요판)
아, 누가 보고 궁금해해 줬으면 좋겠다.
아마도 지금이 내 인생 최대 관종 시기인 것 같다.
낯설지만 나쁘지 않은. 좀 둥실 떠있는 느낌.
하기나 하라는 그레이의 노래 가사를 읽으며 하기나 하자!
하기나 해 (Feat. Loco) 노래 GRAY
내 자신에게 말해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하기나 해
그냥 하기나 해
뭐든지 걱정만 많으면
잘될 것도 되다가 안되니까 그냥 하기나 해
하기나 해
그냥 하기나 해
어차피 생각대로 되는 것도 아니니깐
재밌게 즐기자구 그냥 하기나 해